우리 산하와 문화재

죽령 옛길(소백산역-죽령루)의 호젓한 아름다움, 봄의 풀꽃들

모산재 2012. 6. 6. 00:16

 

죽령을 넘어 풍기역에 도착한다. 

 

밤 9시를 훌쩍 넘긴 시각, 역을 나서니 역 앞 풍기읍의 거리는 어둡고 썰렁하다. 아무리 시골이라해도 명색이 읍인데... 대로를 다 지나가도 몇 되지 않는 식당은 문이 다 닫혔다. 저녁은 먹어야겠는데, 한참을 걷다보니 일을 마치고 청소를 하고 있는 식당을 만난다. 인삼 한 토막이 들어가긴 했지만 만 원이나 하는 비싼 갈비탕으로 저녁을 먹는다. 

 

이튿날 아침에 보는 풍기읍 거리도 역시 썰렁하다. 아침에 문을 연 식당도 하나밖에 없는데, 7천원짜리 된장찌개는 내용이 빈약하다. 산에서 점심으로 먹을 김밥과 과일을 사려고 했지만 하나밖에 보이지 않는 마트는 문을 열지 않았다. 풍기읍 거리는 인삼 가게와 몇몇 인견 가게밖에 없는 듯 단조롭다. 소백산이라는 천혜의 자연자원과는 거의 무관한 동네라는 인상이 들어 안타깝다.  

 

 

역 앞 정류장에서 소백산행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라곤 부부로 보이는 한 쌍만 보인다. 영주에서 온 버스를 타고 희방사로 향한다. 버스에 탄 사람들도 모두 온천에서 다 내리고...

 

희방사 입구에서 내려 희방사계곡으로 오를 예정이었지만 지도를 보니 부근에 죽령옛길이 있어 타고왔던 버스로 죽령옛길 입구로 되나온다. 붙임성 좋은 기사가 친절히 알려준 대로 죽령옛길로 들어선다.  

 

 

수철리에서 시작되는 죽령옛길 입구

 

 

 

죽령옛길은 소백산역에서 출발하여 느티쟁이주막터를 지나 죽령마루에 이르는 2.8km거리의 길이다. 걷는데 5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5분도 못 걸었는데 금방 나타나는 죽령 옛길 초가집.

 

식당과 민박을 겸하는 작은  테마공원으로 작년 연말에 조성되었다 한다. 희방사역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다.

 

 

 

 

희방사역으로 알고 있었던 역은 이름이 소백산역으로 바뀌었다. 역사 벽은 원색의 물감으로 동심의 세계를 아름답게 표현해 놓았다. 

 

 

 

희방사역에는 기차가 하루에 네 번 손님을 내리고 태운다고 한다.

    청량리역 06:10 출발 - 소백산역 08:54 도착

     청량리역 08:10 출발 - 소백산역 11:10 도착

     소백산역 16:01 출발 - 청량리역 19:38 도착

     소백산역 18:06 출발 - 청량리역 21:00 도착

 

 

역 광장에서 죽령옛길 걷기 행사가 있다며 풍기 라이온스클럽인가 하는 청년회 일을 하는 어느 청년이 건네준 생수를 챙기고 희방사역을 떠난다. 

 

 

역 부근 개울가에서 호장근 닮은 감절대 군락을 만난다.

 

 

 

앞만 보고 걷다가 요란한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서울행 기차가 희방사역을 지나고 있다.

 

기차가 지나가고 나서야 퍼뜩 정신을 차리고 멀어진 희방사역 방향의 풍경을 담아본다.

 

 

 

그리고 좀 걷다보면 죽령터널로 향하는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머리 위를 지나기게 된다. 

 

 

 

바로 이곳에서부터 죽령옛길은 본격적으로 골짜기로 접어들게 된다.

 

 

 

골짜기 주변 곳곳에는 큰꽃으아리 흰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몇 발작 더 걸어가니 이제 갓 꽃망울을 연 산사나무도 모습을 보인다.   

 

 

 

졸방제비꽃은 바야흐로 제 세상 만난 듯 곳곳에서 피고 있다. 

 

 

 

골짜기 입구는 사과나무와 함께 호두나무 과수원이 차지하고 있어 그 동안 제대로 만나지 못했던 호두나무 암꽃을 맘껏 살펴볼 수 있었다.

 

 

 

지렁이 같은 수꽃이삭은 이미 땅에 다 떨어지고 꽃가루 받이를 끝낸 암술 아래 씨방 열매가 좀 성숙해진 모습이다.

 

 

붓꽃이 곳곳에 피었는데, 흰색에 가깝게 탈색된 꽃이 눈에 띄어 담아 본다. 

 

 

 

아직 볕이 들어오는 골짜기에는 에너지를 듬뿍 받은 모시나무가 어지럽게 날아다니고 있다. 우아한 모시나비 몽타주를 얻고 싶었지만 잠시도 비행을 멈추지 않는 녀석을 덮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안타까이 바라보다가 대신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는 멧팔랑나비나 담아본다.

 

 

 

그리고 울창한 숲길로 들어서자마자 꽃잎이 네 갈래인 특이한 개별꽃을 만난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그것이 긴개별꽃임을 알아차린다.

 

 

 

다만 쇠별꽃에 있는 잎자루가 없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 잎 모양이 쇠별꽃과 아주 비슷하다. 

 

 

 

수 년 전 곰배령 입구에서 꽃이 피지 않은 긴개별꽃을 만난 적이 있는데 꽃을 만나기는 처음이다. 가만 보니 꽃잎이 네 개인 것도 있고 다섯 개인 것도 있다. 다섯 개가 정상적인데, 이곳에는 네 개 짜리가 유난히 많다.

 

 

 

골짜기를 오를수록 꽃이 더욱 많이 피어 있는 긴개별꽃

 

 

 

뿌리를 확인해 보니 개별꽃이나 큰개별꽃에 비해서는 아주 빈약하다.

 

 

 

깊은 산이어선지 때늦은 감이 있는 으름덩굴 꽃이 아직 피고 있다.

 

 

 

풀꽃나무들을 살피며 걷는 동안 뒤에 오던 사람들이 앞서 가곤 한다. 고등학생인지 대학생인지 모를 싱그러운 중국인 남녀 아이들도 한 무리 지나간다. 선비 체험을 하러 온 것인지 한복을 입은 가이드가 이런 저런 설명을 하고 있다. 

 

 

아마도 예전에는 이 고개를 넘는 사람들이 목을 축이는 물로 사용했을 샘터에는 도룡농 알집이 가득하다. 알집 안에서 이미 올챙이가 된 도룡뇽...

 

 

 

그리고 수면에는 짝짓기에 열중인 소금쟁이 한 쌍

 

 

 

 

옛길 곳곳에는 죽령에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해 두었다.  

 

그 첫번째가 어부가로 유명한 농안 이현보와 백운동서원(소수서원의 전신)을 연 풍기군수 주세붕에 대한 이야기

 

 

 

풍기 군수 주세붕이 나귀에 술을 싣고 안동 예안으로 낙향하는 30년 선배 이현보를 마중나온다. 임금의 총애를 받던 이현보는 73세가 되어서야 병을 핑계로 고향으로 내려올 수 있었는데, 중종 37년(1542년) 7월의 일이다.

 

죽령에서 대작하며 두 사람은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기고 있다. (시의 풀이는 필자)

 

 

 

이현보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심정을 다음과 같이 읊는다. (<농암집>에 따르면 원래 2수인데 다음은 두번 째 시이다)


     草草行裝白首郞   초라한 행장을 한 백발 남자가 
     秋風匹馬嶺途長   가을 바람 속 필마로 오르는 고갯길이 길구나.  
     莫言林下稀相見   숲에서 서로 만나는 것이 희한하다 말하지 말게나. 
     落葉歸根自是常   낙엽이 뿌리로 돌아가는 것은 순리인 것을.

 

이에 주세붕은 다음과 같은 시로써 화답한다.

 

     飄飄歸興趁漁郞   표표히 어부의 흥을 좇아 돌아오고자   
     直沂驪江玉帶長   옥띠처럼 긴 여강에 접어들었네. 
     今日竹領回首意   오늘 죽령으로 머리를 돌린 뜻은

     乾坤萬古是綱常   만고에 변치않는 세상 도리 아니리.

 

이는 여강을 지나 낙향하는 이현보를 맞이하러 죽령으로 가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두 사람은 각각 고향을 찾는 것을 '낙엽귀근(落葉歸根)'의 순리로, 선배를 맞이하는 것을 '만고강상(萬古綱常)'도리로 노래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인물, 신라 향가인 '모죽지랑가'의 주인공 죽지의 탄생 설화가 <삼국유사>에 전해지고 있다.

 

 

 

죽지(竹旨)는 김유신과 함께 진덕여왕·태종무열왕·문무왕·신문왕의 4대에 걸쳐 대신으로 나라의 안정을 도모했으며, 신라의 삼국통일에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설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죽지의 아버지 술종이 삭주도독으로 임명받고 부임하는 도중 죽지령(지금의 죽령)에서 길을 닦고 있는 한 거사를 만나 그 인물과 인품에 탄복하였는데, 술종과 그의 아내가 1개월이 지나 거사가 방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괴상히 여겨 이튿날 사람을 보내 거사의 안부를 물어보니 꿈꾼 날에 그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후 아내가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았다. 그래서 이름을 죽지라 지었다고 한다.

죽령옛길을 걷는 내내 긴개별꽃은 흔하게 만난다. 

 

 

 

 

그리고 졸방제비꽃도 그만큼 흔하게 만난다.

 

 

 

그리고 다소 때늦은 콩제비꽃도 만난다.

 

 

 

어느덧 오르막길로 접어들고...

 

이런 저런 식물들을 살펴보며 느릿느릿 걷다보니 죽령루라는 누각이 나타난다. 

 

 

 

죽령루를 지나니 비로소 죽령 고개마루다. 죽령을 넘는 큰길 5번국도가 지나가고 길가에 바로 죽령 주막이 있다.

 

50분이면 올 수 있다는 길을 두 시간이나 걸려서 도착한 것이다.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해 걱정했는데, 죽령 주막에서 비빔밥을 먹을 수 있었다. 시원한 막걸리라도 한잔 했으면 좋으련만 정상까지 가야할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