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에는 '소나기'가 없다

모산재 2012. 4. 29. 14:03

 

3년 전 여름, 처음 개관된 직후에 잠깐 들렀던 황순원 문학관을 이번 봄에도 또 아주 잠깐 들렀다. 동료들과 함께 야외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짜투리 시간 활용하기 위해서...

 


지난 번에는 바로 문학관 쪽으로 가서 산책길을 따라 걸었는데, 이번에는 반대편 징검다리 쪽 방향으로 가게 되어서 문학관 외부 공간은 다 둘러보게 된 셈이다.

 

그 때는 '소나기'의 주요무대인 개울과 징검다리가 없는 '소나기마을'이란 것이 몹시 의아하고 실망스러운 것이었는데, 오늘 보니 개울과 징검다리가 바로 주차장 옆에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개울에 놓여진 징검다리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징검다리도 개울도 '소나기'라는 소설에 그려진 배경과는 너무고 거리가 먼 옹색한 공간이 아닌가...

 

▲사진 맨 왼쪽에 징검다리가 보인다. 

 

 


징검다리는 커다란 다리 바로 아래에 만들어 놓았는데, 구색만 갖추었을 뿐 무신경의 극치다. '소나기'를 읽은 사람이라면 소년과 소녀가 되어 작품 세계를 추체험하고 싶은 것이다.

 

작품 속에서는 개울에는 넓은 갈밭이 있고 징검다리를 지나면 들판이다. 그러나 이 개울 양쪽은 가파른 강 언덕이 있고 한쪽은 가파른 산으로 이어진다. 소년과 소녀의 사랑이 그려질 낭만적인 공간과는 너무도 거리가 있다.

 

'소나기 마을'이라면 징검다리 주변에 이런 큰 다리를 두어선 안 되는 일이다. 그러지 않으면 징검다리를 소설의 장면과 잘 어울리는 곳으로 따로 두어야 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다리를 건너니 이렇게 가파른 산길이다. 나무 데크로 된 길이 아니라면 오르기도 어려울 정도...

 

 

 

낭떠러지에 가까운 바위에는 꿀통들이 놓여 있을 정도다.

 

 

 


가파른 길을 올라서면 작은 고갯길을 넘게 된다.

 

고개를 넘자마자 내리막길에 보이는 흰 개 한 마리...

 

 

 

석상을 보고서야 흰 개가 '목넘이마을의 개'의 주인공 신둥이(흰둥이)라는 것을 눈치챈다. 그러니까 이 고개가 바로 '목넘이' 고개인 것이다.

 

 


 

좁은 문학촌 속에 황순원 선생의 작품 세계를 모두 구현하고자 하니 징검다리에서 이어져야 할 '소나기'의 무대는 갑자기 '목넘이마을의 개'의 무대로 급전해 버린다. 문학촌이 세트장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실제 소설의 배경을 그대로 간직한 김유정 문학촌과 달리 랜덤으로 구입한 땅에 소설 속 공간과 억지로 매치시키다보니 부자연스러워진 것이다. 그렇다면 아예 처음부터 '소나기' 하나에만 초점을 맞춰 개울과 징검다리를 보다 실감나는 곳으로 정하였다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목넘이 마을의 개'는 1948년 3월 <개벽>에 발표된 단편이다.

 

'목넘이 마을'에 뒷다리 하나를 다친 신둥이(흰둥이) 한 마리가 나타난다. 마을 개들의 먹이그릇을 뒤지며 목숨을 부지하던 신둥이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 미친 개 취급을 받고 뒷산으로 쫓겨난다. 마을 사람들은 신둥이와 함께 있었던 개들이 미칠 것을 염려하여 잡아먹는다. 새끼를 밴 신둥이는 다시 마을에 나타나고 마을 사람들은 신둥이를 잡으러 나서지만 간난이 할아버지가 빠져나가도록 내버려 둔다. 간난이 할아버지는 신둥이의 새끼들을 발견하고 몰래 보살펴 주고 다섯 마리의 새끼를 이웃에 나누어 주고, 마을의 개들은 신둥이의 피를 이어받게 된다.

 

소설의 말미에서 작가는 '내'가 중학 이삼 년 시절에 외가가 있는 목넘이 마을에 가서 간난이 할아버지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에게 들은 얘기라고 서술해 놓았다. 소설은 신둥이가 사냥꾼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그 후로 통 보지 못했다는 간난이 할아버지의 말로 마무리된다.

 

만주 이주의 길목인 목넘이 마을, 일제의 수탈로 고향을 떠나 만주에서 새 삶을 모색해야 했던 민중들의 처절했던 삶을 신둥이라는 개를 통해 우화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을 표현한 작품인 것이다.

 



목넘이 고개를 넘어서 내리막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왼쪽길로 접어들면 금방 황순원문학관 앞에 도착한다.

 

 

 


사실 황순원은 북한이 고향인 실향민 작가로 그의 고향은 양평과는 무관한 평안남도 대동군이다. 황순원 문학촌이 이곳 양평 땅에 세워지게 된 것은 오로지 1953년 발표된 그의 대표적 단편 '소나기' 때문이다.

 


시골 소년과 도시에서 온 소녀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는 60~70년대 초중학교를 시골에서 다닌 세대들에게는 사랑의 원형으로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저 우리 이번에 추석 지내고 나서 집을 내주게 됐다."

소년은 소녀네가 이사해 오기 전에 벌써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윤초시 손자가 서울서 사업에 실패해 가지고 고향에 돌아오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이 이번에는 고향 집마저 남의 손에 넘기게 된 모양이었다.

"왜 그런지 난 이사 가는 게 싫어졌다. 어른들이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지만..."

전에 없이 소녀의 까만 눈에 쓸쓸한 빛이 떠올랐다.



이렇게 해서 소녀네가 이사를 가게 된 곳은,

 

개울 물은 날로 여물어 갔다. 소년은 갈림길에서 아래쪽으로 가보았다. 갈밭머리에서 바라보는 서당골 마을은 쪽빛 하늘 아래 한결 가까워 보였다.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 거기 가서는 조그마한 가겟방을 보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바로 이 한 장면에 언급된 지명으로 양평이 선정된 것이다.

 



황순원 문학촌 소나기마을은 양평군과 24여 년에 걸쳐 경희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했던 인연이 있던 경희대학교가 함께 ‘소나기’의 배경을 재현한 관광공간으로 2009년에 완공하였다.

 

 


 

문학관 앞에 도착하니, 일행들이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고 하여 발길을 돌린다. 그렇게 해서 다시 왔던 길을 되넘어가고...

 

 


아쉬움이 있지만 3년 전 개관 직후에 왔을 때 담아둔 사진으로 글을 이어나가기로 한다. 그 때도 문학관 내부는 둘러보지 못했으니...

 

 

 

문학관 중앙 계단에서 이어지는 중앙 원뿔형 건물은 '소나기'에서 소년과 소녀가 소나기를 피했던 수숫단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중앙 계단 바로 앞뜰에도 수숫단 속에 들어가 비를 피하는 소년과 소녀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는데, 참 엉뚱하고 낯설다는 생각이 든다.

 

시골소년의 순수한 사랑을 반짝반짝하는 유리와 스틸 등의 초현대적인 재료로 표현하겠다는 발상에 전혀 공감이 가지 않는다.

 

 

 

게다가 그 안에 웅크리고 있는 소년과 소녀의 조각상도 너무 통통하다. 누가 저 모습에서 50년대의 시골소년을 떠올릴 수 있을까?

 

어떤 이는 외계인 같다고 혹평한다.

 

 

 

 


'소나기광장'이라 명명한 곳에는 원두막과 세워놓은 수숫단을 흉내낸 시설을 수없이 만들어 놓았는데, 이것도 엉뚱하고 과하다 싶다. 

  



수숫대가 아니라 볏집으로 엮어 세운 것도 원작의 의미를 감소시키고 있는데다, 떼로 만들어 세워 놓으니 마치 선사시대 주거지인 움집에 온 듯 엉뚱한 상상력만 촉발시키지 않는가.


소년과 소녀의 사랑이 가을물처럼 여물어가게 되는 들판과 산으로 이어지는 너른 공간이야말로 '소나기'라는 소설을 지탱하게 하는 핵심적인 공간인데, 대책없이 비워 놓은 너른 공간 한쪽에 움집 여러 채 세워 놓은 것으로 땜빵한 모습은 참으로 딱하고 민망한 것이다.




등성이를 따라 이어지는 산책길에는 '고향의 숲', 해와 달의 숲', '학의 숲', 들꽃마을', '송아지 들판' 등 황순원 작품과 관련한 여러 공간들을 배치하고 있는데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테마를 들임으로써 문학촌을 세트장으로 만들어 버린 듯 산만한 느낌만 든다.


이 산등성이까지 연못을 조성해야 했는지...




그냥 '소나기' 한 편에만 집중하여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마치 '소나기'라는 작품 속 공간에 들어온 듯한 감흥을 살릴 수는 없었는지 아쉬움이 크다.


 

차라리 선사 주거지 움집 같은 것이 서 있는 저 넓은 소나기광장을 논으로 만들어 벼를 심고 허수아비를 세우고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에 메뚜기가 날아 따끔따끔 얼굴에 부딪치는 경험을 하게 하고, 큰 원두막 주변에 무와 참외를 심어 늦가을 무 '대강이를 한 입 베물어 낸 다음 손톱을 한 돌이 껍질을 벗겨 우적 깨물'어 맛을 보게 하는 게 더 낫지 않겠는가. 

 

 

 


한 마디로 현재의 황순원 문학촌은 실패라는 생각이 든다. 소나기마을에는 소설 '소나기'의 배경이 되는 개울과 징검다리, 널널한 들판은 물론 가을 하늘보다 더 맑은 소년과 소녀의 사랑과 감흥을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없다. 다만 어떤 감동도 없는 억지로 흉내낸 시설만 있을 뿐... 

 

 


문학관 앞에는 황순원 선생의 묘소가 자리잡고 있다.

 

▲ 사진 출처 : http://www.소나기마을.kr/

 


묘비명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20세기 격동기의 한국 문학에 순수와 절제의 극을 이룬 작가 황순원 선생(1915∼2000), 일생을 아름답게 내조한 부인 양정길 여사(1915∼) 여기 소나기마을에 함께 잠들다.


묘소는 동갑인 부인 양정길 여사와의 쌍분으로 마련되어 있는데, 많은 블로그와 카페 글에는 생몰 연대를 기록한 묘비명도 살피지도 않고 부인 양여사도 함께 묻혀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당시 95세의 양여사 님이 문학관을 개관하는 행사에 자리를 함께 하고 묘소를 돌아보기도 하였다는데...  황동규 시인의 어머니인 양 여사는 100세에 가까운 지금 살아계신다.

 

선생의 묘소는 원래 천안시 풍산공원 묘원에 있었는데, 학관 개관 직전인 2009년 3월에 이곳으로 이장하였다.

 




● 황순원 문학촌 안내도


▲ 사진 출처 : http://www.소나기마을.kr/

 

 


● 황순원 문학촌 위치


▲ 사진 출처 : http://www.소나기마을.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