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자욱한 안개 속 채석강 산책하기

모산재 2012. 3. 19. 23:06

 

주말, 금산발 전주행 버스를 타고 대둔산을 찾았다가

짙은 안개비에 덮여 모습을 보이지 않는 대둔산 앞에서 발길을 돌린다. 

 

그냥 서울로 돌아오기도 민망한 상황,

바닷바람이나 쐬자 싶어 전주에서 격포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찾은 격포, 변산국립공원도 두터운 안개 속에 묻혀 있었다.

 

 

 

 

 

1989년 겨울, 청춘남녀들과 처음 찾았던 채석강 입구의 해변 백사장은 그 모습 그대로...

 

짙은 해무 속에 아름다운 추억들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어깨를 겯고 즉흥 노랫말로 진도아리랑을 밤새 불렀던 그 옛날의 백사장에서...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의 한 구절,

"나에게 무진은 2박 3일로 족한 것이다."란 말이 떠오른다.

 

돈 많은 아내를 얻어 출세가도를 달리는 주인공,

고향 무진에서 안개 자욱한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한 여교사에게 사랑을 느끼고 일탈을 경험한다.

 

그러나 아름답지만 머물 수 없는 곳.

아내의 전보를 받고 여교사에게 사랑한다고 썼던 편지를 찢고 주인공은 상경하고 만다.

 

 

두 개의 이질적인 공간.

무진의 몽환을 버리고 서울의 일상을 찾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자화상...

몽환은 2박3일로 족한 것이다.

 

 

 

 

 

 

몽환의 안개를 피하여 떡시루 같은 절벽의 지층을 더듬는다.

 

2박3일도 못 가는 부박한 안개 속에서 7천만 년 세월을 품은 견고한 지층을 만난다.

우리의 삶도 이렇게 견고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중생대 백악기에 퇴적하였다는 해식단애는

쌓아 놓은 수만 권의 책처럼 보이기도 하고 켜켜히 쪄 놓은 시루떡 같기도 하다.

 

 

 

 

 

 

 

지층으로부터 물러서면 다시 자욱하게 시야를 막아버리는 몽환의 안개...

 

 

 

 

 

 

 

 

 

격포항을 감싸고 있는 방파제와 등대의 모습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안개를 피하여 이번에는 수천만 년 바닷물에 씻기우며 끝내 남은 흔적들을 살펴본다.

 

 

 

 

 

 

 

 

 

견고함을 꿈꾸는 마음이 얼마나 부박한 것인지...

 

바닷물이 물러난 자리에는 생명들이 깃들어 산다.

수천만 년의 세월이 열어 준 틈에서 잠시 살면서도 수천만 년을 이어내려오는 생명...

 

 

녹조류와 공생하는 풀색꽃해변말미잘이 곳곳에서 하늘하늘 촉수를 움직이고 있다.

촉수만 움직일 뿐 몸은 갯바위를 닮아 고요하다.

꽃보다 더 고요하고 아름다운 말미잘...

 

 

 

 

 

풀색꽃해변말미잘

 

 

정중동이랄까,

고요의 물 속에서 아름다운 줄무늬를 가진 개울타리고동이 먹이를 찾아 몸을 끌고 있다.

 

 

개울타리고동

 

 

동물이지만 역시 바위와 한 몸이 되어 꼼짝하지 않는 따개비들...

 

 

고랑따개비와 검은큰따개비

 

 

바위를 닮은 생명들이 바위와 함께 살아간다.

생명은 슬프면서도 아름답다.

 

 

어느 사이 안개가 서서히 걷히면서 가까운 풍경들부터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한다.

 

 

 

 

 

 

 

좀 전까지만 해도 드문드문 한적했던 갯바위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이 해변의 고요를 깨는 것은 사람뿐이다.

 

 

 

 

 

 

 

 

 

 

 

 

 

■ 채석강 (彩石江)

채석강·적벽강 일원은 강한 파도의 영향으로 1.5km에 걸쳐 해식애, 해안단구, 화산암류 습곡이 발달해 있다. 2004년에 명승 제13호로 지정되었다.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반도 맨 서쪽, 격포항 오른쪽 닭이봉 밑에 있다. 옛 수군의 근거지이며 조선시대에는 전라우수영 관하의 격포진이 있던 곳이다.

‘채석강’은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한 층리가 빼어나며, 바다 밑에 깔린 암반의 채색이 영롱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달을 보며 놀았다는 중국의 채석강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지형은 선캄브리아대의 화강암, 편마암을 기저층으로 한 중생대 백악기의 지층이다. 바닷물에 침식되어 퇴적한 절벽이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하다. 주변의 백사장, 맑은 물과 어울려 풍치가 더할 나위 없다.

여름철에는 해수욕을 즐기기 좋고 빼어난 경관 때문에 사진 촬영이나 영화 촬영도 자주 이루어진다. 채석강에서 해수욕장 건너 백사장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붉은 암벽으로 이루어진 적벽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