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나옹화상의 세 사리탑, 석탑 형식의 영전사지 보제존자탑

모산재 2012. 2. 28. 22:22

 

무학대사의 스승으로 조선 불교에 큰 영향을 끼친 나옹화상 혜근(惠勤, 1320~1376)의 사리탑은 세 곳에 전해지고 있다.

 

그 하나는 나옹화상이 입적한 여주 신륵사에, 또 하나는 나옹화상이 오래도록 머물며 주지로 있었던 회암사 터에,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나옹화상의 제자에 의해 세워진 원주 영전사 터에 있던 것을 옮겨 놓아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혜근(1320∼1376) 스님의 호는 나옹이고 법호는 보제존자(普濟尊者)다. 20세 때 친구의 죽음을 보고, 출가하여 경북 공덕산 묘적암의 요연(了然)에게서 득도하고, 전국의 명산대찰을 찾아 돌아다녔다. 회암사에서 4년간 좌선하였으며 원나라에 가서 인도 승려 지공(指空)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는 견문을 더욱 넓히기 위해 중국 각지를 편력하며, 특히 평산 처림(平山處林)과 천암 원장(千巖元長)에게서 달마로부터 내려오는 중국 선(禪)의 영향을 받았다. 고려가 자주국가로서의 면모를 회복하고자 노력할 때, 나옹은 중국에서 선의 기개를 떨치고 귀국하여 공민왕의 명으로 내전에서 설법하고 회암사의 주지가 되었다. 공민왕의 왕사에 봉해지고 보제존자(普濟尊者)라는 법호를 받았다.

1376년, 우왕 때 왕명을 받고 밀양의 영원사로 가다가 여주의 신륵사에서 입적하였다.

 

 

 

 

■ 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탑  보물 제358호

 

 

보제존자 나옹화상은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하여 신륵사에 그의 사리탑이 남아 있지만 제자들에 의해 영전사에도 따로 사리탑을 세운 것이다.

 

 

 

 

 

영전사지에 남아 있던 보제존자 나옹선사의 사리탑은 2기의 석탑 형식을 취하고 있는 점이 아주 특이한 점이다. 1915년 일본인에 의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묘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탑을 지금의 자리로 옮길 당시에 각각의 탑에서 사리를 두는 장치가 발견되었는데, 그 중 한 탑에서는 지석(誌石)이 발견되었다.

 

탑지(塔誌)에는 "王師普濟尊者舍利一枚主塔安邀比丘尼妙寬同舍利一枚東塔安邀……洪武二十一年戊辰四月日誌牧使姜隱"(왕사보제존자사리1매주탑안요비구니묘관동사리1매동탑안요……홍무21년무진4월일지목사강은) 등의 내용이 있어 보제존자의 묘탑임과 1388년(우왕 14)에 건립되었음이 밝혀졌다

 

 

 

 

■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보물 제228호

 

 

우왕의 명으로 밀양 영원사로 가던 도중 나옹화상은 신륵사에서 입적하였다. 사리탑은 신륵사 뒷편 숲속 언덕에 모셔져 있으며 널찍하게 마련된 단층 기단 위에 2단의 받침을 둔 후 종 모양의 탑신을 올렸다.

 

 

 

 

 

기단은 돌을 쌓아 넓게 만들고 앞쪽과 양 옆으로 계단을 두었다. 탑신은 아무런 꾸밈이 없고,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불꽃무늬를 새긴 큼직한 보주(寶珠:연꽃 봉오리 모양의 장식)가 솟아 있다.

 

 

 

 

 

고려 우왕 5년(1379)에 세운 것으로, 나옹이 양주 회암사 주지로 있다가 왕의 명으로 밀양에 가던 도중 이곳 신륵사에서 입적하니, 그 제자들이 절 뒤에 터를 마련하여 이 탑을 세워 두었다. 고려 후기의 석종형 부도 양식을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다.

 

 

 

 

■ 나옹선사부도 및 석등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0호

 

 

또 하나의 나옹선사의 사리탑과 석등은 회암사 경내 지공선사 사리탑 위쪽 능선에 자리잡고 있다. 나옹선사는 회암사의 주지가 된 후 절을 중창하였고, 우왕 2년(1376)에 입적하였다.

 

 

 

 

 

4각을 기본형으로 앞 ·뒷면에 창을 낸 화사석이 장명등으로 진화하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석등을 앞에 두고 역시 팔각지붕에 배가 불룩한 북 모양의 탑신이 종형으로 진화해가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리탑이 세워져 있다.

 

 

 

 

 

8각을 기본형으로, 기단 위에 탑신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3단을 이루는 기단의 가운데받침돌은 배가 불룩한 북모양을 하고 있다. 둥근 탑신의 몸돌은 아무런 조각없이 간결하다. 지붕돌은 경사가 완만하며, 네 귀퉁이에서 살짝 치켜 올려갔다. 지붕돌 위로는 하나의 돌로 조각한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