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제야의 종으로 울렸던 보물 제2호 옛 보신각 동종 / 국립중앙박물관

모산재 2012. 2. 28. 17:08

 

해마다 제야(除夜)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던 종각.

 

지금은 그 자리에 2층의 대형 보신각이 서 있지만 , 예전 그 자리에는 그리 크지 않은 종루에 보신각종이 달려 있었다. 1985년까지 울렸던 그 종은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져 있다. 

보신각종은 조선 세조 14년(1468) 만들어 신덕왕후정릉 안에 있는 정릉사에 있었으나, 그 절이 없어지면서 원각사로 옮겨졌고 원각사가 폐사되자 다시 광해군 11년(1619)에 현재의 보신각 자리(서울 종로)에 옮겨졌다. 고종 32년(1895) 종루에 보신각이라는 현판을 걸게 되면서 보신각종이라고 불렀다.

 

 

 

 

 

 

 

종의 높이는 3.18m, 입 지름은 2.28m, 무게 19.66톤으로 전형적인 조선 초기의 종 형태를 하고 있다.

 

어깨부분에서 중간까지 완만한 곡선을 이루다가 중간 지점부터 입구 부분까지 직선으로 되어 있다. 몸통에는 3줄의 굵은 띠를, 종 입구 위로는 일정한 간격으로 2줄의 띠를 두르고 있고, 종의 연대를 알 수 있는 긴 문장의 글이 있다. 

 

그리고 종을 치는 자리인 당좌(撞座)도 없는데 이는 조선 초기 종들에서 보이는 특징이며, 쌍룡·띠장식 등은 중국적인 요소이다. 이 외래적인 요소는 고려 말 원나라의 장인들이 만든 연복사 종의 형식을 따른 것이고, 조선 초기 흥천사종(1462)에 나타나며, 조선 중기를 거쳐 후기에는 토착화되어 한국 종의 일면이 되었다.

 

 

 

 

 

 

광해군 때 현재의 보신각 자리(서울 종로)에 옮겨지면서 파루(오전4시)에 33번, 인정(오후10시)에 28번 울려 도성의 문을 여닫고 하루의 시각을 알리는데 쓰였다.


타종 횟수는 불교의 우주관인 '28계 33천' 신앙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28은 불교 철학에서 천체를 28개로 분류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인정 28번은 하늘에 있는 별에게 밤의 안녕을 부탁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하며, 33은 관세음보살이 하늘에 있는 33개 세계만큼 육신을 쪼개어 속세의 중생을 구제했다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파루 33번은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보신각종에는 음통이 없다. 종뉴는 두 마리 용이 함께 여의주(如意珠)를 가지고 있는 형태인데, 종의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2번의 화재를 겪으면서 몸통에 균열이 생기고 음향도 다소 변해 더 이상 타종을 할 수 없게 되어 옮기게 되었다

 

 

 

 

 

 

 

지금 보신각에 걸려 있는 종은 건국 후 국민의 성금으로 주조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