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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4) 보원사지 오층석탑, 법인국사보승탑과 탑비

모산재 2012. 2. 18. 00:38

 

보원사지는 용현자연휴양림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을 사이에 두고 넓은 평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주요 건물터와 석조유물은 모두 개울 건너 서쪽, 상왕산 줄기를 배경으로 하여 동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개울을 건너자마자 중문터로 보이는 곳과 산 가까이의 금당터 사이, 절터의 가장 중심에 우뚝 서 있습니다.  

 

 

 

■ 보원사지 오층석탑 보물 제104호

 

금당터 앞, 이중 기단의 5층탑은 약 9m 높이로 우뚝 솟아 있습니다. 다가설수록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의 위엄과 장중함, 그리고 안정감이 느껴지는데, 고려 전기의 석탑으로 보고 있습니다. 

 

 

 

탑신 1층 몸돌 각 면에는 문짝 모양이 새겨져 있으며, 수평에 가까운 지붕돌은 얇고 넓은 편이며 부드러운 체감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연상시키는 모습에서 옛 백제 탑의 특색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륜부는 네모난 노반(머리장식받침)만 남아 있고 상륜부를 고정하는 쇠꼬챙이(찰주)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습니다.

 

 

 

이중 기단의 윗기단에는 팔부중상을 새기고 아랫기단에는 사자상을 새겨 놓았습니다. 

 

팔부중상은 부처가 설법할 때 항상 따라다니며 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으로 통일신라와 고려의 석탑에 많이 나타나는 양식입니다. 

 

※ 팔부중상(八部衆像)

-천(天) : 호법신으로 도리천의 주인인 제석천(힌두교의 인드라)과 창조신인 범천(브라마)

-용 : 물 속에 살면서 바람과 비를 오게 하는 능력을 가진 존재로 호국의 선신(善神)

-야차 : 사자, 코끼리 등으로 표현. 사람일 땐 얼굴 2,3개. 야크샤(Yak a)의 음역으로 약차(藥叉)라고도 쓴다.
-건달바 : 사자관을 쓰고 창(三叉戟)을 들고 신성한 물 소마(Soma)를 지키는 신. 향만 먹어 식향(食香)이라고도 한다.

-아수라 : 얼굴이 3개 팔 6개로 제석천과 싸우는 악신이었으나, 불교에서 조복(調伏)을 받아 선신의 역할을 한다.
-가루라 : 날개 길이 336만리로 용을 먹고 사는 새의 왕. 새벽 또는 태양을 인격화한 금시조(金翅鳥).

-긴나라 : 반인반조의 가무의 신. 때로는 말의 머리로 표현되기도 한다. .
-마후라가 : 사람의 몸에 뱀의 머리를 가진 음악의 신. 칼을 들고 왼손에 뱀을 쥐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마모가 심하여 팔부중상의 모습을 알아보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다만 여섯 개의 팔을 가진 아수라는 비교적 보존 상태가 좋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른쪽 아수라

 

 

 

아래기단에는 각 면에 사자상 셋씩, 모두 12사자상을 새겼는데, 사자의 형상은 모두 다릅니다. 

 

 

법인국사부도탑 쪽(서쪽)에서 당간지주 쪽(동쪽)으로 바라본 오층석탑

 

 

 

금당터 뒤쪽, 남쪽 방향으로 비켜선 위치에 법인국사보승탑과 탑비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 보원사지 법인국사탑 보물 제105호

 

법인국사 탄문(法印國師坦文)의 사리를 모셔놓고 있는데, 법인국사보승탑이라고도 합니다.

 

법인국사는 신라 말과 고려 초에 활약한 승려로 968년(광종 19년)에 왕사, 974년에 국사가 되었고, 그 이듬해 이 곳 보원사에서 입적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사후 왕이 '‘법인'이라 시호를 내리고, '보승(寶乘)'이라는 사리탑의 이름을 내렸습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큼직한 연꽃이 조각된 복발(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 위로, 굽이 달려있는 3개의 보륜(바퀴모양의 장식)이 차례로 놓여 있습다.

 

 

 

지붕돌은 넓고 두꺼운데 목조건축에서와 같은 서까래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각 모서리 선은 뚜렷하며, 끝에는 꽃조각을 하였으나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탑신의 몸돌은 8각이며 각 모서리를 기둥처럼 새기고, 앞·뒷면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짝 모양을 새겨두었습니다. 그 양쪽에는 사천왕을 두었으며, 나머지 2면에는 높은 관을 쓴 인물상이 서 있습니다.

 

중간받침돌은 아무런 조각이 없는 8각의 배흘림기둥을 세웠으며, 윗받침돌은 윗면에 수직으로 새긴 난간조각이 눈길을 끕니다.

 

 

 

 

기단부는 8각으로 된 2개의 돌로 쌓았는데, 밑돌 각 면에는 안상 안에 사자 한 마리씩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고, 윗돌에는 구름 속을 거니는 용의 모습을 표현하고 모서리마다 꽃이 새겨져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8각의 기본 양식을 잘 갖추고 있으며, 몸돌에서 보이는 여러 무늬와 지붕돌의 귀꽃조각 등은 고려 전기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신문에 보도되었던 법인국사부도탑 사천왕상 탁본

 

 

 

■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 보물 제106호

 

높이 4.25m, 너비 1.2m의 탑비로 비몸과 함께 귀부, 이수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법인국사는 남양주의 봉선사와 개성의 관음사 등을 창건한 고려 초의 고승입니다.

 

 

 

 

 

비문에 의하면 법인국사 탄문(坦文, 900∼975)은 경기도 광주 출신으로 5세에 출가하여 장의사(藏義寺)의 신엄(信嚴)에게 화엄경을 배우고 15세에 구족계를 받았으며 그 계행이 매우 높아 고려 태조가 별화상(別和尙)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의 법력으로 광종을 낳아 태조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았고, 그 뒤 구룡사에서 <화엄경>을 강의할 때 새가 날아들고 범이 뜰에 와서 엎드리는 일이 있었다 하여 별대덕(別大德)이라 불렸으며 혜종과 정종이 지극히 공경하여 예로써 받들었다고 합니다. 968년(광종 19)에 처음으로 국사·왕사 제도가 실시되자 혜거(惠居)를 국사로, 그를 왕사로 삼아 귀법사(歸法寺)에 머무르게 하였다고 합니다.

 

974년에는 국사가 되어 가야산(보원사 동쪽 서산마애삼존불이 있는 산입니다)으로 옮겨갈 때 왕이 왕후와 백관을 데리고 전송하였으며, 어의를 보내어 병을 보살피게 하였으며, 다음해에 입적하였다고 합니다.

 

 

 

귀부는 거북 모양이나 머리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모습입니다. 목은 앞으로 빼고 콧수염은 뒤로 돌아 있으며 눈은 크게 튀어 나와 있습니다.

 

 

 

비머리는 네 귀퉁이에서 안쪽을 바라보는 용을 새기고, 앞·뒷면에는 구름무늬를 조각하였습니다.

 

 

 

탑비는 거대하고 웅장하나, 귀부와 이수의 조각 기법이 전체적으로 형식에 치우친 감이 있습니다.

 

 

부도탑과 탑비 옆으로 개심사로 넘어가는 걷는 길, '서산 아라메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개심사까지는 1.9km.

 

 

 

날씨 좋은 봄날 저 길을 걸어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문득 일어납니다.

 

아라메길 입구 

 

 

절터에서 발굴된 석재들

 

 

그리고 절터 한쪽엔 보원사지 발굴조사 유물전시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용문(龍紋) 암막새, '보원사 삼보(三寶)'명 기와, 치미편, 청동정병, 청자잔받침, 분청철화당초문병, 묵서명백자 등 고려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각종 유물들, 

 

통일신라시대의 벼루편, 중국제 청자, 진단구(토기호+청자접시) 등과 청자, 분청사기 등

 

모두 2,000여 점의 유물을 전시해 놓고 있습니다.

 

 

아래의 철불좌상들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져 전시중입니다. 박물관에 전시된 이 철불좌상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다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