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정선 민둥산, 억새밭 속으로 걷는 환상의 고산 능선 길

모산재 2011. 12. 11. 23:30

 

가을이 깊어가는 10월 초순, 억새밭으로 유명한 민둥산을 찾았다. 

  

 

정상에 나무가 없고 풀로만 덮여 있어 민둥산이라고 부르는 산은 둘 있다. 경기도 포천과 가평 사이에 있는  1,023m 높이의 민둥산과 강원도 정선에 있는 1,119m의 민둥산. 내가 찾게 된 곳은 정선 민둥산이다. 

 

 

 

아침 8시 반경에 출발하여 12시 무렵에 증산에 도착, 산행은 시작되었다. 

 

 

 

 

버스가 하차한 곳에서 길을 따라 100m 쯤 오르면 '민둥산 등산 안내도'가 나타나고, 거기서 바로 민둥산을 향해 오르게 된다. 처음부터 가파른 산행이라 약간 부담되는 느낌이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등산 안내도를 카메라에 담지 못해 민둥산 등산 지도로 산행 코스를 확인해 보기로 한다. 

 

 

 

 

남쪽인 증산초교에서 시작하여 민둥산을 지나고 지억산(1,117m)을 끼고 화암약수까지 줄곧 북쪽을 향해 일직선에 가까운 산행을 하게 된다. 전체 약 14㎞ 거리로, 5시간 정도 소요된다.

 

 

 

민둥산 정상까지는 3km 남짓 거리.

 

처음부터 시작되는 깔딱고개 산행. 깔딱고개를 오르지 않으려면 발구럭마을로 돌아서 가는 방법이 있다. 거기서 민둥산 정상으로 바로 오를 수도 있고, 우회로를 통해 이 깔딱고갯길과 합류할 수도 있다.

 

 

 

 

10여 분 오르니 우회로와 만난다.

 

 

 

 

그리고 산허리를 따라 두르는 길, 정선군 남면의 증산 마을이 눈 아래 펼쳐진다.

 

민둥산 억새 축제 기간에는 청량리역에서 강릉 가는 특별열차가 저 마을에서 선다고 한다. 자미원역과 사북역 사이에 있는 역으로 원래 증산역이었지만 2009년 가을부터 '민둥산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민둥산이 널리 알려진 것은 90년대 이후. 1996년부터 억새 축제가 시작되어 올해(2011년)로 15회를 맞는다고 한다. 올해는 어제(10.07)부터 시작되었는데 10월말까지 진행된다고 한다.

 

 

 

축제 기간이어선지 좁은 등산로는 도심의 퇴근길보다도 더 붐비는 듯하다.

 

 

 

 

 

등산로엔 제철을 만난 꽃향유가 한창 피고 있고...

 

줄기가 검붉지는 않지만 잎의 질감이 큰참나물로 보이는 참나물이 종종 눈에 띈다. 아마도 자주색 꽃이 아니라 흰 꽃이 피는 큰참나물이지 싶다. 

 

 

 

그리고 꽃철이 살짝 지났지만 개미취가 아주 흔하게 보인다.

 

 

 

 

그러구러 깔딱 고개를 어느 정도 올랐다 싶자 임도를 만난다.

 

 

매점도 있고 화장실도 있는 쉼터. 매점에서 막걸리를 파는데 지나치지 못하고 한 잔 사서 들이킨다. 짜르르 위를 자극하는 기분이 상쾌하다.

 

 

 

 

민둥산 정상까지는 1.3 km 남았다.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발구덕 마을로 이어진다.

 

 

 

 

발구덕 마을은 민둥산 남동쪽 기슭 해발 800m 지점에 있다고 한다. 증산초교에서 발구덕 마을을 거쳐 민둥산을 오르기도 한다는데, 정보를 알았다면 발구덕 마을로 갔을 걸 하는 아쉬움이 든다.

 

발구덕은 300여 년 전 평해 황씨가 들어와 움막을 짓고 살았다는 마을이다. 마을에 커다란 구덩이가 여덟 개 있어 발구덕이라 부르게 되었다는데, 윗구뎅이, 아랫구뎅이, 큰솔밭구뎅이, 능정구뎅이, 굴등구뎅이 등 모두 8개의 구덩이가 있다 한다. 자잘한 구덩이도 수없이 많아 밭 갈던 소가 툭하면 발이 구덩이 속에 빠진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

 

 

 

임도를 지나 솔숲으로 이어진 길을 어느 정도 지나자 증산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가 나타난다. 

 

 

 

 

전망대에서부터 숲은 사라지고 비로소 민둥산의 절경, 억새 군락지가 시작된다.

 

 

길가 풀섶에 각시취가 꽃을 피웠다.

 

 

 

 

눈 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올라서면 민둥산 정상이 한눈에 들어오게 된다.

 

 

 

 

 

드디어 까까머리 같은 긴 능선의 저쪽 멀리 민둥산 정상이 시야에 들어선다.

 

 

정상 주변은 온통 억새밭이다. 등산로는 비질하듯 바람을 흘려보내며 흔들리는 억새의 터널을 지나가노라니 절로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온다.

 

 

 

 

 

 

돌아서서 바라보니 정오의 햇살에 억새꽃들이 어지럽게 반짝인다. 흐릿한 내로 먼 산들이 또렷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

 

 

 

 

정상 부근에서 돌아본 능선. 증산마을이 그대로 내려다 보인다.

 

 

 

 

드디어 민둥산 정상(1118.8m) !

 

 

 

 

 

이곳 정상에 서면 동쪽의 함백산, 서쪽의 가리왕산, 남쪽의 백운산, 북쪽의 태백산이 다 보인다는데, 내가 낀 흐릿한 날씨에 먼 산들이 제 모습을 또렷이 보여 주지 않아 좀 아쉽다.

 

 

팔고 있는 막걸리를 한 잔씩 들이키며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북쪽으로 산행은 계속된다.

 

 

왼쪽으로 능선길은 이어지고 오른쪽은 돌리네(doline)란 함몰된 석회암 지형인 듯 급경사를 이루며 발구덕이란 마을로 넓은 골짜기를 이루며 이어진다.

 

 

 

 

1000m가 넘는 고산지대이지만 길은 평탄하게 이어진다. 시야가 툭 트인 길, 등산길로 이처럼 편안하고 아름다운 길이 또 있을까 싶게 상쾌하다.  

 

 

 

 

 

돌아본 민둥산 정상.

 

 

 

 

그리고 정상에서 발구럭 마을로 흘러내리는 능선길은 환상의 공제선을 이룬다.

 

 

 

 

 

 

 

 

살짝 골짜기를 이룬 비탈은 다랭이 모양의 밭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 흔적이 보인다. 아무래도 화전의 흔적이 아닐까 싶은데...

 

과연 봉우리 전체에 이렇게 넓은 억새밭이 형성된 것은 예전 화전민들이 산나물을 많이 나게 하려고 매년 불을 질렀기 때문이라고 한다.

 

 

 

 

 

억새 밭에는 곤드레나물로 더 널리 알려진 보랏빛 고려엉겅퀴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다시 능선 길이 V자로 패어지며 민둥산의 또 하나의 포토 포인트를 이룬다.

 

 

 

 

 

 

억새의 터널을 지나 맞은편 언덕 위에서 돌아본 민둥산 정상 능선 풍경

 

 

 

 

 

이 곳 민둥산 억새밭에는 아기장수 우투리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에 하늘에서 내려온 말 한 마리가 마을을 돌면서 주인을 찾아 보름 동안을 온 산을 헤매었다고 하는데, 그때부터 나무가 자라지 않고 참억새만 지천으로 자라났다고 한다.

 

하늘에서 말이 왜 내려와 사람을 찾았다는 이야기는 아기장수 우투리 전설을 떠올리게 하지 않는가. 

 

 

옛날 어느 곳에 한 평민이 아들을 낳았는데, 태어나자마자 겨드랑이에 날개가 있어 날아다니고 힘도 센 장수였다. 부모는 이 장수가 크면 장차 역적이 되어 집안을 망칠 것이라고 해서 돌로 눌러 죽였다.

 

아기장수가 죽을 때 유언으로 콩 닷섬과 팥 닷섬을 같이 묻어달라고 하였다. 얼마 뒤 관군이 아기장수를 잡으러 왔다가 부모의 실토로 무덤에 가보니 콩은 말이 되고 팥은 군사가 되어 막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결국 아기장수는 성공직전에 관군에게 들켜서 다시 죽었다. 그런 뒤 아기장수를 태울 용마가 나와서 주인을 찾아 울며 헤매다가 용소에 빠져 죽었다.

 

 

이 깊은 산골에 아기장수를 대망하는 전설이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지배층의 횡포에 쫓겨 이 산속으로 숨어든 사람들... 백성들은 이들에게서 세상을 구원할 희망을 품고... 그러나 관군이 들이닥치고 마침내 좌절된 민중의 소망은 안타까운 전설을 낳았을 것이다.

 

억새는 아기장수 우투리가 태어났을 때 태를 자르는 도구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고통스런 현실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서는 백성들의 모습, 질기고 강한 민중의 생명력을 상징하기도 하는 것이다.

 

 

 

 

 

어느덧 시야가 툭 트인 능선길은 끝나고 숲길로 들어서기 시작한다.

 

 

그 지점에서 돌아본 민둥산과 움푹 패어진 지형들이 만든 곡선의 아름다움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이 함몰된 지형을 보면서 수십 년 전 지리 시간에 공부했던 돌리네(doline)란 지형을 떠올렸는데, 과연  다음에 이어지는 길 곳곳에서 돌리네라는 함몰 지형을 만날 수 있었다.

 

 

 

돌리네(doline)

석회암 지대에서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물에 녹으면서 깔때기 모양으로 패인 웅덩이를 형성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와지 안에서 경작할 수 있는 크기를 돌리네라 부른다. 테라로사(terra rossa)라 불리는 토양이 발달하며, 돌리네가 연결된 경우 우발레(uvale)라 한다.

 

 

 

그리고 어느 사이 지억산(1,117m)이 눈 앞에 성큼 다가섰다.

 

 

 

 

지억산을 향하는 길이 너무 아름다워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고 섰다.

 

 

민둥산 , 소나기 지난 뒤 펼쳐진 풀꽃들의 천국 => http://blog.daum.net/kheenn/15855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