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부여 (16) 부여 무량사의 부속전각들 / 명부전, 영산전, 원통전, 산신각, 청한당

모산재 2011. 12. 4. 20:50

 

구릉이 흘러내리는 넓은 터에 자리잡은 무량사는 특이한 가람 배치를 보인다.

 

주법당인 극락전이 넓은 마당에 자리잡고 그 앞쪽에 오층석탑과 석등이 천왕문과 일직선을 이루고 있는데, 부속 전각들은 법당의 서쪽 높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다만, 명부전(冥府殿)만 극락전의 너른 앞마당 동쪽 담장 곁에 자리잡고 있다.

 

 

 

 

 

 

1872년 원열화상에 의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창건되었다고 한다.

 

저승 세계의 한가운데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협시하고 있다. 좌우로는 원유관에 문관복을 입고 홀을 든 모습의 시왕(十王)이 홀수(1.3.5.7.9)대왕과 짝수(2.4.6.8.10)대왕으로 늘어져 배치되어 있다. 시왕상의 양쪽 끝에는 악귀를 쫓는 인왕상이 세워져 있다.

 

 

 

 

 

'검수지옥'이라 적혀 있는 오관대왕의 모습을 클로즈업해 본다.

 

오관대왕은 명부에서 다섯 가지 형벌을 주관하는 대왕으로 망자의 네 번째 7일을 관장하는 대왕으로 세 강 사이에 큰 궁전을 짓고 중생들의 망령된 말을 죄로 다스리는데, 업칭(業秤)이라는 저울에 사람들의 죄를 달아서 그 경중에 따라 벌을 내린다. 검수지옥(劍樹地獄)은 나무가 시퍼런 칼날로 우거져 있어 걸을 때마다 살이 한 점씩 떨어져 나가는 무시무시한 지옥이다. 

 

 

 

 

 

'시왕찬탄초'에는 오관대왕의 심판 장면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오관대왕에게로 가는 길에는 폭이 오백 리나 되는 큰 강이 있는데 업강이라고 한다. 그 물결은 잔잔하면서도 뜨겁기는 열탕과 같다. 죄인이 강을 건너려 하지 않으면 옥졸이 방망이로 밀어넣어, 힘이 달려 건너면 신체가 갑자기 흐트러져 괴롭기 한이 없다. 또, 쇠이빨이 있는 독벌레가 우글우글 모여 죄인의 몸에 들러붙어 피를 빤다.

 


이와 같이 일곱 낮 일곱 밤의 큰 고뇌를 받고서야 오관대왕의 어전에 든다.

 

 

 

 

극락전의 서쪽 측면에는 승방과 종무소로 사용되는 우화궁(雨花宮)이란 이름의 전각이 자리잡고 있다. 

 

 

 

 

 

'우화(雨花)'란 꽃비를 이름이니 부처님이 영취산에서 설법할 때 흰 연꽃, 붉은 연꽃이 꽃비가 되어 내렸다는 데서 유래한 말인데, 완주 화암사 우화루 등 절집에서 가끔씩 만날 수 있는 이름이다.

 

 

 

 

부속 전각의 대부분은 극락적 서쪽 완만한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나지막한 계단을 따라 오르면 영산전과 영정각, 원통전이 차례대로 나타난다. 이들 전각은 미륵전을 향해 바라보고 있다.

 

 

 

 

 

 

영산전(靈山殿)은 석가모니와 가섭과 아난의 삼존상과 500 나한상을 모셨다. 1872년 명부전과 함께 지었다고 하는데, 특이한 점이 많이 보이는 전각이다. 

 

 

 

 

 

영산전을 바라보면 먼저 낯익은 듯한 주련의 시구가 눈길을 끈다.

 

 

千尺絲綸直下垂     천 길의 낚싯줄 곧게 드리우니

一波縡動萬波隨     파도 하나 일어나자 온갖 파도 따라 이네.

夜靜水寒魚不食     밤은 고요하고 물은 차가워 고기 물지 않는지라

滿船空載月明歸     부질없이 배 가득 달빛 싣고 돌아오노매라.

 

 

월산대군의 시조로 널리 알려진 "추강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우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라." 라는 시와 아주 비슷하지 않은가. 이 시 구절이 어째서 이 영산전에 적혀 있는 걸까...?

 

 

영산전은 석가모니불을 가섭과 아난존자가 협시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일반적으로 석가삼존불이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구성이다.

 

 

 

 

영산(靈山)은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법한 영취산(靈鷲山)을 가리키는 것이니, 석가모니가 꽃을 드니 가섭존자만이 그 뜻을 알고 미소를 지었다는 염화미소의 공간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석가모니는 상체와 고개를 앞으로 숙인 자세로 항마촉지인을 결하고 있는데, 어떤 불상에서도 볼 수 없는 엄숙한 느낌이다. 불상 뒤에는 탱화가 없고 초화문을 그린 간명한 벽화를 둔 점도 특이하다.

 

 

영산전 앞에는 다소 조잡하면서도 특이한 양식의 석등 하나가 서 있다.

 

 

 

 

그리고 영산전을 한바퀴 돌아보면 정면 출입문을 제외하고 모든 벽이 널빤지로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놀라게 된다. 이런 걸 '판벽'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영산전 오른쪽으로는 두 개의 전각이 앞뒤로 서 있는데, 앞의 전각이 김시습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는 영정각이고, 뒤의 전각은 관음보살을 모신 원통전이다.

 

 

 

 

영정각에는 김시습의 초상화 한 점이 봉안되어 있다.

 

 

 

 

1989년에 신축한 영정각에 봉안되어 있으며, 충남유형문화재 64호로 지정되어 보존하고 있다.

 

비단에 채색하여 그린 이 그림은 조선 전기 사대부상 중의 하나로, 선생이 살아 있을 때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반신상으로, 야인의 옷차림에 패랭이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다. 71.5×48.2㎝.

 

 

 

스님이었음에도 선비의 모습으로 추상 같은 선비정신이 잘 표현되었다. 살짝 찌푸린 눈매와 꼭 다문 입술, 눈에서 느껴지는 총명한 기운은 그의 내면을 생생하게 전하는 듯하여 사실적 초상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매월당집>과 <율곡집> 등에 따르면, 김시습은 생전에 두 점의 자화상을 그렸다고 하는데, 이 그림이 그 자화상인지의 여부는 알 수가 없다. 무량사 소장본은 <영남야언(嶺南野言)>에 "홍산 현감 곽시(郭翅)가 무량사에서 오랫동안 버려졌던 것을 사당을 짓고 초상을 모셔놓고 때마다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 바로 그 초상화로 추정되고 있다.

 

 

 

 

 

 

문화재청에는 무량사의 김시습 영정(충남유형문화재 64호)과 불교중앙박물관의 김시습 초상(보물 제1497호)이 따로 등재되어 있는데, 두 초상이 같은 본을 영인한 듯한데 어떤 관계인지 궁금하다.

 

 

 

 

 

 

영정각 뒤의 원통전은 지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전각인 듯하다.

 

 

 

 

 

흔히 관음전이라고 부르는데, 관음보살의 공덕이 주원융통(周圓融通)하다는 의미에서 원통전(圓通殿)이라고도 한다. 관음상은 대개 왼손에 연꽃이나 감로병을 들고 앉아 있는 모습이지만, 양류관음이나 해수관음(海水觀音) 또는 천수관음 등을 모시기도 하는데, 이곳에서는 천수관음상을 모셨다.

 

 

 

천수관음의 여러 손에 들려 있는 다양한 도상들이 흥미롭다. 좌우에 있는 조상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중생과 가장 친숙한 보살인데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이 세상에 나타나기 때문에 쓰고 있는 보관에는 아미타불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뒷편 언덕을 지나 작은 계곡을 건너편에 있는 삼성각과 청한당(淸閒堂)으로 발길을 옮긴다.

 

 

계곡을 건너기 전에 돌아본 영정각과 원통전. 왼쪽에 우화궁 지붕 추녀가 살짝 보인다.

 

 

 

 

 

 

계곡 건너편에 그림처럼 앉은 삼성각(三聖閣)청한당(淸閒堂)이 보인다.

 

위쪽 단청 건물이 산신각이고, 오른쪽 단청없는 정갈한 건물이 매월당 김시습이 말년에 머물다가 입적한 곳이라고 한다. 그 자리에 창한당이라는 건물이 세워졌다.

 

 

 

 

 

 

 

계곡에는 궁궁이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청한당은 대나무로 울을 둘러 놓고 출입을 금지해 놓았다. 하도 정감이 가는 건물이라 가까이 다가서고 싶은 마음 꿀떡 같지만 참고 말았다. 청한당이란 현판 글씨도 참 정겹더만...

 

 

 

 

 

아쉬운 마음에 멀리 마당 쪽에서 사진 한번 더 담아 주고 발길을 돌린다.

 

 

 

 

 

민간신앙을 불교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전각이 삼성각이다.

 

 

 

 

 

1931년에 건립한 3칸 건물인데, 안에는 불단을 두고 각 칸마다 산신탱,칠성탱, 독성탱을 걸었다.

 

 

 

 

 

산신각 외벽의 벽화들

 

 

 

 

 

 

 

 

 

이렇게 해서 무량사의 전각들을 모두 돌아보았다.

 

다시 절집 앞마당을 지나며 우아한 이층절집 극락전과 그 절집을 담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자꾸만 돌아본다. 그리고 매월당의 또다른 흔적을 찾아 천왕문 맞은 편 오솔길로 접어든다.

 

 

 

 

 

 

※ 무량사 전각 배치도(출처: 다음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