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부여 (9) 코스모스꽃 물결치는 구드래나루, 구드래 이야기

모산재 2011. 11. 23. 13:03

 

부소산을 내려와 구드래나루로 향한다.

 

딱히 구드래나루를 찾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낙화암에서 구드래나루에 부교가 떠 있는 모습을 보고 호기심이 끌려 절로 발길이 닿은 것이다.

 

서문으로 내려오니 길은 구드래공원을 통하여 구드래 둔치로 이어진다.

 

 


강둑에 올라서자 백마강에는 왕흥사터로 이어지는 긴 부교가 보이고, 둔치에는 백제문화제의 일환으로 '금강 강가의 가을 축제' 행사장 천막들로 물결을 이루고 있다.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꽃이 장관을 이루는 구드래 강변에 백마강 부교가 설치되었다. 왕흥사터를 향해 이어진 부교의 길이는 250m, 국내 최대의 부교라 한다. 

 

 

 

부교 입구

 

 

 

 


의자왕이 왕실 사찰인 왕흥사를 찾을 때 건넜다는 역사 기록에 근거해 구드래나루터에 설치했다고 한다.

 

 

 



왕흥사터의 위치에 대한 사전 지식을 갖지 못하고 구드래나루터를 찾았던 것이 못내 아쉽다. 부교 바로 건너편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당연히 부교를 건넜을 것을...

 

문화재청 자료로 왕흥사지에 대해 알아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기로 하자.

 


왕흥사터는 1934년 '왕흥(王興)'이라 새긴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확인되었다. 2000년부터 2010년까지 11차 발굴 조사를 통해 목탑터, 금당터를 비롯하여 동서 회랑 및 동서 건물터, 강당터 및 부속건물터 등을 확인하였으며 외곽에서 백제~고려시대 기와 가마터도 발굴하였다. 

 

↑ 출처 : 문화재청


또한 목탑터 사리공 내부에서 금제사리병, 은제사리호, 청동사리합의 3중구조로 안치된 사리기가 출토되었다. 청동사리합에는 "정유년(577년) 2월 15일 백제왕 창(昌)이 죽은 왕자를 위해 탑을 세우고 본래 사리 2매를 묻었을 때 신의 조화로 셋이 되었다.”는 글이 새겨져 있어 왕흥사 창건의 비밀이 일부 밝혀지게 되었다.

 

 


강변에는 아마도 학생들이 쓴 것으로 보이는 소원지가 만국기처럼 펄럭이고 있다. 

 

 

 



구드래 강변을 환하게 장식하는 코스모스 꽃밭, 코스모스가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으로 다가오기는 초중학교 시절 고향 신작로의 코스모스길 이후로는 처음인 듯하다. 

 

하루 내내 망국의 유적지를 돌며 쓸쓸함에 젖었던 마음이 달래지는 듯하다.

 

  


 


  


 

 



건너편 산은 '뜬 산'이라는 뜻을 가진 부산(浮山)이다.

 

 

 

 

여기서 잠시 '구드래'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구드래는 부소산 서쪽 기슭의 백마강 가에 있는 나루터 일대를 말한다. 강 건너에는 백제 왕실의 원찰이었던 왕흥사 옛 터가 있는데, 이 일원은 국가 명승 63호로 지정되어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사비수 절벽에 바위가 있어 백제왕이 왕흥사에 예불을 드리러 가다 이 바위에서 망배하자 바위가 저절로 따뜻해져서 ‘자온대(自溫臺)’라 부르게 되었는데, 이를 구들돌[(火+突)石]이라 하고 이에서 구드래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는 것이다.

 

민간전설에 따르면, 낚시질을 좋아하는 의자왕이 이 바위에 이를 때 간신배들이 미리 불로 바위를 데워 놓고 임금의 선정에 하늘의 뜻으로 바위가 데워졌다고 아첨하여 '자온대'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자온대'라고 부르는 바위는 구드래 나루가 아니라 백제대교 서쪽 강가에 있어 삼국유사의 기록과는 어긋나고 있다. 수북정이 딛고 있는 이 바위는 당나라 군사들이 침공할 때 사비성의 상황을 엿보던 곳이어서 '엿바위' 라고도 전해 오다 뜻을 빌린 한자명 규암(窺岩)이라는 현재 지명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구드래라는 이름은 성왕의 사비 천도 이후 일본에 불교를 전파하면서 수많은 승려와 사원 기술자들이 파견되면서 드나들었던 땅으로 일본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 일본에서는 백제를 구다라로 부르게 되었다.

 

 


그 구드래 강변에 백제의 깃발이 펄럭이며 제57회 백제문화제 강가의 가을 축제로 사람들이 출렁이고, 나도 그 대열에 섰다.

 

 

 


오후 늦은 시간, 무대 위에선 '백제 기악 미마지 탈춤 공연'이 이루어질 시간인데 대학생들이 무대에 올라 공연하는 것이 뭔지 어설퍼 보여 발길을 옮긴다.

 

미마지는 '일본 아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백제의 음악가. 일본에 건너가 사천왕사에서 고구려의 사자춤과 가면극을 가르쳤는데, 지금도 일본 오사카 사천왕사엔 그가 제자를 가르치던 돌무대가 온전히 전하고 있다.

 

 


구드래 강변은 백제를 기념하는 문화행사보다는 먹자 장터를 찾는 인파들로 더 북적이는 듯하다. 사람 사는 게 그런 거니까...

 

 




※ 부여 안내도(왕흥사지와 구드래나루: 다음 스카이뷰 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