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부여 (5) 삼천 궁녀의 넋을 기리는 부소산성 궁녀사

모산재 2011. 11. 20. 19:15

 

반월루에서 능선길로 접어들면 부소산의 최정상 사비루로 오르게 되는데, 나는 오른쪽 골짜기 궁녀사 방향으로 내려선다.

 

길 이름을 태자골 숲길이라 하였는데, 백제궁의 왕자들이 사색하며 산책하던 길이라 하여 이름지은 모양이다. 정상으로 난 길과 달리 참으로 호젓하여 좋다.

 

 

 

태자는 아니어도 왕자의 걸음으로 태자골을 따라 걷는다.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니 묵은 계단식 논이 나온다. 아마도 몇 년 전까지 벼농사를 지었지 싶게 논의 모습이 또렷하게 남아 있다. 

 

 

 

 

 

산책로 주변 습한 그늘에는 낙화암에 몸을 던진 궁녀들의 한인듯 꽃무릇이 무리지어 붉은 꽃을 피우고 있다.

 

 

 

 

바로 꽃무릇이 피어 있는 길이 끝나는 태자골에 궁녀사()가 자리잡고 있다. 

 

외삼문을 들어선다.

 

 

 

삼문을 들어서면 잔디가 잘 다듬어진 넓은 안뜰 끝에 작은 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660년 나·당 연합군에 의해 사비성이 함락되던 날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있는 '삼천 궁녀'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에는 세 사람의 궁녀를 그린 궁녀도()를 모셔 놓았다. 

 

 

 

사비성이 무너지고 나당 연합군에 밀려드는 상황, 공포에 질린 궁녀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많은 궁녀들이 목숨을 끊었으리라.

 

이름 없이 죽어간 그 많은 궁녀들의 영정을 모실 수 없으니, 궁녀 삼인으로 대표하여 추모 공간을 마련하였다. 하지만 삼천 궁녀를 대표하기엔 너무 고적하여 망국의 비극적 의미가 반감되는 느낌이다. 삼천이란 숫자가 비현실적이라 할지라도 좀더 많은 궁녀상을 모셨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건물 정면의 현판 글씨는 김종필 씨가 쓴 것이다.

 

 

 

사당은 1966년에 세워졌으며, 매년 10월 백제문화제 때 제향하고 있다고 한다.

 

 

 

궁녀사에서 길은 끊어진다.

 

다시 오던 길을 되짚어가자니 재미없다 싶어 사당 뒷산을 넘어 바로 고란사 쪽으로 가기로 하고 흔적만 겨우 남아 있는 오솔길로 접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