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

추자도 (6) 하추자도 올레길 /예초리 수호신, 엄바위-추자도 최고봉, 돈대산의 전망

모산재 2011. 9. 27. 18:21

 

아름다운 갯마을 예초리를 뒤로 하고 도로를 따라 얼마쯤 걷다 보면, 왼쪽 산언덕으로 집채보다 큰 우람한 회색 바위가 나타난다.

 

 

 

 

이름은 엄바위. 바위 아래에는 장승이 서 있다.

 

 

 

이 바위는 예초리 마을의 수호신 같은 역할을 해 왔다고 한다. 옛날 바위 아랫부분에 장군의 형상이 새겨져 있어 누구나 이 바위를 지나가면 절을 하고 소망을 기원하였으며, 해마다 정월 마을에서 풍악을 울리는 걸궁 놀이를 할 때는 이 엄바위 밑에도 와서 한마당 놀았다 한다.

 

어떤 자료에는 이 길은 "좃 잡고, 코 잡고 바위를 쳐다보면서 절하고 지나가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이 바위 아래에 아름드리 소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한 나무꾼이 베어 버렸다. 나무를 베는 순간  커다란 새 한 마리가 날아 오르며 "상추자도와 하추자도 사이를 메우면 다시 돌아올 것"이라며 사라졌다고 한다. (또는 마을 사람들이 신조(神鳥)가 사라져 마을에서 큰 인물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을 하는데, 꿈에 노인이 나타나 "상추자와 하추자도를 연결하면 신조가 아무도 몰래 엄바위 아래로 다시 찾아오고 그렇게 되면 추자도에도 큰 인물이 날 것이며 섬전체가 부자마을이 된다."고 현몽하였다고도 한다.)

 


문화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는 상추자도와 이어지고자 하는 예초리 사람들의 소망이 잘 반영된 전설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바위 밑에 세워져 있는 장승을 '억발장사'라 부르는데 여기에도 전설이 전해내려 오고 있다.

 

 

 

옛날 이 바위에서 150 미터쯤 떨어진 해변에 500톤이나 나가는 공깃돌 닮은 바위가 다섯 개가 있었는데, 엄바위의 억발장사가 공기놀이를 하다가 횡간도로 건너 뛰다가 바위에 미끄러져 죽었다고 한다.

 

 

 

이런 전설을 바탕으로 결혼하면 청춘과부가 된다는 속설이 생겨나 예초리와 횡간도 사람들은 혼인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앞에서 두 섬이 지네와 닭의 상극관계라는 풍수지리학적인 해석과는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어쨌거나 바다를 사이에 두고 빤히 쳐다보이는 예초리와 횡간도 사람들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근거가 되는 전설이 아닐까 싶다. 

 


현재는 억발장사 하나만 세워져 있지만, 한때는 두 개의 장승이 서 있었던 적도 있단다.

 

 

 

 

엄바위 장승을 지나 큰 도로를 따라 가노라면 절로 신양리로 넘어가는데, 왼쪽 산 언덕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학교 가는 샛길'이라는 이정표를 붙여 놓았다.  

 

 

 

예전 도로가 나기 전 시절에 예초리 아이들이 이 길을 따라 고갯길을 넘어서 신양리에 있는 추자국민학교 신양분교와 추자중학교를 다녔던 흔적을 보존해 놓은 것이다.

 

 

 

길섶에는 그 예전 아이들도 흔하게 보았을 보랏빛 갈퀴나물 꽃이 피어 있다.

 

 

 

얼마간 가던 오솔길은 다시 도로로 내려선다. 도로가 추억의 길을 삼켜버렸다.



 


신양리로 넘어가는 길에는 예초리 사람들의 정서를 나타내 주는 전설의 흔적이 있다.

 

예초리 마을 앞 큰산과 그 건너 엄바위산 중간 지점에는 신양리에서 예초리를 넘어다 보는 것처럼 '공알바위'라는 바위 하나가 있었다고 한다. 바위 모양이 여자의 음부처럼 생겨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 예초리 마을에 재앙이 자주 들었는데, 어느 무당이 "신양리 사람들이 항상 예초리를 넘겨다 보며 감시하기 때문에 큰사람도 안 나고 못산다."고 하여 예초리 사람들이 공알바위를 깨뜨렸고 예초리에서 이 바위가 보이지 않게 방사탑을 쌓아 막아 버렸다고 한다.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추자도에서 가장 외진 곳에 사는 예초리 사람들의 소외감(또는 컴플렉스)를 잘 나타내 주는 전설이 아닐까 생각된다.

 

 


까마귀쪽나무에서는 꽃이 피려고 하는지 연두색 봉오리가 부풀고 있다. '구럼비나무'라는 아름다운 딴이름의 이 나무를 보면서 해군기지가 들어서려고 하는 제주도 구럼비해안과 강정마을의 운명을 떠올려 본다.  

 

 

 

거지덩굴도 꽃을 피우고...

 

 

 

신양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 못 미쳐서 돈대산 오르는 길이 나 있다.

 

등성이로 접어들면서 신양 앞바다와 그 너머 석지머리, 사자섬(수덕도), 푸랭이(청도) 등이 한눈에 펼쳐지고...

 

 

 

벌초하는 사람들도  만난다.

 

 

 

길섶에 갯고들빼기가 노란 꽃을 피웠고

 

 

 

주홍부전나비 한 마리 사뿐히 날아들었다.

 

 

 

돈대산 정상에 오르며 내려다보는 예초리 뒷산인 추석산(큰산). 돈대산과의 사이에 신양리로 이어지는 하얀 도로가 보인다.





돈대산(燉臺山, 164m)은 신양리 북쪽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추자도의 최고봉이다. 돈대산 정상으로 오르자 추자도의 전경이 사방으로 시야에 들어온다.

 


신양리 동쪽 모진이작지라고 불리는 콩돌해안

 

 



신양항과 석지머리 너머 사자섬(수덕도)과 푸랭이(청도)가 보인다.

 

 

 


그리고 신양리와 묵리가 이어지는 너른 구릉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구릉지는 추자도에서 가장 평탄한 들을 이루는 곳인데, 지금은 경작지의 모습을 잃고 무성한 수풀이 덮여 있다. 

 

 

 

조선 후기 정조 때 주색에 빠져 국고를 횡령한 죄로 이 섬에 귀양왔던 안조환은 만언사(萬言詞 )라는 유배 가사를 남기고 있는데, 당시의 추자도는 보리 농사를 많이 지었는지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어와 보리가을 되었는가 전산 후산에 황금빛이로다.

          남풍은 때때 불어 보리 물결 치는고나. 

 


'황금빛 보리 물결'치는 들판이 바로 저 구릉지였을 거라 생각되는데, 지금은 농토의 흔적을 찾을 수 없으니 세월이 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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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조환과 추자도

 

안조환은 귀양살이 하는 동안 섬 아이들로부터 '귀양다리'라는 조롱과 돌팔매질까지 받아야 했으며, 먹고 살기 위하여 새끼 꼬기, 고기 낚기 등은 물론 걸인이 되어 돌아 다니가까지 하였다고 전한다. 추자도로 들어설 때의 심경과 귀양살이의 비참함을 그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출몰사생 삼주야에 노 지우고 닻을 지니

수로 천리 다 지내어 추자섬이 여기로다.

도중으로 들어가니 적막하기 태심하다.

사면으로 돌아보니 날 알 이 뉘 있으리

보이나니 바다이요 들리나리 물소리라.

벽해상전 갈린 후에 모래 모여 섬이 되니

추자섬 생길 제는 천작지옥이로다.

해수로 성을 싸고 운산으로 문을 지어

세상이 끊쳤으니 인간은 아니로다.

 

방 한 간에 주인들고 나그네는 들 데 없네.

띠자리 한 잎 주어 처마 밑에 거처하니

냉지에 누습하고 즘생도 하도할사
발 나문 구렁배암 뼘 나문 청진의라
좌우로 둘렀으니 무섭고도 징그럽다.

서산에 일락하고 그믐밤 어두운데

남북은 두세 집에 솔불이 희미하다.
어디서 슬픈 소리 내 근심 더하는고
별포에 배 떠나니 노젓는 소리로다.

 

 

 

묵리와 섬생이, 수영여

 

 

 

 

 

날씨가 화창한 날이면 사자섬과 푸랭이(청도) 사이로 제주도 한라산이 환하게 보인다는데, 오늘도 바다안개가 흐릿하게 끼어 볼 수 없어 아쉽다. 

 

제주도 귀양객들이 지나면서 갓을 벗는다는 관탈섬도, 목숨을 끊을 듯 바위의 비탈이 심하다는 절명여도 안 보이기는 마찬가지...

 

 

 

정상에는 전망대 겸 휴게 공간으로 정자가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홀로 카메라를 메고 자전거 여행을 하는 어느 아저씨의 정보로 나바론 절벽은 어제 갔던 추자 처사각이 아니라 후포를 지나 용등산 쪽으로 가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추자 처사각으로 오르면 절벽 위에 오르게 되어 정작 절벽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북동쪽으로 보이는 섬들/ 추포도, 횡간도, 검은가리, 달섬...

 

 

 

북서쪽으로 보이는 섬들/ 상추자도 너머의 직구도, 수령섬, 염섬, 악생이, 추포도...

 

 

 

 

돈대산 너머 묵리로 한가롭게 걸어 갔으면 좋으련만, 쫓기는 일정에 다 만족시킬 수는 없지 않느냐...

 

 

 

싸 가지고 온 빵과 우유로 점심을 대신하고 다시 오던 길로 내려선다. 마침 예초리에서 버스가 출발할 시간인데 도로를 따라 신양리로 걷고 있노라니 버스가 온다. 

 

 

상추자도 용등산과 나바론 해안절벽을 구경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