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

추자도 (5) 하추자도 올레길 / 예초리 해안길(예초리 포구-예초리 기정길-신대산 전망대)

모산재 2011. 9. 26. 11:44

 

8월 10일, 아침이 밝았다.

 

창문으로 드는 빛이 환하다. 화창한 날씨! 참으로 다행이다. 아침 식사하러 나서는 길 추자항은 세수를 한 듯 말끔한 풍경을 드러내고 있다.

 

 

 

 

 

 

오늘은 하추자도 예초리 부근 기정길을 걸은 뒤 돈대산에 오르고, 시간에 여유가 있으면 나바론 해안절벽을 다시 찾아 보기로 한다. 그리고 오후 네 시 무렵 제주도로 건너가는 거다.

 

 

 

아침 식사를 마친 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하여 등대산 공원을 오른다. 등대산은 추자항의 동쪽을 방파제처럼 아늑하게 감싸고 있는 언덕으로 가장 높은 곳에는 정자가 서 있다.

 

환한 햇살 속에 드러나는 상추자도의 멋진 풍경들... 

 

 

등대산에서 내려다본 추자항. 작은 배 하나가 정중동의 풍경을 만들고 있다. 고요하고 평화롭다. 

 

 

 

 

 

차례대로 포개진 염섬, 추포도, 횡간도. 그리고 오른쪽에 떨어져 있는 검은가리, 맨 오른쪽 아슴프레 떠 있는 섬은 '우두일출(牛頭日出)'로 유명한 쇠머리섬. 

 

 

 

 

 

 

횡간도 뒤쪽에는 보길도가 있는데, 아쉽게도 구름이 가리고 있는 탓인지 보이지 않는다. 염섬과 추포도 사이에는 예도라는 작은 섬이 보인다. 오른쪽 끝의 작은 바위섬은 검둥여.

 

 

 

 

 

염섬 왼쪽으로 수령섬이 보인다. 수령섬 옆에 악어처럼 엎드려 있는 바위섬은 악생이여.

 

 

 

 

 

전망대의 섬 안내판

 

 

 

 

 

화창하다지만 하늘엔 흰구름이 떠 있다. 햇살을 가리지 않을 만큼...

 

 

 

 

 

 

중앙식당에서 아침을 먹은 뒤, 배낭을 메고 하추자도 올레길을 찾아 나선다.

 

마침 출발하는 공영버스를 타고 하추자도 신양항을 지나 돈대산(164m)과 추석산(125m) 사이의 낮은 고개를 넘어 동북쪽 끝에 자리잡은 예초리 종점에서 내린다.

 

 

방파제에서 본 예초리. 마을 뒷산이 추석산이다.

 

 

 

 

 

예로부터 예의범절이 잘 지켜지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오씨 집성촌으로 1970년대 까지도 130여 호에 달하였지만 지금은 90세대 정도가 산다고 한다.

 

마을 뒷산인 추석산(큰산)의 경사가 급해 농경지가 없어 대부분 어업에 종사한다고 한다. 해조류 중 '참몰'(모자반)'이 가장 많이 나는 고장이란다.

 

 

예초리 방파제로 나서니 탁 트인 북쪽 바다 풍경에 가슴이 시원해진다.

 

멀리 북서쪽으로 상추자도와 직구도가 보이고, 염섬 너머로 수령섬이 포개졌다.

 

 

 

 

 

마을 앞바다 갯바위 너머로는 추자도에 딸린 두 개의 유인도, 추포도와 횡간도(빗갱이)가 훤하게 보인다. 추포도는 예초리 소속이건만 횡간도는 대서리 소속이란다.

 

 

 

 

 

풍수지리학 상으로 예초리 마을은 닭으로 비유되고 횡간도는 지네여서 상극인데, 그 때문에 두 마을 사람들끼리는 서로 결혼을 안 하고 지내왔다고 한다.

 

두 섬은 각각 추자십경의 하나를 이룬다. 돛단배의 풍경이 아름다웠다는 '횡간추범(橫干追帆)'과 밤 멸치잡이 불빛으로 어둠을 밝혔던 '추포어화(秋浦漁火)'가 그것이다.

 

 

 

 

 

횡간도와 검은가리 오른쪽으로 공깃돌 같은 작은 섬들이 점점이 늘어서 있다.

 

 

 

 

 

섬들의 이름은 상섬 구멍섬 보름섬(망도) 등인데, 이들이 또 하나의 추자십경 '망도수향(望島守鄕)'이다. 추자군도의 가장 동쪽에 있는 보름섬(망도)은 타향에 나갔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들어서는 관문이 되는 섬이란다. 수평선에서 고향을 지키는 상징인 섬이다.

 

 

 

 

 

 

 

예초리 마을을 지나 해안 길로 접어든다.

 

 

붉은 갯바위가 아름다운 해안. 멀리 상추자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해안길은 점차 비탈이 심해지고 길 아래는 절벽을 이루기 시작한다.

 

 

 

 

 

이른바 '예초리 기정길'이 시작된다. '기정'이 무슨 뜻?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벼랑이나 절벽을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라고 풀이 되어 있다.

 

가파르게 솟은 추석산('추자도의 돌산'이라는 뜻? '큰산'이라고도 한다)에 기대어 난 기정길은 반대편으로 일망무제의 푸른 바다를 끼고 신대산 전망대를 향하여 서서히 고도를 높여 간다.

 

 

 

 

 

해안 절벽을 끼고 도는 길은 한가롭다. 태풍이 지나간 뒤라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맑고 향기롭다.

 

 

꿈결 같은 수평선에는 쇠머리섬...

 

 

 

 

 

해안 절경을 만끽하며 걷는 길은 즐겁다.

 

 

 

 

 

 

해안길에서 병풀을 만난다.

 

 

 

 

 

긴병꽃풀과 닮은 풀, 하지만 족보는 전혀 다르다. 긴병꽃풀은 꿀풀과이지만 병풀은 산형과...

 

마디마디 뿌리를 내리며 줄기를 벋는 병풀, 들여다보다가 꽃이 피어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금방 추석산에서 동쪽으로 벋어내린 가장 높은 능선을 향해 가파른 언덕을 오른다.

 

 

 

 

 

하추자도 동쪽 끝에 자리잡고 있는 신대산 전망대는 망망대해만 보일 뿐 실상 볼 것이 별로 없다.

 

 

 

 

 

전망대를 지나면 다시 작지(자갈의 제주 방언) 해안으로 접어들고, 다시 한 줄기의 능선이 벋어 내린 해안 절벽으로 올레길은 이어진다.

 

우묵한 곳에 자리잡은 백사장은 혹시 고래가 죽었다는 '고래죽은작지'쯤일까. 예초리 동쪽해안이라 했으니....

 

저 해안 끝을 돌아서면 거기에 황경헌의 묘가 있고, 그곳을 지나면 신양리로 들어서게 된다.

 

 

 

 

 

 

예초리는 근대사의 아픈 흔적이 새겨진 역사적 고장이기도 하다.

 

1801년 신유박해의 실상과 조선 조정을 굴복시킬 방안을 백서로 써서 몰래 보낸 '황사영 백서 사건'이 일어난다. 황사영은 능지처참을 당하고 부인 정난주는 제주도 관노로 가면서 두 살짜리 아들을 이 마을 바닷가 '물생이끌'에 내버린 것을 오상선이란 분이 거두어 키웠다고 한다.

 

 

더보기
※ 황사영 백서 사건

1801년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일어나 중국인 주문모(周文謨) 신부를 비롯하여 많은 교회지도자들이 체포되고 황사영에 대한 체포령도 내려지자, 황사영은 충청도 제천의 배론(舟論)이라는 토기 굽는 마을로 피신하여, 토굴에 숨어서 자기가 겪은 박해상을 기록해 두었다.

이 때 박해를 피하여 배론까지 찾아온 황심(黃沁)을 만나 조선교회를 구출할 방도를 상의한 끝에, 박해의 경과와 재건책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길이 62㎝, 너비 38㎝의 흰 비단에다 한 줄에 110자씩 121행, 도합 1만 3311자를 검은 먹글씨로 깨알같이 써서, 옥천희(玉千禧)로 하여금 10월에 중국으로 떠나는 동지사(冬至使) 일행에 끼어서 북경 주교에게 전달하게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9월 20일(양력 10월27일) 옥천희가 먼저 잡히고, 이어 황심이 9월 26일에 체포되어 백서는 사전에 압수되고, 황사영 자신도 9월 29일 잡히는 몸이 되었고 11눨에 능지처참을 당하였다.

백서의 내용은 1785년(정조 9) 이후의 교회의 사정과 박해의 발생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한 다음, 신유박해의 상세한 전개과정과 순교자들의 간단한 약전(略傳)을 적었다. 그리고 주문모 신부의 활동과 자수와 그의 죽음에 대하여 증언하였다. 끝으로, 폐허가 된 조선교회를 재건하고 신앙의 자유를 획득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즉, 종주국인 청나라 황제에게 청하여 조선도 서양인 선교사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할 것을 요청하였고, 아니면 조선을 청나라의 한 성(省)으로 편입시켜 감독하게 하거나, 서양의 배 수백 척과 군대 5만∼6만 명을 조선에 보내어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도록 조정을 굴복하게 하는 방안 등을 제시하였다.

다산 정약용의 조카사위로 장원급제하여 정조의 사랑을 받고 등용되었던 황사영은 중국인 신부 주문모에게 영세받고 알렉산드르라는 교명으로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우묵한 곳으로 접어들던 올레길에서 벗어나 다시 예초리 쪽으로 가는 길로 들어선다. 신양리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넉넉지 않다. 예초리에서 엄바위를 지나 바로 돈대산 오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자. 

 

 

 

 

 

예초리로 넘어서는 마을 뒤 고갯길

 

 

 

 

 

그곳에서 우물을 만난다.

 

 

 

 

 

우물을 보고 나니 시원한 물이나 마셨으면 좋겠는데... 아니, 어느 민가에 들어가서 예초리 사람들이 즐겨 먹었다는 냉콩나물국 한 그릇 얻어 마시면 어떨까 싶다.

 

 

예초리 사람들은 평상시는 물론 명절이나 잔치, 제사 때에도 콩나물을 삶았던 물을 차게 식힌 다음 거기에 갖가지 양념을 넣고 간을 맞추어서 콩나물국을 만들어 먹었다 한다. 삶은 콩나물을 찬물에 넣고 양념해서 먹기도 했단다.

 

 

시원한 냉콩나물국을 상상하며 노인들만 사는 예초리 골목길을 지난다.

 

 

 

 

 

예초리를 지나 포장도로를 따라 엄바위로 향한다. 하추자도 북쪽 해안도로와 상추자 전경이 그림처럼 보인다.

 

 

 

 

 

돌아서서 바라보니 예초리는 더욱 아름다운 그림이 되어 있지 않은가.

 

 

마을과 붉은 갯바위와 방파제, 추포도와 횡간도와 검은가리, 가물가물 보이는 보름섬 등 작은 섬들까지 푸른 바다와 어울려 환상의 풍경을 이루었다.

 

 

 

 

 

 

 

<추자도 안내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