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전철 타고 강촌 여행, 개발 바람 타는 문배마을 찾다

모산재 2011. 8. 8. 01:49

 

이 무더운 날, 갈 만한 데가 마땅치 않은데 문배마을과 김유정 문학촌을 찾을까 싶어 상봉역으로 가서 경춘선 전철을 탄다.

 

작년 연말에 개통된 경춘천 전철 여행은 처음이다. 전철로 바뀌고 보니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문이 열리자마자 다투어 후다닥 뛰어든다. 표를 예매하고 정해진 자리에 앉아가던 격조(?) 있는 여행은 사라졌다.  

 


전철은 터널과 들판으로만 달린다. 북한강을 따라 달리던 기차의 낭만은 사라지고 잦은 터널 구간을 지날 때마다 귀를 괴롭히는 시끄러운 쇠바퀴 소리... 30분 정도 시간이 단축된 댓가로 풍경과 낭만을 잃고 소음을 얻었다.

 


전철 강촌역은 강변에 있던 옛 기차역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 안쪽 창촌중학교 옆 산자락 아래 아주 거대한 건물로 세워졌다. 춘천에서 흘러내리던 북한강변 절벽 위에 서 있던 옛 강변 역이 버려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선 갑자기 억울하고 허탈해진다.

 


역사를 나와 구곡폭포 쪽으로 향한다. 예전의 큰 도로는 그대로인데 구곡폭포 앞쪽으로 거대한 콘크리트 하늘 전철길이 가로지르고 있으니 자전거가 다니던 호젓하던 전원 풍경은 망가져 버렸다.

 

 

구곡폭포 입구에 이르니 구곡폭포 출입이 8월말까지 통제된다는 안내판이 서 있다. 문배마을을 '자연친화적인 산상관광지'로 개발한다면서 구곡폭포에는 전망데크를 설치하고 문배마을 오르는 등산로에는 돌계단을 만들며 상수도 공급관로를 설치하는 공사를 한단다.

 

6.25 전쟁도 모르고 지나갔다는 몇 집 안 되는 호젓한 외딴마을이 개발 바람을 탄 모양이다. 춘천시가 30억이나 되는 예산을 투입하게 된다니 산 마을이 이제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입구 식당에서 막국수 한 그릇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문배마을길로 들어선다. 구곡정까지는 갈 수 있다고 하지만 어차피 구곡폭포도 볼 수 없고 다시 돌아나와야 하니 아쉽지만 산길로 문배마을로 직행하기로 한다.

 

 

 

문배마을 가는 산길에서 만난 들꽃과 나비들

 

 

제이줄나비

 

 

 

 

물이 흐르는 물가와 길가엔 물양지꽃이 샛노란 꽃들을 피웠다.

 

 

 

 

왕자팔랑나비

 

 

 

동자꽃

 

 

 

뿔나비나방

 

 

 

풍뎅이 종류. 톱하늘소로 보인다.

 

 

 

작은 계곡엔 꼬마 폭포도 있다.

 

 

 

나무다리를 건너고...

 

 

 

황오색나비인지, 수노랑나비인지...

 

 

 

그리고...


키다리난초로 보이는 나리난초속 난초를 만난다. 

  

 

 

 

가장 흔한 옥잠난초 외에 나리난초, 참나리난초, 한라옥잠난초, 키다리난초, 나나벌이난초, 흑난초 등 유사종이 그리 흔치 않게 이 땅에 자생하는데 구별하기가 만만치 않다. 

 

이 중 나리난초와 참나리난초는 잎가장자리에 주름이 없다고 하니 나리난초는 아닌 듯하고, 입술판이 넓은 걸로 봐서는 키다리난초이지 싶다. 다만 키다리(40m까지 자란다)라는 이름에 어울릴 만큼 키가 크지는 않다.

 

 


봉화산을 오르던 능선길에서 구곡폭포 위쪽 방향으로 산허리를 얼마간 타고 가다가 작은 바위 언덕을 넘어서자 드디어 문배마을이 나타난다.

 

 

 

문배마을 앞 계곡을 수자원공사가 그냥 두지 않았다.

 

구곡폭포 위 이 높은 지대의 꼬마 분지에 커다란 저수지를 만들어 놓았다. 그림이야 참 괜찮지만 그러나 이런 풍경은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흔해 빠진 것 아닌가.

 

 

 

저수지 둑 아래로 흘러내리는 계곡을 내려다보며 원래의 계곡 모습을 상상해 보지만 허망한 일이다.

 

 

 

 

호숫가 산언덕에 노랑애기나방 한 마리가 앉았다.

 

 

 

지난해 문배마을은 환경부로부터 '자연생태 우수마을'로 지정되었다 한다.

 

외딴 산마을에 웬 자연생태 우수마을인지... 기다렸다는 듯 춘천시는 올해 국비 사업으로 18억원을 투입하여 문배마을 안길을 황토로 포장하고 배수로를 만들고 저수지 경관 정비 사업을 벌이고 있다.

 

곳곳엔 관광객을 위한 안내 간판을 세우고 연못 주변엔 야생화 꽃밭을 조성해 놓았다.

 

 

 

어차피 만들어진 저수지, 그 주변에 꽃을 심는 것이야 좋은 일이지만, 천편일률적인 야생화 공원 바람이 이 오지에까지 불어닥친 일은 참 그렇다.

 

어째서 이 깊은 산속에까지 도시공원을 옮겨 놓은 듯한 풍경을 만들어야 할까. 

 

그나마 왕원추리는 자생종이니 그냥 봐 준다 치더라도...

 

 

 

아래에서 보듯 외래종 꽃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꽃범의꼬리

 

 

 

미국미역취

 

 

 

서양톱풀

 

 

 

자생종 톱풀과 미역취도 있는데 원예종 꽃으로 이 오지를 장식해야만 했을까.

 

 

마을 바로 앞에는 노루오줌이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열 집 남짓 들어선 마을은 찾는 사람도 거의 없어 한가롭기만 하다. 민박과 식당을 겸하는 집들은 영업을 하는 것 같지도 않고, 길을 넓히느라 포크레인이 공사를 벌이는 풍경만이 여름 한낮의 고요를 깨뜨리고 있다.

 

 

꽃밭에 날아든 나비들 모습을 담는다.

 


은줄표범나비

 

 

 

노루오줌과 산은줄표범나비

 

 

 

코스모스와 산은줄표범나비

 

 

 

아마도 수년 전까지는 농사를 지었던 것으로 보이는 저수지 위쪽의 들판은 습지로 연꽃밭 하나를 빼면 대부분 묵어 있다.  

 

 

 

산언덕의 노거수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몹시 무더운 날씨.

 

어느 민박집(아마도 한씨네 산채나물집이었지....) 앞 단풍나무 그늘의 나무 의자에 앉아 생두부 한 모와 묵은지를 안주로 하여 막걸리를 마시며 더위를 식힌다. 

 

산바람이 겨드랑이를 스치니 서늘한 기운에 기분이 아주 상쾌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