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햇살 너무 맑은 봄날, 삼척 추암-촛대바위의 절경

모산재 2011. 5. 19. 08:54

 

울릉도 다녀오는 길에 삼척 추암(湫岩)을 찾는다.

 

예전엔 북평 땅이었던, 동해시삼척시의 경계에 있는 한적한 해안... 그곳에는 해돋이로 유명한 촛대바위가 있고, 해암정(海巖亭)이라는 정자가 있으며, 아담한 백사장을 가진 추암 해수욕장이 있다.

 

칼바위·촛대바위 등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해안의 절경이 해금강에 비길 만해 해금강해수욕장이라 부르기도 한단다. 더러는 추암 소금강이라 표기해 놓기도 하였다.

 

 


태백산맥을 넘어온 철길이 삼척을 지나 강릉을 향해 북상하면서 이곳에는 추암역이라는 간이역을 남겼다.

 

철길 아래 굴다리를 지나 해안 쪽으로 들어서면, 한쪽으로 작은 마을집들을 거느리고 요즘 보기 드문 맑은 개울이 추암 해수욕장 백사장을 향해 흐르고 있다.

 

 


 

텃새가 되어버린 청둥오리떼들이 계절도 잊고 바닥이 훤하게 비치는 개울물 위를 헤엄쳐다니고 있다. 그러다가 꽁지를 치켜들고 물속으로 머리를 잠그는 오리들...

 

개울바닥을 가릴 정도로 많은 물고기들이 환히 보인다. 그야말로 물 반 고기 반이다.

 

 

 

 


가자미가 따스한 햇살과 서늘한 바닷바람에 꼬들꼬들 잘 말라가고 있다. 어촌다운 풍경...

 

 

 


촛대바위 들어서는 입구, 넓은 모래언덕 위에는 해암정(海岩亭)이란 정자가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을 얹은 독특한 정자로 4면 모두 기둥만 있고 벽면은 없다. 뒤편 해안쪽으로 지붕보다 조금 높은 바위산이 있어 운치를 더해 주는 이 정자는 고려 공민왕 10년(1361)에 삼척심씨의 시조 심동로()가 낙향하여 건립한 정자라고 한다. 
 

 

 

심동로는 한림원사 등을 지내고 고려 말의 혼란한 국정을 바로잡으려 하다 권세가의 비위를 거슬려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는데, 이를 만류하며 왕은 그에게 동로(:노인이 동쪽으로 간다는 뜻)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후학을 양성하고 풍월로 세월을 보내던 그를 왕은 진주군()으로 봉하고 삼척부를 식읍()으로 하사하였다고 전한다

 

 


해암정을 지나면 해돋이 명소인 추암 언덕으로 오르게 된다.

 

언덕으로 오르며 뒤돌아보면 해암정 뒤편으로 석림(石林) 같은 멋진 해안 절경이 펼쳐진다. 왕명으로 이 지역의 군정과 민정을 총괄하는 도체찰사(使)로 파견되어 있던 한명회는 이 바위군이 만들어 내는 절경을 '능파대()'라 불렀다 한다.

 

 

 

추암은 뛰어난 경승지로 해금강이라고 불려오기도 했던 곳.

 

'능파(凌波)'란 물결 위를 가볍게 걸어 다닌다는 뜻'으로 '미인의 가볍고 아름다운 걸음걸이'를 이르는 말이다. 소설 <구운몽>에서 양소유가 만난 여덟번째 선녀가 바로 동해 용왕의 딸인 '백능파'가 아니던가. '능파'는 미인의 이름으로 통용되기도 했을 것이다.

 

희대의 모사꾼 한명회도 이 아름다운 바위 절경과 밀려오는 동해의 물결을 바라보면서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과 함께 '능파(凌波)'라는 이름을 순간적으로 떠올렸을 것이다. 

 

 


추암 언덕으로 올라서면 짙푸른 동해바다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아득한 수평선을 배경으로 추암의 상징 촛대바위를 비롯한 해안절벽의 기암괴석들이 수직의 형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한때 "동해물과~"로 시작되는 애국가의 일출 장면으로 유명했던 촛대바위는 원래 두 개가 나란히 솟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숙종 7년(1681년) 5월 11일 지진이 일어나 하나가 10자 가량 부러져 나갔다고 한다.

 

 

 

 

안내판에는 촛대바위에 얽힌 전설을 기록하고 있으니...

 

옛날 추암에 한 어부가 살았는데 소실(첩)을 얻은 뒤 본처와 소실 간의 투기가 심해지자 이에 하늘이 벼락을 내려 두 여자를 데려가고 남자만 남겨 놓았다. 홀로 남은 어부는 두 여인을 그리며 그 바닷가 그 자리에 하염없이 서 있다가 망부석처럼 바위가 되었으니 그 바위가 지금의 촛대바위라고 한다.

그리고 그 끝에는 "남성들에게는 일부일처제를, 여성들에게는 현모양처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고 써 놓았다. 참으로 가부장적 가치관이 잘 반영된 전설임에는 틀림없다. 

 

 

 


지리학적으로 이곳의 바위들은 동해시 남서부에 분포된 선누층군(평안남도와 강원도에 분포된 캄브리아기에서 오르도비스기에 쌓인 고생대 초엽의 퇴적암 누층. 하부의 양덕층군과 상부의 대석회암층군으로 나누어진다.)석회암이 노출된 것이라고 한다. 석회암은 화학적 풍화작용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이 일대의 석회암이 토양 밑에 있을 때 지하수의 작용으로 용해되어 독특한 모양을 이루었고, 이것이 바닷물에 의해 노출되어 지금과 같은 절경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이다.


촛대바위 주변에는 갖가지 모양의 기암괴석이 솟아 동해바다와 어울려져 절경을 연출하는데, 거북바위, 두꺼비바위, 부부바위, 코끼리바위, 형제바위 등으로 불린다. 

 

그런데 어떤 바위가 그 바위인지...

 

 


언덕 위에는 이렇게 전망대 세워져 있다. 이곳이 남한산성의 정동방이라는 표석과 함께...

 

 

 


추암의 남쪽 언덕을 내려서면 추암해수욕장이다.

 

백사장의 길이는 150여 미터 정도, 백사장 곁에는 민박집들이 늘어서 있다.

 

 

 

 


백사장을 지나면 다시 작은 해안 언덕으로 산책길이 이어진다.

 

멀어지는 추암해수욕장과 촛대바위의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추암 언덕에서 바라보는 풍경과는 다르게 드러나는 멋진 절경...

 

 

 

 

 

 


또 하나의 언덕을 넘어서자 다시 백사장이 나타난다. 중산해수욕장이라는 이 해변에는 수로부인의 전설이 얽혀 있는 '해가사(海歌詞)의 터'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삼척시 지역으로 몇 년 전부터 수로부인공원으로 조성되었다.

 

그곳까지 다녀오기에는 시간의 여유가 없어 멀리서 바라보며 나는 잠시 수로부인의 환상에 젖는다. 동해의 물결이 하얀 물보라를 날리며 밀려드는 해안길을 밟으며 아름다운 신라의 미녀가 여행하고 있는 장면을...

 

소 끄는 사내로부터 프로포즈를 받기도 하며(헌화가) 경주에서 강릉으로 이어지는 바닷길을 스캔들로 가득 채웠던 신라 여인의 관능과, 그 관능을 탐하고 납치한 동해용왕을 떠올려 본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 놓아라.(龜乎龜乎出水路) ...그물 던져  잡아 구워서 먹으리라(入網捕掠燔之喫)." 바다를 향해 외치던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바닷가 바위 위에 갯장대가 하얀 꽃을 피웠다.

 

  

 


다시 돌아나오는 길,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추암 입구에 조성된 미니 조각공원 잠시 둘러본다.

 

 

 

 


자운영처럼 화사하게 핀 콩과의 풀꽃을 만난다. 

 

들완두가 아닐까 싶은데, 원산 이북의 습지에서 주로 자라는 이 녀석은 인제, 정선 지역과 울릉도 등에도 분포하는 모양이다. 

 

 

 


이 좋은 봄날, 시간의 사슬에서 풀려나 동해를 바라보며 수로부인이 걷던 길을 따라 남으로 남으로 무작정 걸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맑은 바람과 햇살을 두고 떠나기 싫어지는데, 택시가 와서 나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