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여름에 이어 두번째로 울릉도를 찾는다. 당시 빗속에 성인봉을 넘는 바람에 울릉도의 산세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아쉬움, 그리고 울릉도 특산 봄꽃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계획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하필 울릉도에 도착한 다음날 비바람으로 날씨가 좋지 않다는 일기예보다. 모처럼 며칠간의 연휴를 맞아 계획했던 일,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니 취소해 본들 대안도 없고 그냥 강행하기로 한다.
10시에 출발하는 배를 타고 울릉도에 도착하니 1시에 가까워졌다. 점심으로 1만 3천 원짜리 따개비밥을 시켜먹고(울릉도는 물가가 비싸 음식값도 많이 비싸다. 된장찌개나 엉겅퀴해장국이 7천원으로 가장 싸고, 따개비밥이나 홍합밥이 1만 2천원에서 1만 4천원으로 가장 비싼 식사이다.)
성인봉을 둘쨋날 넘기로 하고 왔는데, 비가 온다는 예보에 오늘 넘을까 싶어 여행 안내소에 대원사길을 물으니, 안내소 여직원이 며칠 전에 내린 눈이 쌓여 성인봉을 넘기가 어렵다고 한다. 굳이 가려면 등산화와 아이젠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가야 한다고 겁을 준다.
가는 데까지 가보자고 대원사쪽으로 걸어가다 그만 마음이 약해져 대원사 들어가는 입구에서 태하 가는 공용버스를 타고 만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새 항만이 건설되는 사동, 통구미, 남양을 지나 40여 분 걸려 울릉도의 서쪽 끝 어촌마을 태하에 도착한다.
울릉도에서 가장 넓게 흐르는 태하천이 바다를 향해 흘러드는 곳, 거기에 4년 전에도 제일 먼저 들렀던 낯 익은 갯마을 태하가 있다. 골목을 따라 민가가 질서정연하게 들어서 있고 식당과 여관도 더러 보이는 태하는 한때 울릉도 군청 소재지였던 면모를 보이고 있다. 235세대 50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제법 큰 마을이다.
지금은 황토구미와 태하등대를 찾는 이들이 스쳐 지나가는 한적한 마을이다. 김(海苔)이 많아서 태하(台霞)라 하기도 하고 안개가 많아서 태하라 하기도 한다지만, 태하는 울릉도의 상징인 오징어가 많은 어촌이다.
▼ 태하 지명 유래
태하마을 앞으로는 넓은 자갈해안이 펼쳐져 있고 뒤로는 절벽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마을 앞 해변길로 들어서면 멀리 갯바위로 오르는 나선형 철제 계단이 먼저 눈에 뜨이고, 그 오른쪽으로 시커먼 화산 절벽 아래쪽에 주황빛이 선연한 황토굴(황토구미)이 보인다.
▼ 태하 해안. 태하등대로 오르는 철제 계단길과 모노레일 승차장이 공존하고 있다.
황토구미 가는 중간에는 태하등대로 오르는 관광 모노레일이 설치되어 있다.
2007년에 왔을 때에는 공사가 시작되고 있었는데, 2008년 여름에 준공하였다고 한다. 물론 모노레일이 태하등대에까지 이르는 것은 아니고 바로 절벽을 이룬 산허리까지만 연결되어 있는데, 레일의 길이는 304m로 20인승 차량 2대가 동시 운행한다고 한다.
편도 2천 원, 왕복 4천 원의 요금을 받는다고 하는데, 다리에 불편함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이 모노레일을 타야 할까 싶다. 철제 사다리를 통해 갯바위해안을 지나 서쪽 산허리를 따라 태하등대를 향해 오르는 길의 풍광이 매우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트레킹 코스로서는 더할 나위없이 호젓한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 태하등대 오르는 모노레일. 절벽길 300m를 왕복한다.
▼ 황토구미 앞에서 본 태하 전경
나선형 철제계단이 설치되어 있는 곳에 황토굴인 황토구미가 있다.
용암이 흘러내려 생긴 화산지형인 울릉도에 황토굴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조선 전기에 이곳에서 난 황토는 조정에 진상했다고 한다. 조정에서는 3년에 한 번씩 삼척영장을 울릉도에 순찰 보내어 그 순찰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이 마을의 황토와 향나무를 바치게 했다고도 한다. 황토도 특이한 것이지만 울릉도는 향나무의 유일한 자생지이기도 한다.
개척 때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황토를 파낸 흔적이 있었기 때문에 큰황토구미(大黃土邱尾)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황토구미의 서쪽 갯바위 해안도 놓치기 아까운 풍경이다.
나선형 철제계단은 최근에 설치된 것으로 예전에는 그 아래쪽으로 절벽에 아슬라슬하게 매달린 철제 사다리를 통해 다녔다.
▼ 나선형 철제계단에서 내려다본 철제 사다리 옛길
서쪽 갯바위에 오르면 태하 바다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쪽으로는 태하령(462.0m)과 탄갓봉(593.0m) 등이 있고, 북쪽으로는 미륵봉(900.8m)·초봉(608.2m)·현포령(234.2m)·향목령(297.0m) 등으로 형성되어 있다. 북부에는 초봉의 주요 능선 자락을 배경으로 한 산악 지형의 경관이 원시 자연의 절경을 나타내고 있다. 태하천이 중리마을을 지나 태하항으로 흘러들고 있다.
총 235세대에 500여 주민이 살고 있는 태하는 길고 깊은 태하천 계곡으로 자연 계곡 바람으로 건조된 태하의 오징어가 최상품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황토구미도 유명하지만 태하낙조(台霞落照)는 울릉8경의 하나라고 한다.
▼ 갯바위 해안 풍경들
이 곳 갯바위 해안에서 산 능선을 따라 태하등대로 오르는 길이 이어진다.
산길 주변에는 삼나물(눈개승마), 부지깽이나물(섬쑥부쟁이), 취나물(울릉미역취) 등이 파릇파릇한 비탈진 밭들이 숲 사이로 펼쳐진다. 그리고 한창을 지난 동백 꽃송이들이 고개를 꺾은 채 떨어져 숲그늘은 점점이 핏빛 선연한 꽃무늬로 시야를 채운다.
분꽃나무는 아직 붉은 꽃봉오리만 물고 있을 뿐 피지 않았다. 살짝 땀이 배일 만큼의 경사이지만 숲길을 걷는 기분은 상쾌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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