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일기

눈 쌓인 천마산의 너도바람꽃, 복수초, 만주바람꽃, 꿩의바람꽃, 금괭이눈

모산재 2011. 4. 6. 23:17

지난 2월 말 두꺼운 얼음으로 덮힌 계곡만 보고 돌아섰던 천마산, 이제는 틀림없이 피었을 너도바람꽃 보자고 한 달만에 다시 찾는다. 잠실에서 1000번 버스를 타고 호평동에서 다시 165번 버스로 환승하여 천마산 입구에 도착한다. 

 

천마산 스카이라인을 가리고 선 가파른 언덕의 아파트, 찾을 때마다 매번 불편하고 불쾌하다. 천마산 주변의 2대 흉물이라면 단연 주위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부조화의 극치를 이룬 고층아파트들과 스키장일 것이다.  

 

 

수진사 지나 계곡을 오르는 양지쪽 계곡 등산로는 여전히 꽃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봄기운 가즉한 서울 공기와는 달리 골짜기는 겨울의 한기를 느끼게 한다.

 

첫 능선을 넘어서다 신갈나무 숲속 까마귀를 발견하고 렌즈를 겨누었는데, M모드로 맞춰진 줄도 모르고 첫 사진을 삑사리로 시작한다.

 

 

 

능선을 넘어서자 며칠 전 내렸던 눈이 숲속에 하얗게 쌓여 있다.

 

이 풍경 속에 정말 꽃이 피었을까.

 

오늘도 헛걸음 아닌가 싶어 조바심 나는 마음으로 길을 재촉한다. 그래도 나 혼자만 산을 찾은 게 아닌가 싶었던  지난 달과는 달리 오늘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등산객들이 많다. 카메라를 둘러멘 사람들이 적지 않으니 등산객이라기보다는 꽃을 찾는 사람들이지 싶다.

 

 

 

 

다행스럽게 세 개의 능선을 넘어서자 허리를 구부리고 꽃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눈 쌓인 골짜기에 눈처럼 하얀 꽃잎의 너도바람꽃이 군데군데 피었다. 손가락 두 마디의 낮은 키에 손톱만큼 작은 한 송이 꽃을 단 너도바람꽃. 

 

 

 

뜻밖에도 바로 곁에 금빛보다 더 영롱한 꽃을 피운 복수초가 피어 있다.  

 

풍도에서 지천으로 피었던 개복수초와는 달리 꽃이 작고, 한 송이만 핀다. 그리고 잎이 자라나지 않은 채 꽃대만 올라와 꽃을 피웠다.

 

 

 

다시 너도바람꽃을 찾아 사진에 담느라고 열중하는 사이, 골짜기에는 꽃 탐사객들이 점차 늘기 시작한다.

 

 

 

 

그래도 꽃은 땅이 얼지 않고 눈이 쌓이지 않은 볕드는 쪽에만 핀 줄 알았는데, 뜻밖에 음지 눈 쌓인 곳에도 너도바람꽃이 '천지비깔'이다.

 

눈 속에 핀 너도바람꽃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풍경에 감격이 일어난다. 생각해 보면 꽃이 피고 그 위에 눈이 내린 것일 터지만 그래도 눈 속에 가녀린 한 생명이 피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대견한 일이 아니냐.

 

 

 

 

꽃잎이 채 벌어지지 않은 꽃은 더욱 앙증스럽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어린 모습이 더욱 사랑스러운 것이다.

 

 

 

정말, 횡재다. 얼음 속에 황금빛 꽃을 피우고 있는 복수초를 발견한다. 

 

'얼음새꽃'이라는 순 우리말 이름에 딱 어울리게 얼음을 뚫고 환한 꽃을 피웠다. 어쩌면 눈 녹은 물이 고여 밤새 다시 얼음으로 언 것인지 알 수 없다.   

 

 

 

눈과 얼음 속에 꽃을 피운 너도바람꽃과 복수초는보았으니 이제 꿩의바람꽃과 만주바람꽃, 노루귀와 현호색, 그리고 금괭이눈을 만나러 골짜기 아래쪽으로 내려가 보기로 한다.

 

 

내려가는 길에 노랑앉은부채라도 만난다면 오늘의 꽃 탐사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이렸다. 골짜기를 내려서는 내내 노랑앉은부채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그냥 앉은부채도 가끔씩 보일 뿐...

 

 

 

 

내려서는 골짜기는 한달 전과 크게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두터운 얼음이 덮고 있다.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이라면 는쟁이냉이 어린풀들이 파릇파릇 자라난 것.  

 

 

 

너도바람꽃만 지천으로 피었을 뿐, 골짜기 아래로 내려설수록 더욱더 한기가 느껴지는 것은 무슨 조환가. 그러고보니 아침결에 환하던 날씨가 자주 구름에 가려진다.  

 

너도바람꽃 군락만 자꾸 만난다. 기대했던 노루귀조차 흔적도 없고, 복수초도 아래쪽 골짜기에서는 한 개체도 발견하지 못한다.

 

 

 

 

 

이렇게 돌탑으로 올려진 마음을 잠시 바라보며 잠시 쉬고...

 

 

 

점현호색은 어린 꽃맹아리를 단 모습만 보일 뿐이다.

 

 

 

금괭이눈과 꿩의바람꽃, 만주바람꽃을 기대해야 할 계곡은 이렇게 두꺼운 얼음이 버티고 있지 않은가.

 

차라리 위쪽 넓은 계곡으로 가 노랑앉은부채를 찾아보는 게 더 나았을까, 싶은데...

 

  

 

꽃을 피운 애기괭이눈이 보여 잠시망이 생긴다.

 

 

 

그러나 골짜기는 이런 풍경이다. 생명이라곤 흔하게 핀 너도바람꽃과 는쟁이냉이 푸른싹, 그리고 앉은부채 푸른 잎만 보일 뿐.

 

 

 

노랑앉은부채인가 하고 본 녀석은 불염포가 노란 것이 아니라 잎이 노랗다. 불염포도 제대로 자라지 못한 모습...

 

 

 

골짜기를 거의 내려선 곳, 개울가 포근한 언덕에서 꽃을 피운 현호색(각시현호색)을 처음으로 만난다.

 

 

 

그리고, 지금쯤 흐드러지게 피었어야 할 바위에서 이렇게 몇 송이만 꽃을 피운 금괭이눈을 만난다. 예전에는 천마괭이눈이라고 불렀던 녀석.

 

그러나 만난 금괭이눈은 이게 처음이고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골짜기 양지바른 바위틈에 꿩의바람꽃과 만주바람꽃, 는쟁이냉이가 나란히 꽃봉오리를 올린 풍경을 만난다.

 

 

 

만주바람꽃과 꿩의바람꽃은 거의 발견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아래 녀석들이 발견한 전부.

 

 

  

그래도 이렇게 한 송이 꽃을 피운 꿩의바람꽃을 만난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두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만주바람꽃. 꽃봉오리를 열려고 하는 모습이 앙증스럽다.

 

 

 

또 만나는 각시현호색은 꽃이 풍성히도 피었다.

 

  

 

그리고 양지바른 개울 언덕에 꽃잎이 납작하게 벌어진 산괭이눈을 만난다. 

 

 

 

아래쪽 골자기에서 기대했던 노루귀, 금괭이눈, 만주바람꽃, 꿩의바람꽃 들은 또다시 한 주일 이상을 더 기다려야 할 듯하다.

 

아쉬운 마음으로 다시 옆 골짜기로 올라와 호평동으로 되돌아온다. 

 

산괴불주머니조차 꽃을 피우지 못한 봄. 지난 겨울의 한파가 대단했음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내려오는 길은 임도를 통하여 편한 걸음을 한다.

 

곰이 살던 골짜기였다는 '고뫼골'(아마도 '곰의골'이었겠지) 약수터 물 한모금 마시며, 너도바람꽃 꽃바람에 파묻혀 보낸 하루의 피로를 씻는다.  

 

 

 

꿩의바람꽃과 만주바람꽃 만나러 또 이 산을 찾아야 할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