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사랑반을 열었더니 그래도 열여덟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몰려(?) 들었다. 참 다행이다.
그런데 한 녀석만 남학생이고 열일곱이 여학생들. 사내 녀석들은 꽃에 관심이 없나보다.
어쨌든 야생화반을 선택해준 녀석들이 대견해 광장초등학교 앞 가게에 들러 귤 한 보따리 사서 하나씩 안겨준다.
아직도 겨울이나 다름없는 영하의 날씨를 보이니 꽃을 볼 만한 곳이 서울에서는 마땅치가 않다. 그래서 찾은 아차산생태계공원. 등산객들과 함께 걷는 아이들의 발걸음만큼은 봄처럼 발랄하다.
공원 입구 오르는 길 언덕에디에도 봄을 느끼게 하는 푸른 빛은 없다. 풀도 나무도 싹을 내밀고 있지 않은 겨울 풍경이다.
왕느릅나무로 봐 왔던 나무는 꽃이 피지 않았을까 하고 살펴보니, 웬걸 아직도 꽃눈만 달렸을 뿐이다. 두꺼운 비늘포를 열고 실타래 같은 수술을 보여 줄 날은 아무래도 일주일은 더 기다려야 할 듯하다.
늘 만나는 인어아가씨는 햇살이 따스하여 표정도 환해진 듯... 다행스럽다.
그래도 풍년화만큼은 봄이 왔음을 확실히 보여 준다. 요 녀석들 덕분에 아이들 앞에 그나마 낯이 선다. 열심히 설명해 준다.
일본에서 들어온 나무인데 서울 하늘 아래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나무란다. 눈 내리는 1월말쯤이면 벌써 꽃을 피우지. 저 꽃이 풍성하게 피면 풍년이 든대. 그래서 풍년화라고 해. 그런데 지난 겨울 너무 추웠잖아. 올핸 꽃이 늦게 핀 거란다. 꽃잎을 잘 봐 ,노란 리본 같지 않아. 멀리서 보면 보잘 것 없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기막히게 아름다워.
작은 꽃잎이 또렷하지도 않는데 아이들 눈에 예쁘게 보일 리가 있나. 머쓱해 하는 아이들. 그래서 사진을 찍어서 엘시디 창으로 확대하여 보여 준다. 그제서야 아이들이 우아~.
히어리는 꽃망울을 터뜨렸을 거야. 하고 위쪽으로 이동하였더니, 글쎄 이 모양이다. 대부분 꽃맹아리만 달렸을 뿐 꽃술을 드러낸 것은 거의 없다. 가지 맨 끝에 달린 녀석만 붉은 꽃술을 드러내고 있다.
그나마 카메라로 담아서이 정도가 보이지, 아이들 눈에 무슨... 꽃으로 보이기나 하겠는가. 지리산이나 조계산 등 남쪽의 깊은 산에서 자생하는 나무야. 노란 꽃이 늘어져서 매달린 모습이 아름다워. 라고 해봤자 높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아이들에게 보이지도 않는 꽃, 처음 듣는 이름에 무슨 감흥이 있으리.
미선나무도 깨알보다도 더 작은 꽃눈만 보일 뿐이다.
지난 겨울은 너무 잔인했다. 예년 같으면 몇 송이쯤의 분홍빛 꽃을 피웠으련만...
하릴없이 벗나무 죽은 가지에 자란 버섯에 렌즈를 겨눈다.
할미꽃이 심어진 곳을 살폈더니 솜털로 뒤덮인 꽃봉오리만 겨우 땅 밖으로 고개를 내밀 뿐 꽃을 보기엔 너무 이르다.
제주도산 세복수초도 꽃이 피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파란 잎은 조금 자라났지만... 그 중 하나는 꽃잎을 보이긴 했지만 벌어진 모습이 아니다.
산수유조차 겨우 꽃덮개에 쌓인 보석 같은 노란 꽃봉오리를 머금고 있을 뿐이다.
세 시간을 야생화 공부로 보내야 하는데, 한 시간 보내고 나니 더 공부할 꽃들이 없다.
제비꽃도 보이지 않고, 그 흔한 큰개불알꽃도 별꽃도 보이지 않으니...
봄은 봄이되 봄이 아니로구나.
하릴없이 아이들을 돌려보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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