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일기

수목원의 3월 꽃나무들/ 병개암나무, 히어리, 영춘화, 기름나무, 생강나무

모산재 2011. 4. 3. 01:29

약용식물원에 꽃을 피운 식물들이 몇 되지 않아 다소 실망스런 마음으로 관목원으로 향합니다. 이런 정도라면 꽃을 피운 나무들도 그리 기대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그래도 봄날이라고 바람은 어지러이 불어대는데, 길가의 회양목은 잎겨드랑이마다 노란 꽃밥을 단 꽃들을 매단 가지들이 춤을 춥니다. 꽃 대접을 받지도 못하여 주목해 주는 사람도 없는 녀석, 그냥 지나치기는 미안한 일이지요.  

 

 

 

온실을 지나며 들여다보니, 나란히 있는 사스레피나무와 우묵사스레피가 대조적입니다. 지난 늦가을에 꽃을 피우던 우묵사스레피는 꽃이 진 모습인데, 사스레피나무는 지금 한창 꽃을 피우고 있는 중입니다. 갈색무늬가 있는 자잘한 흰 꽃이 아주빼곡하게 피었습니다.

 

창문이 열려 있지 않아 꽃을 담는 것은 포기합니다.

 

로즈마리도 보랏빛 꽃을 피웠습니다. 혹시나 싶어 유리창에 대고 사진을 찍어봤는데, 뜻밖에 괜찮게 담겼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사스레피나무도 담아둘 걸... 

 

 

 

관목원에서 제일 먼저 만난 꽃은 병개암나무. 지렁이 같은 수꽃이삭은 이미 성숙하였고 말미잘 촉수 같은 빨간 암술도 예쁘게 자랐습니다. 연신 불어대는 바람에 가지가 그네를 타는 바람에 사진을 담는 데 애를 먹습니다.

 

병개암나무는 제주도 한라산 높은 지대에 자생하는 특산 개암나무인데, 암꽃은 서로 겹쳐진 포비늘 안에 2송이씩 핍니다. 포 비늘이 열매를 둘러싸서 병모양이 되므로 병개암나무라고 하는데, 참개암나무와 비슷하지만 포가 극히 짧아진 것입니다.

 

 

 

딱총나무는 이제 막 자라난 원뿔형 꽃이삭이 덜 성숙한 모습입니다.

 

 

 

오늘 가장 기대를 하고 찾은 털조장나무 꽃. 하늘을 향해 손가락질하듯 가지 끝 화살촉 같은 잎눈을 둘러싸고 노란 꽃을 피우고 있을 풍경을 기대하며 나무가 있던 곳을 내려다보는데, 숲은 그냥 잿빛 겨울 풍경만 아득히 펼쳐집니다. 

 

혹시 나무가 이사를 가고 없는가 싶어 숲속으로 들어서보니 글쎄, 아직 이런 모습이지 뭡니까. 언제나 꽃을 피울는지... 재작년에는 3울 중순에도 꽃이 만개했는데 말입니다.

   

 

 

 

제대로 꽃을 피운 것은 풍년화밖에 없습니다. 화무십일홍이라는데 한달 정도는 꽃을 보여주는 풍년화, 이제 끝물인 듯 만개한 꽃잎이 제 빛깔을 잃은 듯한 느낌입니다.  

 

 

 

산수유도 이제야 꽃싸개를 벗고 보석 같은 노란 꽃봉오리를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네 갈래의 꽃잎을 보려면 며칠을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늘 다니면서도 그냥 무심히 지나치기만 했던 명성황후의 무덤 자리를 담아 봅니다. 궁궐에 난입한 일본 깡패들에 의해 무참히 시해되고 불태워졌던 116년 전 치욕의 그날을 떠올리며 몸서리칩니다.

 

 

 

작년 9월 전국의 숲을 할퀴었던 태풍 곤파스의 흔적이 이곳 홍릉숲에도 남아 있습니다.

 

 

 

3월 중순이면 활짝 피던 좀매실나무도 아직 작은 꽃맹아리만 보일 뿐입니다, 다음 주에 찾으면 꽃을 볼 수 있을까요.

 

 

 

아벨라나개암나무는 붉은 암꽃이 희미합니다. 아벨라나개암나무는 유럽산인데 나무 높이가 우리의개암나무에 비해서는 높고(4∼5m) 다른 품종보다 열매가 특히 크다고 하는데, 이 나무의 열매를 본 적이 없으니...

 

 

 

지난 겨울 쿤밍에서 실컷 보았던 중국산 영춘화는 샛노란 꽃을 피워 이름값을 하고 있습니다.

 

 

 

향기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미선나무도 깨알 같은 꽃맹아리만 옴작거릴 뿐입니다. 예년 같으면 일찍 핀 꽃은 시들 시기인데 말입니다.

 

 

 

올괴불나무 꽃은 거의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 나라 자생 잎지는나무로서는 가장 일찍 꽃이 피는 나무입니다.

 

 

 

지난 겨울이 얼마나 추웠는지 차나무는 잎이 말라 버렸습니다. 아마도 되살아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차나무만이 아니라 교목으로 자란 호랑가시나무 등 거의 모든 상록수들도 동해를 입어 이렇게 처참한 모습입니다. 자생 북한계선을 넘어 서울 땅에서 잘 자라왔던 상록수들이 지난 겨울의 혹독한 한파를 넘기지 못하고 한 생을 마감한 듯합니다.

 

 

 

왕괴불나무라는 이름표를 단 나무도 꽃이 늦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꽃봉오리를 내밀고 있습니다. 

 

도감이나 백과사전에 따르면 5~6월에 꽃이 피어야 하는 나무인데, 이 나무는 홍릉수목원에서 3월에 꽃을 피웁니다. 그래서 도감과 백과사전의 기재문이 잘못된 것이든지 아니면 이름이 잘못된 것인지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 나무가 길마가지나무가 아닐까 의심되기도 합니다.

 

 

 

한때 새양버들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던 버들에는 지금은 이름표가 사라졌습니다. 그냥 호랑버들일까 싶기도 한데 꽃이 너무 높은 곳에 피어서 확인작업은 포기합니다.

 

 

 

마주난 꽃으로 보면 키버들일까 싶은 버들은  꽃밥을 단 수술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붉은 꽃밥과 노란 꽃밥이 질서정연하게 배열된 모습이 예술입니다. 

 

 

 

 

히어리는 이제 갓 피고 있습니다. 햇볕을 잘 받은 가지에만 겨우 붉은 꽃술을 보이는 꽃송이가 몇 달렸습니다.

 

 

 

바로 곁에 있는 일본산 히어리, 도사물나무는 히어리보다 더 늦은 모습입니다.

 

 

겨울을 난 만병초 꽃봉오리는 따스한 볕살을 받으며 환한 꽃을 피울 꿈에 잠겨 있습니다..

 

 

 

등대꽃은 지난 해의 열매를 단 채 꽃눈이 자라고 있습니다.

 

 

 

수목원에서는 가장 이르게 꽃을 피우는 나무, 일본산 꽃단풍도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얼핏 비술나무일까 했던 나무에는 난티나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습니다. 아직 익숙하지 못한 난티나무라는 이름표에 까마득한 높이에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은 어쩐지 낯익은 듯합니다. 아마도 작년 4월말 지리산에서 보았던 나무가 이 난티나무였을까요...

 

 

 

기대를 접었는데, 생강나무를 닮은 일본산 기름나무는 뜻밖에도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꽃송이가 좁쌀만해서 맨눈으로는 잘 보이지도 않는 초록빛 감도는 노란 꽃이 귀엽습니다.

 

 

 

 

기름나무에 비해 생강나무꽃은 아래 사진처럼 훨씬 크고 탐스럽지요.

 

 

 

 

이렇게 해서 홍릉수목원 봄꽃나들이는 모두 끝났습니다. 

 

지난 겨울의 혹독한 한파로 이 시절이면 봄꽃 향기로 가득해야 할 수목원은 아직도 겨울빛이 더 짙게 남아 있습니다. 많은 상록수들이 동해를 입어 죽기도 하고, 풀과 나무들은 꽃 피우기를 주저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도 봄기운은 어쩔 수 없겠지요. 온 숲이 풀빛들로 가득하고 온갖 빛깔의 꽃향기로 아찔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