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설날, 고향 마을과 노모의 배웅

모산재 2011. 2. 18. 15:01

 

설날.

 

올해 차례가 또 늘었다.

 

3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리고 이번 설날을 보름 앞두고 작은아버지마저 돌아가시면서 한 가문의 윗 세대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 살며 어쩌면 가문이 더 이상 의미를 가질 수 없는 우리가 이 세상의 맨 윗 세대가 되었다. 이제 여생이 그리 많지 않은 홀로 된 어머니와 큰어머니, 작은어머니가 빈 집을 지키며 삶의 터전을 지켜가리라.

 

 

입춘을 하루 앞둔 설날, 거의 매일처럼 영하 십 몇 도로 떨어지며 사납던 한파도 물러서고 봄날보다 더 따스한 햇살이 쏟아져 내린다. 저 따스한 햇살이 남편이 사라지고 자식이 떠나가 버린 외로운 집 구석구석을 가득 채워 주었으면...

 

사촌들에게도 이심전심이지 않았을까. 큰집 우리집 작은집을 오가며 차례를 지낸 다음, 오늘은 모처럼 사촌들이 다 함께 큰아버지, 아버지, 작은아버지 산소를 차례로 돌아보았다. 성묘를 하면서도 마음은 돌아가신 분에게가 아니라 고향집을 지켜야 하는 외로운 어머니들에게로 향하고 있었으리라.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부모님들에게는 평생의 삶이었고 우리들에게는 유년시절의 추억으로 남아 있는 풍경을 한동안 바라보고 섰다. 마을과 들판과 산, 그리고 그것들을 이어주는 개울과 길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경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제 이곳을 아름답게 기억해 줄 세대가 더 이상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쓰라리다

 

 

 

 

 

 

늦은 오후, 큰집 옆 들빼기 언덕 참빗살나무 꼭대기에 까마귀 한 마리 앉아 까악~ 울다 사라지고,

 

 

 

 

 

우물가 은행나무엔 직박구리 한 마리 앉아서 삐요옷~ 시끄럽게 울어댄다.

 

 

 

 

 

이튿날 아침, 자식들과 손자들은 모두 뿔뿔이 떠나고 사흘 간 시끌벅적 사람사는 소리로 가득하던 고향집은 다시 정적 속에 잠긴다.

 

수백 명의 아이들 소리로 동네에 활기를 주던 초등학교는 폐교된 지 이십 년이나 지났다. 마을도 70~80대의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혼자 지키는 집들이 대부분... 마을에서 가장 젊은이인 55세의 성익이 형네 화목 보일러에서 추억처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관절이 많이 안 좋아 걸음이 불편한 노모, 자식들 배웅하러 차 타는 곳까지 따라 나오지 못하고 집모퉁이에 나와 자식이 탄 차가 떠나갈 때까지 지키고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