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섬 여행

청산도 슬로길 (4) 권덕리에서 말탄바위를 지나 범바위까지

모산재 2010. 8. 22. 20:25

 

권덕마을에서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에 다시 슬로길 제4코스를 나선다.

 

제4코스는 권덕리에서 범바위까지. 지금까지의 해안으로 난 평탄한 길과 달리 가파르게 오르는 능선길이다. 길은 여전히 청색 화살표가 인도한다.

 

범바위로 오르는 능선길로 접어들기 전 잠시 권덕리 방향을 돌아본다. 권덕리는 보적산과 범바위로 이어지는 산의 능선에 둘러싸인 외진 마을이다. 멀리 보적산에서 흘러내린 산줄기를 넘어오는 도로를 통해 교통이 연결되고 있다. 보적산에서 흘러내린 산자락 끝에 작은 들을 거느리고 있다.  

 

 

 

 

 

밭에는 참깨꽃이 만발하고 있다.

 

 

 

 

 

능선으로 들어서는 길옆에는 여우콩이 무성한 덩굴을 이루고 있는데, 아직 꽃을 피울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예덕나무 수꽃만 본다 했는데, 겨우 암나무 한 그루를 만나고 보니 이미 꽃은 지고 작은 열매가 달렸다. 얼핏 같은 대극과인 피마자(아주까리)를 닮았다고 생각한다.

 

 

 

 

 

범바위로 오르는 능선길로 올라서니 너머쪽은 시원스레 청산도 동남쪽 바다가 망망무제로 펼쳐진다.

 

저 멀리 수평선 너머에 섬 하나가 우뚝 솟아 있다. 지도를 보니 여서도이다. 청산도에서 약 25㎞ 떨어져 있다고 하니 완도에서 청산도까지 거리(약 20km)보다 더 멀다.

 

조선 말기 실학자 귤은 김류 선생(1814~ 1884 : 인조 반정 주역인 김류 아님)이 이곳 청산도에 정착하기 전 거문도에서 귀양살이를 마치고 돌아올 때 잠시 머물기도 했던 섬이다.  

 

 

 

 

 

여서도(麗瑞島)는 이름대로 '곱고 상서로운 섬'이란 뜻인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서려 있다고 한다. 이성계의 고조부 목조 이안사(李安社)가 이 섬 근처를 지나가는데 갑자기 안개가 자욱하여지고 캄캄해지며 뇌성벽력과 함께 바다 속에서 산이 솟아올라 살펴보니, 이 섬이 임금 왕(王)자 모양이라 이는 고려조에 상서로운 일이라 하여 여서도(麗瑞島)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여서도는 중앙에 솟은 352m의 산이 급경사를 이루며 해안까지 뻗어 있어 전체적으로 하나의 산지를 이루고 있다. 1690년대에 진주강씨가 처음으로 거주하기 시작하여 현재는 50여 가구 1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고 한다. 동백기름이 섬의 특산물이라 한다.

 

 

구릉에 자주 보이는 이 풀은 좀 낯설다. 산국으로 보기도 뭣하고...

 

 

 

 

 

구릉을 조금 오르니 바다 쪽으로 절벽을 이루고 우뚝 솟아 있는 바위가 나타난다. 말탄바위라는 바위인데 이름의 유래는 밝혀져 있지 않아 알 길 없으되, 아마도 바위가 말 안장처럼 펀펀하게 솟아 있어서 붙은 이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바위섬은 상도이다.

 

 

 

 

 

능선길 주변에는 좀닭의장풀이 꽃을 피웠다. 진한 청색 꽃잎이 마치 덜 핀것처럼 작고 포에는 털이 나 있다.

 

 

 

 

 

깃꼴로 마주난 두릅의 잎축에 질서 정연하게 난 가시가 독특하여 눈길을 끈다.

 

 

 

 

 

아래에서 올려보던 것과는 달리 말탄바위 위에 올라보니 넓고 평탄하다. 과연 말 안장에 오른 듯한 느낌이 든다. 내려다본 해안, 파도에 의해 침식된 절벽 풍경이 아름답다.

 

 

 

 

 

 

말탄바위에서 서쪽. 권덕마을 너머로 오전 내내 걸어왔던 슬로길이 있는 해안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말탄 바위에서 동쪽, 상도라는 바위 섬이 떠 있다. 길게 나온 반도 모양의 지형이 '큰기미'라는 곳이고. 그 앞쪽 만처럼 들어간 곳이 장기미라는 해안이다. 큰기미의 능선을 따라 오르면 청산도의 남동쪽 끝에 높이 솟아오른 매봉산인데, 지금 구름 속에 잠겨 버렸다.

 

 

 

 

 

그리고 북쪽 능선 위로 범바위가 우뚝 솟아 있고, 왼쪽 뒤편으로 구름에 덮인 보적산 정상이 보인다.

 

말탄바위에서 잠시 내리막길을 걷다가 다시 오른 길은 편안한 느낌을 준다. 시야를 가리는 숲이 없이 초지로 난 길을 오르며  바다와 산을 환하게 볼 수 있는 탁 트인 전망 덕분이리라. 

 

 

 

 

 

그저 하늘에 우뚝 솟은 바위 하나만 바라보며 구불구불 리듬감 있게 상승하는 길은 흥겹다. 탁 트인 외길이니 아무 생각없이 그냥 따르기만 하면 된다.

 

범바위는 멀리서 보면 호랑이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언뜻 보아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바위를 쳐다보며 시각적 상상력을 발휘하다 보면 한껏 웅크린 호랑이의 얼굴 모습이 보이는 듯도 하다. 어떤 이는 청각적 해석을 붙여 바위 위에 구멍이 있어 바람이 불 때 호랑이가 우는 듯한 소리가 들려 범바위라 한다고 설명한다.

 

전설까지 전해지고 있다. 옛날 청산도에 들어와 살고 있던 호랑이가 권덕리 고개에서 바위를 향하여 포효하니 바로 이 바위가 크게 울려 호랑이는 자기보다 더 무서운 짐승이 있는 줄 알고 도망쳐서 '범바위'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뒤부터 청산도에는 호랑이가 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길가 풀섶에 술패랭이꽃이 피었다.

 

 

 

 

 

자주 보이는 이 키 작은 나무가 무엇일까. 

 

 

 

 

 

나중에야 이 나무가 이곳에 자생하는 팥꽃나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마침 능선길을 좀더 오르자 검노린재나무로 보이는 관목이 나타난다. 위의 나무와 같은 것인지 판단이 쉽지 않지만,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

 

 

 

 

 

엉겅퀴에 앉은 나비는 카메라와는 첫 대면이다. 이름은 흰뱀눈나비.

 

 

 

 

 

어디선가 기분 좋은 향기가 나길래 살펴보니 참싸리꽃이 피었다. 중독성이 있는지 모르지만 묘하게 후각을 자극하는 싸리꽃 향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닭의난초를 뜻밖의 곳에서 만난다. 그러나 아쉽게도 꽃이 진 지는 이미 오래이고, 꽃 진 자리에는 길다란 씨방만 달렸다. 꽃 피는 철에 와 볼 수 있을까...

 

 

 

 

 

그늘진 언덕에는 비비추가 무리를 지어 꽃을 피우고 있다.

 

 

 

 

 

곁에는 키가 한뼘 밖에 되지 않은 꿩의다리가 꽃을 피우고 있다. 참꿩의다리인지, 한라꿩의다리인지...

 

 

 

 

 

바위 절벽에는 애기석위가 대군락을 이루고 있다.

 

 

 

 

 

범바위 앞으로 올라서니 재작년 겨울에 왔을 때 없었던 커다란 전망대 건물이 범바위를 마주보고 서 있다. 그리고 범바위 앞은 넓은 마당을 조성해 놓았다. 슬로길 개발 바람이 범바위에까지 올라온 모양이다.

 

 

뜨거운 여름 햇살로 오전 내내 데워진 바다 위에서 자욱이 피어난 안개가 바람을 타고 범바위를 넘어 뭉게뭉게 권덕리 마을로 몰려가고 있다.

 

 

 

 

 

범바위에 오르면 가까운 여서도는 물론 멀리 거문도와 제주도까지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니 전망을 기대하기는 힘들겠다. 그리고 지난 겨울에 올라 보았으니 오늘 범바위에 오르는 것은 생략하기로 한다.  

 

 

 

 

 

범바위는 흔히 기가 센 곳라고 한다. 그래서 아들을 낳기를 원하는 여인들이 찾아와서 기운을 받으며 소원을 빌기도 한다.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범바위 바로 앞에까지 청계리에서 이어지는 길을 닦아 놓더니 이제는 넓은 마당을 만들고 커다란 전망대를 만들었다.

 

범바위의 기는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다.

 

범바위에는 자철석 성분이 많아서 강력한 자기장이 발생하며 이 때문에 범바위 가까운 곳에서는 나침반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한다. 범바위의 자력이 지구 자기장을 이겨내기 때문이다. 범바위 바로 앞에 보이는 '상도'라는 바위에서 권덕리 앞바다에서는 나침반이 듣지 않아 배들이 사고를 내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해도에는 이 지역은 '자기장 이상지역'으로 표시돼 있다고 한다.

 

 

 

 

 

전망대는 현재 매점으로 운영되고 있다. 매점으로 들어서니 뜨거운 열기가 후끈 끼쳐온다. 원형으로 지은 건물은 튼튼한 콘크리트 벽으로 되어 있는데 문을 여닫을 수 없는 커다란 고정창을 설치하여 실내는 온실처럼 뜨겁다.

 

깜찍하게 귀여운 까만 강아지 한 마리가 매점 주인을 따라 오다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매대 뒤로 숨어버린다. 몇 번씩 나타났다가 또 숨어버리고... 수줍음이 많은 강아지다.

 

매점 주인 아주머니는 선풍기 하나로 뜨거운 더위를 견디고 있다. 능선길을 따라 줄곧 올라오느라 더위에 지치고 목이 말라 '설레임'이라는 빙과를 사 먹고선 잠시 휴식을 취한다. 

 

 

 

 

 

범바위가 청산도의 비밀의 하나라면 청산도의 다른 비밀은 꿩이 살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한다. 희한하게도 주변 다른 섬에서는 꿩이 살고 있는데 유독 청산도에만 꿩이 살고 있지 않은 이유는 산세가 매의 형국을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청산 사람들이 꿩 몇 마리를 산에 풀어 보기도 하였지만 번식하지 못하고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휴식을 마치고 범바위 매점 뒤 구릉을 넘는다. 맞은편에 보적산이 우뚝 솟아 있고 능선을 따라 보적산을 오르는 등산로가 가르마처럼 환하게 보인다. 

 

그런데 슬로길 제5코스는 보적산길을 외면하고 오른족으로 꺾어지며 바로 장게미해안으로 이어지는 긴 골짜기로 내려선다. 지난 겨울 올라보았던 보적산의 멋진 전망! 청산도에서 보적산만 한 전망이 또 있는지는 모르지만 슬로길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보적산 정상에서 보는 청산도 풍경 → http://blog.daum.net/kheenn/13533126

 

 

 

아침에 출발할 때에는 장게미해변을 거쳐 매봉산을 넘어 상서리, 항도까지 가보자고 생각했는데, 다소 벅찰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슬로길 걷기는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기로 하고 청계리로 나가 주변에 돌볼 만한 곳을 돌아보고 마지막배로 완도로 나가기로 한다.

 

 

엉겅퀴꽃에 귀여운 애기나방 두 마리가 꿀을 탐하고 있다.

 

 

 

 

 

 

범바위 길과 보적산 길, 장게미해변 길이 갈라지는 넓은 공터, 주차장으로 내려선다. 지지난 겨울 보적산이야 올라 보았지만, 장게미해변은 이번에도 보지 못하는 아쉬운 마음에 길 입구에 들어서 까마득히 이어지는 산허릿길을 살펴보다가 청계리로 나가는 임도로 발길을 옮긴다. 

 

 

보적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아래, 땡볕 속에서 임도를 따라 풀 베는 작업을 하던 주민들이 쉬고 있다. 

 

 

 

 

 

더운데 고생 많으시다고 인사를 건넨다. 카메라 메고 다니는 외지인이 익숙한지 반갑게 인사를 받는다. 관광지가 되면서 이런 임도를 정비하는 일이 주민의 일자리가 되고 있는 모양이다.  

 

 

멀리 골짜기 아래쪽으로 장게미해안이 보인다. 청산도의 가장 높은 봉우리 매봉산은 연전히 구름 속에 숨었다. 청산도에서 가장 호젓한 곳, 사람이 살지 않는 저 골짜기를 따라 기약없이 걸어본다면 참 행복할 것을...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다행히 보적산이 해를 가려주어 걷는 길이 시원하다. 합승버스 한 대가 관광객들을싣고 들어오고 있다. 공영버스가 아닌 걸로 보아 아마 시티투어버스인 듯 보인다.

 

임도가 끝나는 곳에서부터 다시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길로 들어서게 된다. 청계리까지 걸어가는 길은 내리막길이니 햇볕만 아니라면 편한 길이다. 볕길을 나서기 전 그늘에서 잠시 쉬기로 한다.

 

 

그러다가 밭가에서 특이한 나무를 발견한다. 아까시를 닮은 잎을 달았는데 줄기에 달린 가시는 아까시와는 다르다. 

 

 

 

 

 

낯설면서도 어디서 본 듯한 나무인데 이름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나중에야 이것이 제주도 등 남해안 일부에 자생하는 실거리나무임을 알게 된다.

 

 

 

 

 

 

이 나무 사진을 찍고 내려서는데 아까 범바위 쪽으로 갔던 버스가 다시 돌아나오고 있다. 걷는 것이 부담스러워진 탓일까. 나도 몰래 버스를 세우고 기사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섬의 북쪽으로 한 바퀴 돌 것이라고 한다.

 

 

버스를 타고 나오며 차창으로 바라본 청계리 마을 거목의 정자나무인 느티나무, 그 거대한 그늘에서 쉬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순간적이지만 강한 인상으로 남는다. 예정대로 청계리까지 걸어나왔어야 할 것을... 금방 후회스런 맘이 된다.

 

걸어왔다면 돌아볼 수 있었을는지 모르겠지만 청계리에는 다음과 같은 유적지와 볼거리가 있다고 한다. 다음에 또 청산도를 찾게 된다면 마땅히 둘러보아야 할 곳이다.

 

 

 

○ 피내리꼬랑 : 임진왜란 당시에 왜적이 청산도를 유린할 때, 섬주민 전체가 지금의 보적산(寶積山, 일명 배산(白山)에 바닷가의 갯돌을 운반하여 산더미처럼 모아놓고는 왜적을 유인하여 치열한 투적전을 벌린 격전지로써 수많은 왜적과 주민들의 인명피해가 많아 그 피가 보적산의 동북쪽으로 흘러 깊고 길게 계곡을 이루었다 하여 "피내리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 서당샘 : 조선 후기의 실학자 귤은 김류(橘隱 金瀏, 1814~1884) 선생이 거문도에 유배를 끝내고 귀향중 여서도(麗瑞里)에 잠시 머문 뒤 청계리에 살게 되었는데, 귤은은 주민들을 모아 서재(書齋)를 짓고 46년간 학문을 가르쳤다. 서당샘은 정한수를 떠놓고 기도와 정신수양을 하였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귤은선생은 이 서당에서 별세하였으며, 이후 "靑山에서 글자랑 말라"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의 학행을 추모하기 위한 숭모사가 부흥리에 있다. 그가 유배생활 했던 거문도는 후세에 그의 커다란 학덕을 기려 '거문(巨文)'이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 팽나무 : 마을 입구 사정(射亭)에 서 있으며 수령이 250여년 가량된 나무이다. 이 터는 처음 이섬에 정착한 이석명(李錫命)씨가 주변 농토를 바라보기 위하여 만든 관망대라고 한다.

○ 청계재(淸溪齎)와 연묵재(淵默齎) : 조선시대 교육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