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섬 여행

청산도 슬로길 (5) 동촌리 돌담길과 정자나무

모산재 2010. 8. 23. 00:32

 

짧은 순간 차창으로 바라본 청계리의 정자나무들에 대한 인상이 강렬한데 투어 버스는 신흥해수욕장을 향해 청산도에서 가장 넓은 들을 거느린 골짜기를 달려 내려가고 있다. 갑자기 낯선 사람들과 투어를 하게 된 것이 멋적은 한편, 빵빵하게 가동한 에어컨 공기에 심신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해설사는 간척하기 이전에는 바닷물이 지금의 들판 골짜기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다고 설명한다. 차창으로 내다보니 과연 지금도 바닷물이 들어오는 게 아닐까 싶게 보통 개울의 모습과는 다른 풍경을 이루고 있다.

 

 

 

버스는 신흥해수욕장을 지나 동촌마을로 향한다. 매봉산 동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어 마을 이름이 동촌리가 되었다고 한다. 상서리 마을 돌담길을 보고 싶었는데, 해설사는 상서리보다는 동촌마을이 전통 담장의 모습을 더 잘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는 '동촌마을 형성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유명인사 배출 마을'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비석에는 동촌리는 많은 인물을 배출한 마을임을 기록하고 있다. 조선 후기에 차씨 집안에서 무과에 2명이나 배출하였다는 것과, 면장이나 군수 등 지역 인물들이 나왔음을 알리고 있다.

 

 

 

입구에서 마을로 들어서자마자 길은 사람 키 높이의 돌담으로 호위하고 있다. 모두가 다른 모습, 자연 그대로의 돌들을 가지런히 쌓아올린 돌담길은 외할머니 댁에 가는 길처럼 정겹다. 

 

 

 

 

 

청산도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섬이니 전역에 바람이 심한데, 마침 돌이 많으니 자연스럽게 돌담집이 많이 생긴 것이다. 제주도의 돌담들이 그러하듯 이곳의 돌담도 대부분 흙을 쓰지 않고 돌로만 쌓았다. 이런 담을 강담이라 부른단다.

 

돌담이 압도적으로 시선을 끓어서인지 길바닥을 콘크리트로 포장했다는 것도 그리 눈을 어지럽히지도 않는다. 돌담을 따라 담쟁이가 기어오르기도 하고 등나무가 무성히 덮고 있기도 하다.

 

길은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기도 해서 숨바꼭질을 하며 얼마나 재미 있을까 하는 생각한다. 그런데 골목에는 숨바꼭질해야 할 아이들 모습을 볼 수 없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가진 골목길이지만, 청산도도 노인들만 남아 있을 뿐 젊은이와 아이들을 거둘 기력이 없다.

 

 

 

 

 

 

'그 여자네 집', '그 남자네 집'의 아름답고 아련한 추억을 가꿀 아이들이 살지 않는 마을은 쓸쓸하다.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눈길이 따뜻해져 오는 집'일까...? 담 너머로 집 안을 들여다 본다. 그러나, 적막만 흐르는 집...

 

 

멀리 신흥해수욕장 앞바다가 눈부시게 푸르다. 바다 멀리 꿈처럼 아득하게 떠 있는 섬, 덕우도.

 

 

 

 

 

 

마을 뒤에 자리잡은 정자나무, 아름드리 느티나무를 향하여 걷는다. 이곳의 담장의 높이도 사람 키 높이로 가지런하다.

 

 

 

 

 

느티나무 그늘에 모여 앉아 쉬고 있는 마을 어르신들은 외지인들이 찾아오는 일에 익숙한 모양이다. 

 

 

 

 

 

 

 

관광해설사가 바쁘게 한 바퀴 돌아 나가니 사람들도 바쁘게 뒤를 좇는다. 앉아서 노인분들과 짧은 대화라도 나누어 보았으면 좋으련만...

 

 

마지막에 남아 바쁘게 사진을 찍고 돌아서려는데 할머니들이 "나무 사진을 찍어야지!" 하고 불러 세운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느티나무 줄기에 여성의 젖가슴처럼 생긴 혹이 달렸다. 

 

 

 

 

위의 것은 뒤쪽에서 본 것인데 할머니들은 앞으로 가서 보라고 한다. 보니 자라 머리를 빼닮았다. (정면 역광이라 사진이 엉망이 되었다.)

 

 

 

 

역광을 피하여 찍으니 이런 모습이다.

 

 

 

 

아마도 '유주(乳株)'로 보인다. 나무가 숨을 쉬기 위해 뿌리에서 하늘을 향해 석순처럼 올라온 것을 '기근(氣根)'이라 하고 줄기에 종유석처럼 허공에 자라난 것을 '유주(乳株)'라고 한다. 기근이나 유주는 은행나무 고목에는 흔해도 느티나무에는 드물다. 그런데 은행나무 유주는 대개 남성의 생식기를 닮아 땅을 향해 늘어져 있는데 비해, 느티나무 유주는 유방처럼 솟은 모습이라 한다.

 

그래서 산모들이 느티나무 유주에 빌면 젖이 많이 나온다는 속설이 있기도 한데, 동촌리의 느티나무 유주는 여성 상징인 젖가슴 모양이기도 하고 남성 상징인 자라(거북)머리 모양이기도 해서 참 독특하다.

 

 

 

노인분들께 고맙다고 인사하고 돌아나오는 길, 또 하나의 정자나무의 모습을 담는 것으로 동촌리 산책은 끝났다. 

 

 

 

 

 

 

슬로 시티 청산도에 와서 투어버스를 타고 와서 짧게 주어진 시간에 후다닥 돌아보고 나오자니 참 '껄적지근한' 기분이 된다. 느릿느릿 걸으면서 느끼는 것이 여행의 참맛이련만...

 

 

몇 년 전 러시아 이르쿠츠크에서 환바이칼 순환열차를 타고 바이칼 호수를 여행했던 일이 절로 떠오른다. 달리는 것이 아니라 쉬엄쉬엄 걷는다는 느낌을 주던 기차. 가다가 경치 좋은 곳이면 멈춰서서 사람들을 내려 놓고 기다리고... 또 가다가 내려놓고...

 

투어버스가 그렇게 바쁘게 다닌다면 슬로 시티에 어울리는 것일까...

 

 

 

동촌리를 떠난 합승버스는 다시 신흥해수욕장길로 나와 진산해수욕장과 지리해수욕장을 잇는 북쪽 도로를 한 바퀴 돌아서 도청항으로 우리를 실어 주는 것으로 임무를 끝낸다. 동촌리 외에는 한 곳도 내리지 않고 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것으로... 

 

 

 

이렇게 해서 두번째로 찾은 청산도 여행은 모두 끝났다.

 

 

 

다시 마지막 배를 타고 완도를 향해 출발한다.

 

배 위에서 바라보는 도청항의 하늘은 어제와 달리 눈이 시리게 푸르고 풍경은 티 하나 없는 유리창처럼 맑다.

 

 

 

 

 

 

 

도청항은 점차로 멀어지고...

 

 

 

 

 

 

갑판 위에서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돌아오는 길, 구름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에 실루엣으로 드러나는 섬 풍경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