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초순, 하늘공원 가는 길에서 쉬땅나무 꽃을 만난다.
여름에 피는 꽃이 깊은 가을에 또 피었으니, 철부지 개화가 그지 없이 반갑다. 인간 세상에서는 꽃이 너무 일찍 피거나 (이성에 빨리 눈 뜨거나) 늦게 피게 되면(늙어서도 이성을 밝히면) 비난의 대상이 되지만, 이렇게 철부지로 피는 자연의 꽃들을 보면 더없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원래 쉬땅나무는 장마철 전후인 6~7월에 꽃을 피운다. 점차로 뜨거워지는 여름의 초입에서 더위에 맞서는 듯 가지 끝에 하얀 꽃송이들을 무더기무더기 피워올리는 모습은 장관을 이룬다. 여러 개의 줄기가 밑에서 부터 무더기로 자라니 그야말로 순백의 꽃덤불이요 꽃사태다.
줄기에 달린 무성한 푸른 잎들 속에서 가지 끝에 쌀밥처럼 수북히 피워 올린 흰 꽃송이는 탐스럽고 아름답다. 도감이나 백과사전에서는 이렇게 피워 올린 꽃차례의 모양이 수수꽃이 핀 듯하다고 하여 쉬땅나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설명한다.
'쉬땅'과 '수수'라니, 무슨 말일까? 아마도 북한 사람이라면 금방 알아 들었을 것이다. 평안도와 함경도에서는 수수깡을 '쉬땅'이라 부른다고 한다. 순백의 흰 꽃 쉬땅나무에서 수수를 연상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가을날 쉬땅나무 꽃진 자리에 갈색으로 익은 열매들이 조랑조랑 달린 모습이 수수 열매를 연상하기에 더 알맞은 것이 아닐까 싶다.
원래 개쉬땅나무로 불려왔는데 접두어 '개'자는 떨아져 나가고 지금은 쉬땅나무로 불린다. 쉬땅나무가 따로 없기에 굳이 '개'자를 붙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함경도에서는 '밥쉬나무'라고 부른다고 한다. 학명은 Sorbaria sorbifolia var. stellipila. 꽃말은 '신중'과 '진중'.
쉬땅나무는 장미과의 떨기나무로 중부 이북의 계곡과 산기슭 습한 땅에서 자란다. 뿌리가 땅속줄기처럼 벋고 많은 줄기가 한 군데에서 모여나며 잎은 아까시 잎처럼 작은 잎이 겹잎으로 달리며 잎끝이 뾰족하고 겹톱니가 발달하였다.
한국과 동아시아의 북동부에 널리 분포한다.
쉬땅나무의 줄기 껍질(莖皮)을 진주매(珍珠梅)라 하며 약용한다. 혈액순환을 돕고(活血) 어혈을 제거하며(祛瘀), 종기를 가라앉히고(消腫) 통증을 멈추게 하는(止痛)의 효능이 있으며, 골절과 타박상을 치료한다. 꽃은 기생충을 없애고(驅蟲) 풍을 다스리는데(治風)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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