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참 시원한 물놀이 계곡, 합천 황매산 석정 계곡

모산재 2010. 10. 15. 18:19

 

합천 읍내에서 여행 이틀째의 밤을 보내고 해인사를 보고 싶다는 동료들의 뜻을 따라 해인사로 향한다. 그런데 태풍 덴무가 상륙하여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해인사에 도착했을 때는 바람조차 심해지며 세찬 비바람이 몰아친다. 

 

결국 해인사는 건성으로 돌아보고 거기서 이별을 고한다. 모두들 서울로 돌아가고 이 선생님 커플은 다시 제주도로, 아버지 기일을 앞둔 나는 고향으로... 다시 제주도로 돌아가는 이 선생님 차편으로 고향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 기제사를 지낸 다음날 함께 모인 가족들은  무더운 더위를 피해 계곡으로 놀러 가기로 한다. 몇 곳을 대상으로 논의한 끝에 모산재에서 가까운 석정(石亭) 계곡을 선택한다. 

 

두심 마을을 거쳐 두만과 복치동 마을을 지나 대기 저수지 상류에 있는 석정 계곡에 도착한다. 집에서 10분 거리. 

 

 

설악산 울산바위를 연상케 하는 모산재의 늠름하고 수려한 모습이 나타나고 발밑에 대기 저수지가 나타나며 차를 멈춘다. 바로 앞 다리 위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이 바로 석정 계곡이다.

 

십 몇 년 전 이 저수지가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황매산에서 발원한 이 계곡은 옥구슬 같은 물이  크고 작은 돌과 바위들을 어루만지며 대기마을과 나무실(木谷) 을 지나 면 소재지인 가회에 이를 때까지 절경을 이루었던 곳이다.

 

대형 저수지를 만들면서 농업용수는 풍부히 확보되었지만, 저수지 하류의 계곡은 이제 이전의 아름다움을 모두 잃어 버렸다. 

 

 

 

↓ 길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모산재 아래 신라시대 고찰 영암사의 너른 옛 터가 나타난다.

 

 

 

너른 황매평전에서 발원한 물이 덕만 마을과 복치동을 지나며 물살이 거센 여울이 되어 흘러내리는 골짜기에 '석정(石亭)'이란 정자가 있다. 중학교 시절 모산재 아레에 있는 신라시대의 거찰 영암사터로 종종 소풍을 왔는데, 집으로 돌아갈 때면 늘 지나치던 곳이 바로 석정이다.  

 

 

 

석정 앞쪽에는 언제 지었는지 새로운 정자가  하나 섰다.

 

 

 

그리고 그 곁에 서 있는 석정(石亭). 복치동(복암) 마을 경주 이씨 집안의 정자이다.

 

 

 

새 정자와 석정 사이에 비석이 하나 서 있는데, 석정을 지은 이지형(李芝馨)이란 분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아마도 이 곳의 선비였던 분인 듯한데, 그리 널리 알려진 분은 아닌 듯하다.

 

 

 

↓ 석정과 현판

 

 

 

  

 

'원운(原韻)'이라는 제목에 이지형(李芝馨)의 한시를 새겨 놓은 현판이 걸렸는데, 석정의 풍경과 함께 시골 선비의 맑은 성품을 잘 나타내고 있다. (한시의 해석이 바른지... 잘 아시는 분의 질정을 바란다.)

  

 

 

     千年古洞天(천년고동천)     천년 옛 동천에

     巨壓前川(거석압전천)     거대한 바위가 앞 내를 압도하는데

     亭一老樹(정정일로수)     구불구불 우뚝 솟은 한 늙은 나무가

     自足舊名傳(자족구명전)     '(석정이란) 옛 이름이 전함에 한점 부족함이 없도다.

 

'석과 '정'의 의미를 담아 풀이해 낸 시다. ''동천(洞天)'이란 하늘에 닿아 신선이 사는 곳,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을 일컫는 말이다. 지금이야 이렇게 도로가 나고 황매산과 모산재와 영암사터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수십 년 전만 하여도 황매산 발치에 자리잡은 이 계곡은 두메산골 중에서도 두메산골이었다. 그야말로 하늘만 바라보이는 동천(洞天), 신선이 살 만한 승경(勝景)이 아니었겠는가. 

 

 

석정 바로 앞 계곡, 이렇게 물살이 거세게 흐른다. 계곡의 양쪽에는 깨뜨려 파낸 날카로운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바위가 있다.

 

 

 

예전에는 계곡 양쪽 바위가 이어져 있었고 그 위로 힘찬 물살이 작은 폭포를 이루며 흘러내리면서 그 아래에는 물이 굽이치며 도는 푸른 소(沼)가 있었다. 아마도 '애기소'라고 불렀던 것 같은 그 소에는 누구네 집 처녀가 빠져 죽었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 소를 바라보며 무서워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계곡을 가로지르던 바위가 파내져 버리고 소도 함께 사라졌다. 대기 저수지가 생기면서 낚시꾼들이 모여들자 석정 바로 곁에 무슨 가든이라는 식당이 생기면서 계곡의 바위들을 파내어 정원의 석축재로 쓰면서 훼손된 것이다. 아름다운 계곡 풍경 하나가 작은 탐심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석정의 상류 쪽으로 1백여 m에 걸쳐 이어지는 계곡은 그리 크지 않고 아담한 규모이지만 어디에 내 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멋진 풍경을 보여준다. 맑고 시원할 뿐 아니라 수량도 풍부한 계곡물은 골짜기를 가득 채운 크고 작은 바위를 힘차게 타고 흐르거나 돌아흐르며 곳곳에서 작은 폭포와 소를 이룬다.

 

 

 

 

 

위쪽 울창하게 우거진 숲 아래에는 세찬 물살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흘러내려 작은 와폭(臥瀑)과 소를 이루는 시원스런 풍경이 펼쳐진다.

 

 

 

 

 

 

 

 

 

 

 

계곡의 바위들은 크기와 모양, 무늬와 색깔 또한 다양하여 더욱 아름답다. 흘러내리는 물도 바위를 닮은 물줄기와 무늬와 색깔을 비춰주며 하얀 포말을 일으킨다.

 

 

 

 

 

 

석정계곡의 맨 위쪽에는 이 환상적인 색깔과 줄무늬를 자랑하는 바위를 타고 흐르는 작은 폭포와 소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 위쪽에는 이렇게 평탄한 계곡이 흘러내린다. 멀리 황매산의 한 능선을 이루는 바위산이 보인다.

 

 

 

계곡 주변은 계단식 논이 자리잡고 있다.  이 골짜기 상류에는 '두만'과 '상두만'이라는 십여 호 남짓한 작은 마을이 있다.

 

황매평전에서 흘러내리는 상류 숲속 계곡은 여름 피서지로는 최고일 것이다.

 

 

↓ 석정 주변에 핀 참나리꽃 

 

 

 

모두 계곡에 발을 담그고 놀다 가까운 식당에 주문한 닭백숙과 막걸리를 마시며 한나절을 즐겁게 보낸다. 

 

 

 

아이들은 물놀이에 신이 났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석정 골짜기를 토지 소유주가 외지인에게 팔아버린 모양이다. 예전 식당이 있는 자리 뒤쪽에는 커다란 건물이 들어서고 있는데, 무슨 연수원인가 하는 이름을 달아 놓았다. 

 

수익을 위한 시설이 들어서더라도 이 골짜기가 훼손되거나 오염됨이 없기를, 그리고 지역민들의 편한 휴식처로서의 기능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