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섬 여행

청산도 슬로길 (2) / 서편제 촬영지, 봄의 왈츠 세트장, 읍리 갯돌밭

모산재 2010. 8. 20. 09:22

 

슬로길에는 당연히 '서편제' 촬영지와 '봄의 왈츠' 세트장이 포함되었다. 전국 어디서나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는 찾는 사람들로 넘실거리지만,  이곳 청산도의 촬영지는 바다를 바라보는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어 조망이 특히 아름다워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다.

 

 

'서편제'는 이청준의 소설을 원작으로 판소리라는 전통 음악을 통해 민족의 한의 정서를 가슴저리게 그려낸 임권택의 걸작이다. 천대받는 떠돌이 예술가 소리꾼, 사무친 한의 소리를 위해 여식을 장님으로 만들면서까지 붙잡아 두려는 아버지의 이야기에 1993년 여름의 극장 안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백 만 관객 돌파 기록을 세우고, 대종상 6개부문을 휩쓸며 소리꾼 오정해를 충무로의 스타를 만들었고, 특히 남도의 사계를 담은 영상미로 정일성 촬영 감독이 스타로 떠오르기도 했다.

 

 

유봉과 송화, 동호가 집에서 소리를 하는 장면을 찍은 촬영지 세트장이 제일 먼저 나타난다. 길에서는 공원처럼 조성된 바다쪽 언덕에 가려져 지붕만 보인다. 그러나 이곳은 진짜 촬영지가 아니라, 건너편 큰마을 속에 있는 원 초가집을 그대로 모방해서 만든 한옥 세트장이다. 어찌된 일인지 청산도를 알리는 팸플릿에는 원 촬영지는 밝히고 있지 않다.

 

 

↓ '서편제' 촬영 세트장 뒤꼍에서 내려다본 도락리 해변 풍경

 

 

 

 

 

그리고 나타나는 낯익은 돌담길, 한국 영화 최초로 100만 관객을 훌쩍 넘겨버린 '서편제'의 최고 명장면을 탄생시킨 당리 돌담길...

 

임권택 감독이 만든 '서편제'를 본 사람이라면 유랑하는 유봉과 이복 남매가 이 보리밭 돌담길을 따라 걷다가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덩실덩실 춤을 추던 장면을 잊지 못할 것이다. 스크린이 고정된 채 무려 5분 40초 동안 롱테이크로 촬영된 장면이 보여지는 동안 점차로 빨라지는 소리에 스크린 밖 객석에서 고조되던 신명의 기억... 

 

 

 

 

 

청산도 당재 언덕 황톳길, 멀리서 느릿느릿 걸어 내려오면서 점차로 스크린을 채우며 다가서는 세 사람...

하얀 두루마기에 등짐을 멘 아버지 유봉,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은 딸 송화는 가방을 들었고 흰 저고리에 검정조끼를 입은 아들 동호는 북을 메었다.

터벅터벅 힘없이 걸어오던 이들은 꺾어지는 돌담을 돌아나오며 한판 소리마당을 벌이기 시작한다. 유봉이 '진도아리랑'을 메기자 송화가 화답하며 흥겨운 춤사위가 펼쳐진다. 시무룩하던 던 동호도 어느 새 덩실덩실 북채를 높이 쳐들었다. 

 

 

 

 

 

이 아름다운 황톳길은 농사에 불편하다는 주민들의 요구로 96년 콘크리트로 뒤덮였다가, 영화 속 원래의 아름다운 황톳길을 잊지 못하는 관광객들의 요청으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길은 공원화되면서 원래의 예스런 분위기는 사라졌다.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신명나게 춤을 추었던 넓은 공간(위의 장면에서 동호가 서 있던 자리)은 직선화된 담장 안으로 들어가고 담장은 깔끔하게 정비되고 길은 평탄하게 다듬어졌다.

 

멀리 뒤쪽으로 '봄의 왈츠' 세트장이 보인다.

 

 

 

 

 

위의 사진을 찍은 곳, 밭의 돌담에 메꽃이 환하게 피었다. 

 

 

 

 

 

'봄의 왈츠' 촬영지로 가면서 돌아보니 언덕 아래에 있는 '서편제' 촬영 세트장 전경이 드러나 보인다.

 

유봉이 송화에게 소리를 가르치던 허름한 초가이다. 영화에서는 건너편 당리마을의 초가집에서 촬영했지만,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원래의 촬영지를 모방해 이곳에 복원해 놓은 것이다. 비탈에 높은 석축을 쌓아 올려  집을 지어 놓은 모습이 좀 위태로워 보인다.

 

 

 

 

 

예전에는 당리의 원 촬영지를 찾는 관광객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그 존재조차 잊혀져 버린 듯하다. 당리의 촬영지와 마찬가지로 마루에는 영화의 장면을 그대로 재현한 밀랍인형을 만들어 놓았다

 

 

 

길가 담장에 핀 하늘타리꽃

 

 

 

 

 

서편제 '진도아리랑' 길을 지나면 바로 '봄의 왈츠' 세트장에 이른다.  

 

 

 

 

 

2006년 KBS에서 방영되었다고 하는 '봄의 왈츠'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없어 사람들에게 어떤 감흥으로 다가서는지는 알길 없는데 찾는 이들은 많다. 어쩌면 서편제 촬영지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동화 속의 장면처럼 예쁘게 지어진 하얀 이층집, 꿈처럼 아름다운 추억을 나누고 싶은 연인들이 찾을 만한 곳이겠다. 노란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날이면 더욱 좋겠지.

 

 

 

 

 

 

원래 이 세트장은 '바닷가 언덕 위의 하얀 집' 이라는 컨셉으로 지었다고 한다. '가을동화', '겨울연가', '여름향기' 등 계절 시리즈를 계획하면서 봄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세트장을 만드는 것이 제작 의도였다고 한다.

 

 

드라마 '봄의 왈츠' 는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 해도, 지금도 어딘가엔 이런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계절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윤석호 감독이 일관되게 보여드리고자 하는 주제는 바로 순수한 사랑입니다. 마무리 <봄> 역시 이 주제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긴 겨울을 지나 얼음을 뚫고 나온 새싹처럼, 긴 밤을 지나 투명한 아침 첫 햇살을 받는 풀잎 이슬처럼,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고 세상을 맑게 순화시켜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다시 한 번 그려보고자 합니다. 운명의 의해 섬이 되어버린 남자... 그리고 그를 감싸 안은 바다같은 여자...<중략>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절망의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드라마 <봄의 왈츠>는 삭막한 현대인들에게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힘을 일깨워줄 치유의 드라마입니다. 모든 것을 수용하는 대자연과 변함없는 계절의 아름다움, 그 속에서 펼쳐지는 두 남녀의 순애보적 사랑. 드라마 <봄의 왈츠> 윤석호 감독 특유의 섬세함과 서정적 영상미를 통해 다시 한 번 우리들 가슴 저편에 묻어두었던 아련한 순수에의 노스텔지아를 일깨워드릴 것입니다.

 

 

세트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 한 바퀴 둘러 본다.  

 

 

1층에는 전망이 환한 커다란 창과 예쁜 식탁과 피아노가 놓여 있고...

 

 

 

 

2층으로 올라가면 아늑한 분위기의 침실이 있다. 낮은 천장 아래 창 밖으로 바라보는 푸른바다가 아름답다.

 

 

 

 

'봄의 왈츠' 촬영지에서 본 도락리 앞바다 풍경

 

 

 

 

 

 

'봄의 왈츠' 세트장을 돌아본 뒤에 다시 뒤쪽의 길을 따라 슬로길 걷기에 나선다.

 

청산도의 서쪽, 마치 장산곶처럼 바다 쪽으로 길게 나온 화랑포 쪽 서편제길을 돌아보는 것도 좋겠지만 지난번에 한번 돌아본 적도 있거니와 시간에 여유가 없어 생략하기로 한다.

 

 

언덕길을 돌아 당리 갯돌밭 쪽으로 가로질러가기로 한다. 건너편 마을 뒤로는 전에 보지 못했던 성이 복원되었고, 앞쪽으로 공사중인 모습이 눈에 띈다.

 

 

 

 

 

당리는 마을 주변에 '청산진터(靑山鎭址)'라고 하는 성의 흔적이 남아 있어 당초에는 진말이라 하였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청산진은 1866년에 설치되었고 1871년에 성을 쌓았으나 30년만인 1895년에 파진(罷鎭)되었다고 한다.

 

청산진성은 평지와 구릉을 이용하여 쌓은 평산성으로 총둘레 1,100m의 부정타원형이다. 성문은 동, 서, 남 3문을 두었다. 남북에 비해 동서의 길이가 약간 더 길며 남아 있는 성벽의 높이는 외벽이 대략 2m 내외이고 서벽의 경우는 1m 내외만이 남아있는 형편이다. 동북벽은 길이 100m, 외벽 높이 3.2∼3.5m 정도로 원래의 높이와 너비로 남아 있다.

청해진성의 공무 건물은 1904년 완도 군청을 수리할 때 헐어다가 건축자재로 사용하였다 한다. 또한 진의 일부 건물은 1896년 청산면의 성립과 동시에 청산면사무소로 사용하다가 1953년 도청리로 이설되었다고 한다. 남문터로부터 약 20m 북쪽의 골목길 근처에는 마을공동우물로 사용하고 있는 우물이 남아 있다. 

 

 

 

 

 

묵혀 놓은 밭에서 풀을 매고 있는 아낙네들. 

 

 

 

 

 

바다 쪽에서 올려다본 아름다운 '봄의 왈츠' 세트장,  뒤편은 뜻밖에도 공동묘지나 다름없는 풍경이 자리잡고 있다.

 

 

 

 

 

연인들의 사랑의 보금자리와 죽은자들의 안식처가 함께 있는 장면을 올려다보다가, 문득 어느 신문에서 보았던 인터뷰 기사 내용이 떠올라 웃음이 절로 난다.

 

지어보고 싶은 건물이 어떤 것이냐는 물음에 건축가는 화장장 이층에 러브호텔을 짓는 거라고 답했던가...

 

 

높은 언덕의 고개를 넘어서 실처럼 가느다란 길이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한참 내려가니 다시 화랑포에서 오는 큰길을 만난다. 이곳에서부터 슬로길은  줄곧 바닷가 산기슭을 끼고 이어지게 된다. 지금 이곳을 지나 읍리 갯돌밭까지 이르는 해안길은 '연애바탕길'이라 이름지었는데, 남녀가 이 길을 걷다보면 어느 새 연애의 바탕이 된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 한다. 이 길은 슬로길 제2코스이다.

 

골짜기 어름에서 '사진찍기 좋은 곳'이라는 표지판이 있어 갯가로 내려선다.

 

 

지도에서 확인해 보니 이곳이 '당리 갯돌밭'으로 보이는데, 정작 내려서보니 멀리 화랑포에서 벋어나간 슬로길이 보일 뿐 그다지 뛰어난 풍경은 아니다. 

 

 

 

 

 

당리에서 출발하여 장산곶처럼 길게 서쪽바다로 길게 벋어나간 저 해안길을 도는 코스를 '서편제길'이라고 이름지어 놓았다. 몇 년 전 차가 다닐 수 있는 큰 길을 내며 경관을 크게 훼손시켜 비난 받았던 일이 있었는데, 이제는 청산도 슬로길 제1코스로 자리매김되었다.

 

 

 

 

 

갯가에는 바닷빛을 닮은 순비기나무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다.

 

 

 

 

 

갯가에 저 석축을 쌓아 놓은 땅은 무엇일까. 잡초들만 우거져 있는데, 골짜기를 타고 가늘게 흘러내리는 물을 담아서 저 좁은 땅에 벼라도 심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추측해본다. 땅 한 평이 아쉬웠던 시절의 흔적이 아닐까 싶어 숙연해진다.

 

 

 

 

 

그 위쪽 습한 땅에는 흰꽃여뀌들이 무리를 지어 개화를 준비하고 있다.

 

 

 

 

 

나도별사초?

 

 

 

 

 

 

다시 슬로길로 돌아와서 '읍리 갯돌밭'쪽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길은 오른쪽으로 바다를 끼고 있는 산길이어서 마음이 즐로 흥겨워진다. 해안 풍경도 즐기고 산길에서 만나는 풀꽃나무도 구경하고...

 

길의 이름이 '연애바탕길'이라고 한 것이 그리 빈 이름이 아니게 생각된다.

 

 

얕은 등성이를 돌아가는 곳 볕 바른 풀밭 곳곳엔 노란 딱지꽃이 피었다.

 

 

 

 

 

그냥 대극에 비해서는 잎이 많이 가늘고 촘촘해 보이는 이 녀석은 흰대극으로 보면 될지...

 

 

 

 

 

가느다란 줄기에 몇 안 되는 잔이삭을 단 사초가 자주 눈에 띈다. 들하늘지기이다.

 

 

 

 

 

만곡을 이룬 당리갯돌밭을 벗어서 바다 쪽으로 굽이를 이룬 등성이길로 나서니 화랑포가 있는 순환로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지나온 해안 산기슭길이 나타나게 사진에 담아본다.

 

 

 

 

 

꽃이 지고 길게 이삭을 단 풀이 자주 눈에 띄기 시작한다. 낯선 녀석이다 했는데 한참 걸어가면서 그 이름을 생각해낸다. 사진으로만 보던 남도의 백합과 풀, 바로 쥐꼬리풀이다.

 

꽃이 필 때 왔으면 좋았을 것을...

 

 

 

 

 

그리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애기도라지 꽃을 만나 탄성을 지른다. 키가 한 뼘 정도에 손톱보다 훨씬 작은 꽃인데, 한 송이만 피었다. 혹시 다른 개체가 있을까 싶어 사방을 샅샅이 뒤졌지만 무슨 일인지 이 하나밖에 없다.

 

 

 

 

 

귀한 애기도라지를 담느라 100mm 매크로렌즈까지 갈아끼고 기념사진 찍는데 땀깨나 흘린다.

 

 

길 아래 해안은 내려설 만한  땅이 없는 절벽으로 줄곧 이어진다. 

 

그리고 큰 등성이를 돌아서니 넓은 만곡부를 이룬 해안이 나타난다. 지도를 펴고 확인해 보니 왼쪽은 읍리 갯돌밭, 오른쪽 먼 곳 해안은 구정리 갯돌밭이다. 보적산 봉우리는 구름에 덮였고 그 아래 구정리 마을만 모습을 드러낸다. 

 

 

 

 

 

발풀고사리가 대군락을 이루며 양지바른 등성이를 덮고 있다.

 

 

 

 

 

다시 줌렌즈를 갈아 끼우기가 귀찮아서 100mm 렌즈로 갯바위의 모습을 담으니 그냥 이 모양이다. 

 

 

 

 

 

 

갯가 언덕에 핀 땅찔레, 청가시덩굴이 아직도 흰 꽃을 달고 있다.

 

 

 

 

 

갯무인지 그냥 무인지...

 

 

 

 

물방동사니일까 싶은데 키도 작고 이삭이 성근 모습이 자꾸 걸려 찾아보다가 방동사니아재비라는 걸 확인한다.

남부지방에 자생하는 풀.

 

 

 

 

 

후박나무 열매

 

 

 

 

 

갯가 공터와 돌담에는 계요등이 가득하다. 평지에는 꽃봉오리들만 달렸는데 돌담엔 꽃들이만개하였다.

 

 

 

 

 

 

해안선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이 동원되어 공사를 하고 있다. 슬로길 도로를 정비하는 것인지...

 

 

구정리 갯돌 해안의 민박집에서 식수를 채우고 다시 슬로길 걷기를 계속한다.

 

 

걷는이를 위해 지어놓았지 싶은 정자에는 주인아저씨로 보이는 사내가 시원스레 낮잠을 즐기고 있다. 정자를 돌아 다시 산길로 접어들며 권덕리로 향한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