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끝나가는 주말, 올해 들어 처음으로 남한산을 찾기로 하고 집을 나선다. 5월 들어서도 내내 춥기만 하던 날씨가 오늘 따라 화창하고 햇살은 따갑다.
집 주변 화단에는 꽈리가 자라 작은 꽃망울을 달기 시작했다. 초록빛 감도는 커다란 흰 꽃을 볼 날이 멀지 않았다.
등산로 입구에는 자주괴불주머니가 아직도 꽃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런데 자생지 주변 계곡 일부가 포크레인에 밀리고 길을 만들고 있어 훼손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등산로로 들어서니 울울하게 들어선 숲으로 길이 캄캄할 정도다.
그런데 길바닥과 주변 언덕이 하얀 솜뭉치 같은 것들이 가득 덮여 있다. 아마도 사시나무 종류의 꽃이삭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 아닐까. 사시나무는 암꽃과 수꽃이 딴그루로 매우 작은 씨에 솜털 모양의 긴 털이 달려 바람에 잘 날린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까마득한 높이에 과연 사시나무 종류로 보이는 잎이 보인다. 동그스름한 모양의 잎의 끝이 뾰족한 것이 사시나무의 특징이다. 잎 가장자리에는 얕게 갈라지는 톱니가 있는데 그것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잎에서 가지로, 가지에서 나무 줄기로 더듬어 내려오니 아름드리 나무 둥치가 보인다. 백양이라고도 부르는 사시나무의 껍질이 이렇게 거칠고 검던가. 키가 낮으면 잎이나 줄기를 살펴보았으면 좋으련만... 혹시털사시나무일지도 모른다. 경기도에 많이 분포한다니까...
나도잠자리란이 어떤 모습일까 하고 찾았더니 아직 꽃대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수풀을 헤치고 바로 옆 골짜기로 올라 백선 자생지를 찾았더니 어찌 된 일인지 그 많던 개체수를 자랑하던 백선이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꽃을 피울 만큼 튼실한 개체는 보이지도 않는다.
별 볼 만한 것이 없어 숲그늘에 빈약하게 핀 청가시덩굴을 잡고 한참 씨름을 한다.
그리고 다시 능선을 타고 발길을 옮기니 개옻나무들이 줄을 지어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개옻나무도 암수딴그루인데, 노란 꽃밥을 단 수술이 풍성한 수꽃나무에 쉽게 눈길이 가지만 단조로운 녹색 뭉치로 보이는 암꽃나무는 지나치기 십상이다. 이것이 개옻나무의 수꽃이고
이것이 개옻나무의 암꽃이다.
김의털이 꽃이삭에 열매를 달고 있다. 꽃을 피운 포기들의 잎들은 다소 시들어 쪼그라든 모습이지만...
꽃을 피우지 않은 잎들은 이렇게 풍성하고 싱싱한 모습을 보인다.
붓꽃은 한창이다.
산성길로 올라서니 참꽃마리 꽃이 꽃밭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성벽 바위틈서리에는 털장대들이 가느다란 줄기를 일직선으로 세우고 키재기를 하고 있다.
흰참꽃받이가 여전히 세력을 자랑하고 있는지 아니면 사라진 것인지 궁금해서 자생하던 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성밖길을 돌다 암문을 통해 성 안으로 들어서려 했는데, 뜻밖에 공사로 암문이 막혀 있는 바람에 결국 북문까지 한바퀴 돌아서 가게 되었다. 나도냉이를 만난다. 벌어진 꽃차례로 봐서 아무래도 유럽나도냉이로 보인다. 자나가는 사람들이 무슨 꽃이냐고 묻는다. 나도냉이도 다 있느냐고 웃음을 터뜨리며 폰카로 찍는다. 매크로렌즈를 들고서도 낑낑대며 찍는 꽃을...
어느새 졸방제비꽃의 계절도 지나가고 있는 모양이다.
이 산에는 자생하는 백당나무가 종종 보인다.
흰나비 한 마리가 내 발길을 몇 발씩 앞서서 날아가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모델이 되어 준다. 초점을 맞출 시간을 주지 않고 자꾸만 자리를 떠 속을 끓인다. 나비나 여자나...
층층나무도 꽃이 한창이다.
성문 근처에 아름드리로 자라던 괴불나무가 생각나서 찾았더니, 괴불나무는커녕 모든 나무들이 깨끗이 베어져 사라져 버렸다. 이럴 수가 싶어 괴불나무가 있던 자리를 더듬어 찾으니 베어진 나무 그루터기에서 어린 줄기들이 가득 자라나 아래와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줄기들을 헤쳐보니 잘린 단면이 반석처럼 까맣게 보일 뿐이다. 성을 해칠 만한 나무도 아니었는데, 굳이 잘라야 했을까...
성문 앞 둔덕에는 지느러미엉겅퀴 붉은 꽃이 곱게 피었다.
성문 앞 철조망으로 둘러쳐진 밭과 밭언덕에 핀 하얀 꽃은 무엇인지... 짐작으로는 고광나무가 아닐까 싶은데, 20배줌 똑딱이 카메라로 당겼으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을, 100mm 렌즈로는 어림 없으니 억울해진다.
딱히 볼 것이 없으니 보리수나무 꽃을 담아본다. 흰 꽃이 피었다가 점점 노랗게 변하는 것이 인동덩굴과 닮았다. 향기가 진해 머리가 띵할 정도이다.
흔하디 흔한 애기똥풀을 몇 년만에 담아 본다.
흰참꽃받이가 군락을 지어 꽃을 피우던 자리를 찾았는데, 어떻게 된 영문일까 눈을 씻고 몇번이나 찬찬히 살펴보지만 한 개체도 눈에 띄지 않는다. 지지난해 꽃이 한창 피었을 때 공원관리소에서 풀베기 작업을 벌였으니 타격이 크리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줄은 몰랐다. 실망스런 맘으로 그냥 집으로 돌아가자고 왔던 길을 향해 재촉한다. 얼마 가지 않아 길가 숲에 하얀 꽃송이를 주렁주렁 단 덜꿩나무를 만난다. 흰참꽃받이 대신 덜꿩나무 꽃이나 실컷 담는다.
요즘은 꽃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많다. 아이와 함께 산책을 하던 아주머니가 꽃 이름을 묻고 층층나무와 어떻게 다른지도 묻는다. 그리고 다시 길을 재촉하다가 아쉬운 마음에 길가 둔덕을 흘낏흘낏 바라보다가 얼씨구~! 하고 탄성을 지른다. 흰참꽃받이 흰 꽃송이가 눈에 띄지 않느냐. 비록 몇 개체밖에 없었지만 멸종되지 않았음을 크게 기뻐하며 정성들여 렌즈를 댄다.
그런데 이 꽃을 나는 개인적으로 거센털개지치라고 부르고 싶다. 털이 있는 참꽃마리를 거센털꽃마리라고 부르고 그 이명을 거센털개지치라고 하지만, 이 풀꽃 어디가 참꽃마리와 닮았다는 말인가. 오히려 개지치에 거센털이 난 모양이니 거센털개지치라는 이름이 딱이 아닌가... 어쨌든 헛걸음이 아니었음을 다행히 여기며, 또 이 녀석들이 종자를 잘 맺어 다시 지천으로 번식하기를 바라며 산을 내려서는 발걸음은 절로 흥겹다. 국화마와 단풍마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까 올라올 때 미처 살펴보지 못했던 위성류가 생각나 찾아보니 과연 꽃이 피었다. 중국 메마른 사막지대 주변에 자라던 위성류가 어떻게 이 골짜기에까지 흘러들게 되었는지... 위성류는 여름에 또 한번 꽃을 피우는 것이 특징이다.
아카시아 꽃은 이미 거의 다 지고 있다.
까락이 많은 녹색 꽃밥을 예쁘게 단 이 벼과의 풀 이름은 무엇일까.... 의문을 품으며 오늘의 풀꽃나무 탐사를 마친다.
답은 개밀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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