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일기

고향 풍경/ 우물가엔 명주달팽이 기고, 논두렁길 따라 농부는 꼴지게 지고

모산재 2010. 8. 16. 13:47

 

고향의 아침을 명주달팽이와 함께 맞이한다.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하며 세수하러 우물가에 갔더니, 명주달팽이 한 마리 졸졸 흐르는 물길을 거슬러 느리고 느린 걸음을 옮기고 있다. 10여 분이 지났나 싶게 그 느린 걸음을 지켜 보고 있노라니 '찌뿌둥'했던 몸도 정신도 어느새 맑아지고 내 몸은 자연의 리듬에 편안히 맞춰진다. 달팽이는 그 새 한뼘 정도 갔나 싶다. (찌뿌둥→'찌뿌듯'이 바른말)

 

잠도 덜 깬 채 새벽처럼 집을 나서 뛰듯이 후다닥 직장으로 달려가는 생존투쟁 하루하루, 그 끔찍한 긴장에서 벗어난 행복감에 온 몸의 세포가 북극의 산소를 호흡하는 듯 상쾌한 기분에 젖어든다.

 

 

 

 

'아즉길'(오전) 이른 시간 아버지 산소에 무성한 잡초를 맨다. 낫으로 망초, 개망초, 한삼덩굴 들을 베어내노라니 땀이 비오듯 등줄기를 흘러내린다.

 

대서 무렵이라 한낮의 땡볕은 피해야지...

 

 

종일 집안에 있기도 무료하여 땡볕의 기세가 한풀 꺾인 '정때'(오후) 늦은 시간 바람쐬러 나선다.

 

 

어머니가 가꾸어 놓은 깨밭엔 하얀 참깨꽃이 만발이다. 흰 꽃이라지만 연분홍 빛이 살짝 도는 참깨꽃은 오동꽃을 닮았다.(열매 모양도 닮았다!) 현삼과인 오동과 과는 다르지만 분류학적으로 그리 멀지 않다. 

 

 

 

 

띠밭골 가는 길, 팔순을 훌쩍 넘기신 희익이 아버지가 논두렁 따라 꼴짐을 지고 가신다. 연세 많으신 분이 저토록 정정하신데, 더 젊은 나이로 먼저 세상을 뜨신 아버지는 맞은편 언덕 묏등에 앉아서 이 장면을 지켜보고 계실까...

 

  

 

이제 쉰둥이가 되었을 두 해 후배 희익이는 고향을 떠난 이후에는 한번도 만나지 못했으니. 같은 동네에서 어린시절을 함께 보낸 인연이 이 시대에 이토록 가벼워져 버렸다...  

 

 

 

꽃차례가 빈약하기 짝이 없는 이 풀이 종종 눈에 띄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남도지방에 드물게 발견되는 갈사초라고 한다...

  

 

 

자라등 소나무들이 들어선 산에는 커다란 버섯들이 자라나고 있는데 이름을 모르는 종류들 뿐이다.

 

  

 

 

그리고 들어선 밭길에서 만난 전구처럼 생긴 이 하얀 버섯은 말불버섯이다.

 

 

 

산길가엔 나도개피가 흔하다.

 

 

 

 

띠밭골 논과 밭들은 대부분 묵어서 칡덩굴 등 잡초와 잡목으로 뒤덮였다. 논밭두렁의 경계도 알 수 없게 덤불이 우거져 있어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어 발길을 돌리고 만다.

 

 

산 입구 개울 옆 매실나무 밭에서 만난 줄나비... 날개의 앞면만 보여 판단은 어렵지만 제이줄나비로 본다.

 

 

 


단골로 담는 고향의 개울 풍경.


봄가을 띠밭골에서 벤 나락(벼)이나 보리 짐을 지고 올 때, 또는 겨울에 나뭇짐을 지고 올 때면 꼭 지겟짐을 벗고 땀을 식히곤 했던 곳. 목덜미에 파고 든 벼와 보리 이삭 가시래기를 떼어내고 세수를 하고, 물가에 달린 고드름을 따서 먹으며 갈증을 달래었던 곳...

 

 

 

 

자연의 곡선이 그대로 살아 있는 보. 청계천과 4대강이 얼마나 거짓인가를 잘 보여 주는 풍경이지...

 

 

 

집으로 들어서니 사철나무꽃에 네발나비가 날아들고 있다.

 

 

 

알뿌리가 굵게 안 들어서 어머니의 한숨과 함께 헛간에 내걸린 마늘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니 키다리꽃(겹삼잎국화)이 앞산을 바라보며 대신 꽃등을 밝히고 있다.

 

 

 

느려서 행복한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