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지리산 둘레길, 실상사에서 금계리까지

모산재 2010. 5. 16. 20:09

 

2010년 4월 24일 오후

 

 

오후 네 시를 넘겨 예정에도 없던 지리산 둘레길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일단 둘레길에 올라서 인월까지 가 볼까 생각해 보는데, 해 지기 전까지 남은 세 시간으로 가능할지... 그건, 둘레길에서 사람을 만나 물어보면 될 일이다.

 

 

'실상사작은학교' 방과후 교사가 일러준 대로 실상사에서 만수천을 건너 중황리 쪽으로 난 큰길을 따라 걷는다. 말이 마을이지 가파른 삼봉산이 흘러내린 기슭이어서 길은 지루한 오르막길로 이어진다. 아마도 예전에는 큰길이 없었던 첩첩산중 오지 마을이었을 터인데 새로난 길은 포장이 되었다.

 

 

▼ 실상사에서 중황-상황마을을 지나 금계리 길로 걸었다.

 

 

 

 

 

만수천을 향해 너른 품으로 솟은 삼봉산(높이 1187m) 기슭을 따라 오르면서 차례대로 하황, 중황, 상황 세 개의 자연마을을 지난다. 남원시 산내면 중황리와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및 마천면의 경계에 있는 산에서 삼봉산은 세 개의 봉우리인 투구봉, 촛대봉, 삼봉산을 합쳐 삼봉이라고도 한다.

 

 

상황마을에서도 더 올라가야 둘레길과 만난다고 했는데 길은 멀기만 하다.

 

하황마을로 들어서는 어귀에는 이렇게 멋진 느티나무가 언덕 위에 서 있다. 그 아래로 도로가 나는 바람에 다소 위태로워 보인다.

 

 

 

 

 

 

그리고 중황마을을 지나고...

 

 

 

 

 

그리고 금방 상황마을이다. 오른쪽 정면 마을 회관 너머로 삼봉산 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은 마을마다 몇 백 년은 된 듯 느티나무가 있고 그 아래에는 창문을 단 현대식 정자를 지어 놓았다. 자식들을 대처에 내보낸 노인들은 여름날 이 느티나무에 앉아서 점 10원짜리 고스톱이라도 치며 무료하고 외로운 시간을 보낼 것이다.

 

 

마을 이름이 '황'으로 된 것은 뒷산에 황강사(黃岡寺란 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상황마을까지 지나 비탈길을 오르니 계단식 논들이 이어지고 지은 지 얼마되지 않은 산장이나 가든이 띄엄띄엄 자리잡았다. 토종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살아왔던 방식대로 농사를 짓고 외지인들은 주변의 땅을 사서 이렇게 최신식 숙박업소나 휴게소를 지어서 운영하고 있다.

 

 

물이 드는 논가에는 숯불 같은 자운영 꽃이 어찌나 아름답게 피어 있는지...

 

 

 

 

 

상황마을을 지나서도 한참을 걸어서야 들이 끝나고 산이 시작되는 삼봉산 산발치에 이르른다. 산과 들이 만나는 곳, 거기에 둘레길이 나타난다.

 

 

마침 언덕 위 산과 들의 경계로 난 길로 인월 방향에서 남녀 한쌍이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금계리로 가는 것이 분명한데 만나서 길을 알아보아야 한다. 운봉에서부터 걸어왔다는데 인월에서도 네 시간이 더 걸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미 네 시 반이나 된 지금, 14km나 되는 인월로 가기엔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금계리에는 인월로 가는 교통편이 자주 있다는 이분들의 말을 듣고 나도 금계리로 가기로 한다. 5.6킬로이니 길이 좀 안 좋다 하더라도 두 시간이면 닿을 것이다.

 

 

 

 

 

산길로만 이어지는 둘레길은 생각했던 대로 한적하고 편안하다. 한참 길을 가다보면 앞서 가던 사람들이 쉬고 있기도 하고 또 내가 꽃을 만나 사진을 찍고 시간을 지체하다보면 뒤따라오던 분들이 앞서기도 한다. 짧은 순간의 만남이지만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나누는 묘미도 있다.

 

 

고개를 향하여 올라서는 곳, 소나무숲이 그늘을 만든 곳에서 잠시 쉰다.

 

숲그늘에는 봄맞이 하얀 꽃들이 은하수처럼 펼쳐졌다.

 

 

 

 

 

지금 오르는 이 고개를 등구재라고 한다. 삼봉산이 흘러내리다가 만수천 바로 앞에서 백운산이란 봉우리를 만들었다. 등구재는 바로 삼봉산과 백운산 사이로 나 있는 고개로 말안장과 같은 능선, 즉 안부(saddle)를 이루고 있다.

 

한자 이름으로는 '아홉 구비를 오른다'는 뜻의 '등구치(登九峙)'라고 하는데 고개 높이는 645m이다. 전북 남원군 산내면 중황리와 경남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마천 쪽으로 고개 이름과 같은 등구마을이 있다.

 

 

▼ 고갯길에 핀 현호색

 

 

 

 

 

▼ 길가 숲속에 핀 저 꽃은 야생 살구일까...

 

 

 

 

 

고개를 올라서니 낙엽송(일본이깔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이 숲길을 지나면서부터는 경남 함양군 마천 땅이 된다.

 

 

 

 

 

고개를 넘어서 내려서는 곳에 숲속엔 저수지도 보이고 주변 길을 따라 드문드믄 풀꽃들도 보인다. 그늘사초, 털제비꽃, 산자고(까치무릇) 등이 꽃을 피웠다.

 

 

 

 

 

 

해가 산 너머로 숨어 버려 산그늘에 잠긴 산자고(까치무릇)는 꽃잎을 벌써 닫아 버렸다. 까치무릇은 햇빛이 사라지면 꽃잎을 닫아버린다. 창원마을로 내려설 때까지 산과 들의 언덕에는 까치무릇이 종종 보인다.

 

 

 

 

 

등구재를 넘어서 창원 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계단을 이룬 다랑이논들과 함께 하는 길이다.

 

산비탈을 개간하여 만든 들판인데 길 왼쪽의 들은 묵은 지 오래되어 잡목이 우거져 있어 원래의 논 모습을 완전히 잃어 버린 모습이다. 쌀 한톨이라도 얻으려고 조상들이 피땀 흘려 만든 농토가 다시 산이 되어가는 걸 보며 마음이 아프다. 내 고향 부모님이 농사 지으시던 골짜기의 논들도 이와 같은 모습이 되어버렸으니...

 

 

 

 

 

하우스에서 일을 하던 동네분에게 인사를 건넨다. 자녀인지 손녀인지 애매한 두 딸이 같이 일하고 있는 모습이 예뻐 사진을 찍어도 될까 했더니 고개를 돌리고 숨는다. 사진을 못 찍어도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아서 더 좋다.

 

그러고 돌아서는데 논둑에 광대수염이 군락을 이루고 연두색이 도는 하얀 꽃을 피우고 있다.<

 

 

 

 

 

▼ 산괴불주머니

 

 

 

 

 

마을로 내려가는 길을 꼬불꼬불하기만 하다. 호두나무였던가, 꼬불꼬불이어지는 길에서 석양을 받은 동쪽 하늘엔 낮달이 떠 있다.

 

 

 

 

 

 

▼ 자두꽃에도 석양 빛이 물들었다.

 

 

 

 

 

▼ 산비탈 무덤가 언덕에 광대나물(코딱지나물) 꽃이 피었다. 뒤로 보이는 노란 꽃은 꽃다지..

 

 

 

 

 

논은 갈아 엎어 물을 대고 모내기 준비가 되었다. 커다란 무논 저 건너 계단식 좁은 논(다랑이논)에서 경운기로 '로터리'치고 일을 하는 부부의 모습이 보인다.

 

 

 

 

 

 

등구재를 한참 내려선 곳에서 창원마을이 나타난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부부가 길을 따라 마을으로 오르고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본다.

 

이 마을은 조선시대 면내의 각종 세(稅)로 거둔 물품들을 보관한 창고가 있어서 창원마을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과실수로 감나무, 호도나무를 많이 재배하고 닥나무를 길러 한지를 만들기도 하는 넉넉한 마을이라고 한다.

 

 

마을 입구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노부부가 마을길로 돌아드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본다. 능선을 이룬 돌담 언덕 위 하늘을 배경으로 모습을 드러낸 마을 집과 감나무 풍경이 정겹다.

 

 

 

 

 

이 글을 쓰려고 창원마을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지리산길'(http://www.trail.or.kr/) 이라는 홈페이지를 검색해보는데 거기서 뜻밖의 사진을 만난다.

 

'아치'란 필명을 쓰는 분이 '창원마을에서 만난 노 전대통령'이란 글과 함께 사진을 올려 놓았다. 작년 노대통령이 서거하신 며칠 뒤(2009-05-29)에 올린 사진은 놀랍게도 내가 위에 올린 사진과 같은 장소로 거기에 노대통령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지난 겨울의 추위 때문인지 푸른 대숲이 사라졌다.)

 

 

 

2008년 11월, 다른 일로 함양에 들렀다가 인근 지리산길을 걷기 위해 창원마을에 오셨던 노 전대통령. 창원마을에서 금계마을까지 걷고 가셨다. 알고 있던 것처럼 여전한 편한 복장과 말투... 반홍시를 맛나게 드셨다.

'안녕하세요?" 노 전 대통령이 인사하고 가자 마을 어른 "누고?" 다른 이들이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하자 "하이고", "세상에나"를 연발하신다.

 

 

노대통령이 서거하시기 6개월 전 쯤, 늦가을에 바로 이 창원마을을 찾으셔서 금계리까지 산길 트레킹을 하신 모양이다. 사진 속 노대통령은 이곳 특산물인 홍시를 맛보고 있는 모습이다.

 

다음 날짜로 '반달곰'이란 필명을 쓰는 분(아마도 그곳에 함게 했던 분이신 듯)이 다음과 같은 댓글을 달아 놓았다.

 

 

그날. 당신은 지리산길 벽송사 송대 구간의 아픈 이야기를 전하자, 이렇게 얘기하셨죠.
길을 걷다, 뼈아픈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되면.. '전율하지요.'라고.
창원 마을 어귀에서 저 멀리 지리산 동북 능선을 바라보는 당신의 주름진 옆 모습이 생생합니다. 다시 오셔서 못다 걸은 길을 걸으마 하셨는데, 이렇게 가실 줄이야.
안녕히 가십시오.
명복을 빕니다.

 

 

마음이 어찌 짠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걸었던 그 길, 내가 잠시 멈춰서서 바라보았던 하늘과 함께 보이던 마을길에서 평화롭게 홍시를 들고 있는 노대통령...

 

나도 반달곰 님 글에 이어서 다음과 같은 댓글을 달아 두었다.

 

 

지난 4월말 실상사에서부터 이 마을을 거쳐 금계까지 걸은 적이 있습니다.
그날 바로 위의 사진과 구도가 꼭 같은 장면으로
저녁 무렵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동네 노부부의 모습을 담았는데
노대통령께서 같은 장면 속에 서 계신 사진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이 정보를 미리 보았다면 아마도 훨씬 숙연하게 많은 것을 생각하며 걸었을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짐승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 역사에서 모처럼 맞이했던, 짧았던 인간의 시간들이 자꾸만 그리워집니다.

 

 

 

이 글을 올리면서 마음으로 다시 이 길을 걸어본다. 노대통령과 함께 길을 걸었다면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었을까...

 

 

 

다시 창원 마을을 떠나 오른쪽 산 허릿길로 접어든다. 내가 걷는 길쪽은 산그늘에 잠겼고 멀어지는 창원마을은 마지막 저녁 햇살을 환하게 받고 있다.

 

 

 

 

 

할머니 한분이 잠시도 허리를 펴지 않은 채 무엇인가를 심고 있다. 허리를 구부려 일을 하다가 굳어진 허리를 펴기가 얼마나 뻐근하고 힘든 일인가. 그러니 농사꾼은 허리를 펴지 않고 그 자세로 계속 일을 한다. 그렇게 나이들어가면서 꼬부랑 할머니가 된다.

 

 

 

 

 

능선을 이룬 한 모롱이를 넘어서자 멀리 지리산 연봉들이 보인다.

 

 

 

 

 

다랑이논들이 나타나고, 논에는 물을 가득 담아 모내기 준비는 끝났다.

 

 

 

 

 

그리고 다시 산길로 접어든다. 햇살이 사라진 숲은 어둔운데 낙엽 쌓인 길가 언덕에는 고깔제비꽃이 드문드문 아름다운 꽃송이를 피웠다.

 

 

 

 

 

그리고 이곳에서 길을 잃고 20여 분을 헤매었다. 가던 길이 숲속으로 들어서며 사라졌다면서 여자분 셋이 돌아나오고 있다. 설마 싶어 아랑곳 않고 들어섰는데 정말 길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희미한 발자욱 따라 고집스레 한참을 더 들어서서 길을 더듬다 그만 들어왔던 길조차 잃고 한동안 헤맨다.

 

나중에야 사태를 파악하게 된 것이지만 갈림길에서 길 표시가 제대로 되어 있아 잘못 들어선 것이다. 길을 헤맨 사람들이 많은지 들어선 숲에는 사람들이 헤매고 다니면서 만들어진 길 아닌 길의 흔적들이 수없이 남아 있었다.

 

해는 이미 졌는데 그렇게 한참을 헤매다 제대로 길을 찾은 세 여자분들이 우리가 들어선 곳보다는 훨씬 위쪽에서 보내는 소리를 듣고 겨우 길을 찾는다.

 

 

 

어둠이 밀려오는 길, 금계리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바쁘게 걷는다. 어느 사이 숲을 벗어나 들길로 내려서며 멀리 건너편으로 천왕봉과 칠선계곡으로 이어지는 골짜기 아래 마을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런데 왼편으로 흉물스럽게 잘린 산이 보인다. 좀전에 내려오던 산골짜기에 엄청난 규모의 석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던 것이 아마도 저 산에서 잘라낸 바위들이었던 모양이다.

 

나중에야 저것이 검은 화강암으로 유명한 '마천석' 채석장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때 지리산국립공원 바로 앞의 산을 저렇게 흉물스럽게 훼손하여 암석을 일본에 수출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당구대도 만들고 은행카운터나 화학실험대, 백화점 매장 등의 인테리어 건축 자재로 이용되는 고급 암석재이다.

 

 

 

 

 

'나마스테라'는 어느 쉼터의 팻말이 나타나고 금계리가 눈 아래에 펼쳐진다. "내 마음속의 신이 당신 마음 속의 신에게 인사합니다." 참 아름다운 인도말...

 

 

네 시경에 실상사에서 출발하였는데, 이미 일곱 시도 훌쩍 넘어 서 있다. 금계리에서 인월로 가는 버스가 많다고 하였지만 이 시간에도 차편이 있을까...

 

 

 

 

 

어둠에 잠기는 천왕봉과 칠선계곡을 건너다 보며 부지런히 버스 정류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금계리 마을길을 지나는데 길 주변의 집들은 어찌된 일인지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가 대부분이다. 어둠과 정적만이 흐르는 불 켜지지 않은 집들... 댓돌에 신발조차도 보이지 않는 마을집들 풍경에 내 가슴이 휑해진다. 

 

닭 모양을 닮아서 금계라고 했다는 금계리는 원래 이름이 '노디목'이었다고 한다. 내 고향에서는 징검다리를 '노줏돌'이라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노디'라고 하는 모양이다. 칠선계곡의 추성, 의중, 의탄, 의평 등의 마을 사람들이 엄천강 징검다리를 건너는 물목마을인 금계리를 '노디'라고 불렀다고 한다.

 

 

 

 

 

 

정류장에 도착하고 보니 8시경에 함양으로 가는 막차만 남았다. 이미 서울로 가기는 틀렸고 버스를 한참을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마천으로 갔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인월로 향하였다.

 

 

 

 

※ 지리산 둘레길 제3코스 인월-매동 => http://blog.daum.net/kheenn/15855368

 

 

 

 

 

※ 지리산 둘레길 제3코스(인월-금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