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퉁방울 눈에 벙거지 쓴 모습이 정겨운 실상사의 세 돌장승

모산재 2010. 5. 6. 14:35

 

실상사 입구 만수천을 가로지르는 해탈교 양쪽에는 벙거지를 쓰고 퉁방울 눈을 한 해학적인 표정의 돌장승 셋이 세워져 있다. 시골사람들은 이렇게 우두커니 서 있는 장승을 벅수라고 부른다. 장승은 천하대장군, 지하대장군처럼 보통 한 쌍으로 세우지만 이 곳의 장승은 남녀 구분이 되지 않고 모두 모자를 쓴 모습이다.

 

 

원래 돌장승은 만수천 양쪽에 한 쌍씩 모두 4기가 세워져 있었는데, 다리를 건너기 전 오른쪽에 있던 돌장승이 1936년 홍수 때 떠내려 가 버리고 지금은 셋만 남았다. 돌로 만들었기 때문에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장승의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세 돌장승은 중요 민속자료 15호로 지정되어 있다.

 

 

장승은 민간신앙에서 잡귀를 막고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마을 어귀에 세우는데, 이 돌장승을 실상사로 건너가는 강 양쪽에 세웠다는 것은 칠성각이 그러한 것처럼 불교와 민간신앙이 결합한 하나의 양식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세 장승은 비슷한 모습으로 모두 퉁방울 눈에 주먹코를 하고 가슴까지 긴 수염이 자라 있으며 머리에는 벙거지를 썼다. 퉁방울 눈이긴 하지만 초승달 모양으로 깊게 새긴 눈매는 되레 싱긋 웃는 표정이다. 위의 송곳니 두 개가 삐져나오게 하여 험상궂음을 표현하려 하였지만 눈썹처럼 휘어지게 하여 오히려 해학성이 두드러졌다.

 

 

돌장승 몸체에는 각각 옹호금사축귀장군(擁護金沙逐鬼將軍),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 대장군(大將軍)이라는 이름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다.

 

 

 

 

■ <돌장승 하나> 옹호금사축귀장군(擁護金沙逐鬼將軍)

 

 

강을 건너기 전에 서 있는 장승의 이름은 옹호금사축귀장군(擁護金沙逐鬼將軍)이다. 때마침 자목련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싱긋 웃는 장승의 표정을 더욱 밝게 만들고 있다.

 

 

 

 

 

장승은 이름 그대로 '금사강'을 '옹호'하고 '귀신을 쫓는' 장군이다. 그런데 어째서 '금사강'인가.

 

금사강은 저 중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장지앙(長江)의 상류, 험준한 동히말라야의 협곡을 흘러내리는 강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이 돌장승을 세운 이는 섬진강의 상류인 만수천을 '스케일' 있게 금사강에 비유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실상사를 감싸고 도는 만수천을 옹위하고 온갖 귀신들을 내쫓으려는 목적으로 이 장승을 세우고자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옹호금사축귀장군은 세 장승 중 가장 육중한 몸집을 자랑하고 있다. 찌푸린 이마살에 튀어나온 눈, 코는 주먹코이며 송곳니가 길게 뻗어나온 모습이다.

 

 

해탈교를 건너면 길을 사이에 두고 2기의 돌장승이 마주하고 있다. 왼쪽으로 커다란 고목 아래에는 대장군이, 오른쪽으로 들판 논두렁가에는 상원주장군이 서 있다.

 

 

 

 

■ <돌장승 둘>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

 

 

실상사의 상원주장군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대장군과 마주보고 서 있다.

 

상원주장군은 하원당장군과 남녀 짝을 이루는 장승인데 이곳의 장승은 하원당장군 대신 대장군을 마주보고 서 있다. 좌측 장승을 받치는 기단석 기록으로 영조 원년(1725)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상원주장군은 두 눈이 크고 둥글며 툭 튀어나왔고 코가 크며 머리에는 벙거지처럼 생긴 모자를 쓰고 있고, 손은 창을 든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상원(上元)'은 정월 대보름날(음력 1월 15일)을 뜻하고 '주장군(周將軍)'은 중국 주나라의 장군을 나타낸다. 그리고 '하원(下元)'은 음력 4월 보름날 또는 10월 보름날을 뜻하며 '당장군(唐將軍)'은 중국 당나라의 장군을 뜻한다. 장승의 이름을 주장군과 당장군으로 붙인 것은 잡귀를 막기 위해 국위를 떨쳤던 주나라나 당나라의 위세를 빌리고자 한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전라도 지역에는 짝을 이루고 있는 상원주장군과 하원당장군이 널리 분포하고 있다. 부안 서문 안 당산, 보성 해평리, 나주 운흥사, 나주 불회사 등에는 할아버지 장승인 하원당장군과 할머니 장승인 상원주장군이 나란히 서 있다. 대개의 돌장승은 퉁방울 눈과 뭉툭한 코 등 우락부락한 모습이지만, 나주 운흥사의 돌장승은 키가 270cm나 될 정도로 훤칠하고 얼굴도 섬세하게 표현되어 예술성이 빼어나다. 

 

 

 

 

■ <돌장승 셋> 대장군(大將軍)

 

 

대장군은 만수천 뚝방 아름드리 느티나무 아래에 서 있다. 상원주장군과 짝을 이루고 하원당장군이 서 있어야 할 자리에 대장군이 서 있는 것이 기이하다.

 

 

 

 

 

돌이끼가 거의 보이지 않는 점으로 보아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짐작되고, 이름도 그냥 평범하게 대장군으로 붙여 놓았다. 다만 상원주장군과 수염이 반대로 향하고 있어 상원주장군과 대칭적인 한 쌍으로 조각하여 세운 것인 듯하다.

 

 

헐렁한 벙거지에 퉁방울 눈을 하고 선 돌장승의 표정은 바로 우리의 이웃 사람들 모습이다. 300년 전 이 돌장승에 사람의 혼을 새기던 예술가는 함께 숨쉬고 부대끼며 살아가던 이웃 사람들의 표정을 이렇게 돌에다 새겼으리라.

 

 

 

수십 년 전 시인 신경림은 실상사를 찾았다가 이 돌장승에 매혹되었던 모양이다.

 

1985년에 낸 그의 세번째 시집 <달넘세>에는 '실상사의 돌장승 - 지리산에서'란 시가 실려 있다.

 

 

지리산 산자락 허름한 민박집에서 한 나달 묵는 동안 나는 실상사의 돌장승과 동무가 되었다.그는 하늘에 날아올라가 노래의  별을 따다 주기도 하고 물 속에 속꽂이해 들어가 얘기의 조약돌을 주워다 주기도 했다. 헐렁한 벙거지에 퉁방울 눈을 하고 삽십 년 전에 죽은 내 삼촌과 짝이 되어 덧뵈기춤을 추기도 했다.어름산이 시늉으로 다리를 떨며 자벌레처럼 몸을 틀기도 했다. 왜 나는 몰랐을까 그가 누구인가를 몰랐을까. 문득 깨닫고 잠에서 깨어나 달려가 보니 실상사 그 돌장승이 섰던 자리에는 삼촌과 그의 친구들만이 퉁방울눈에 눈물을 그득 담고 서서 지리산 온 산에 깔린 열나흘 달빛에 노래와 얘기의 은가루를 뿌리고 있었다.

 

 

신경림의 또 다른 시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를 떠올리게 하는 못난 얼굴의 돌장승은 언제 보아도 푸근한 우리의 이웃들의 모습이어서 더욱 흥겹다. 실상사 석장승은 시인 신경림의 삼촌의 얼굴이기도 하지만 우리들 삼촌의 얼굴, 그리고 그 누군가의 삼촌이 되는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만수천을 건너는 해탈교. 멀리 오른쪽으로 실상사 전각이 보인다. 다리 입구 왼쪽에 옹호금사축귀장군, 다리를 건너 왼쪽 나무그늘에는 대장군, 오른쪽 논가에는 상원주장군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