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라오스, 베트남

라오스 여행 (12) 루앙프라방, 왓마이· 왕궁박물관· 왓위쑤나랏· 왓아함

모산재 2010. 4. 10. 13:25

 

1월 18일 월요일. 오전

 

 

오늘은 루앙프라방을 떠나 치앙마이로 가는 날, 그래서 6박 7일간 정들었던 라오스와 이별하는 날이다. 김 선생님은 아침 일찍 일어나 탁밧(우리말로는 '탁발')을 보러가고 싶은 눈치였지만 사내들은 새벽잠 설치면서까지 나가고 싶지 않다. 여행을 다녀온 지금에야 나가 볼 걸 그랬어, 하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사원의 도시, 루앙프라방은 엄숙하고 경건한 탁발로 아침을 연다고 한다. 어둠이 가시는 새벽 수십 개의 사원에서 일제히 출발해 거리에 나와 한 바퀴 도는 승려들의 행렬, 거리에서 무릎 끓고 앉아 기다리고 있다가 승려들에게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들을 공양하는 신앙심 깊은 라오사람들, 더러는 그 틈에 끼어 앉아 경건한 의식에 동참하는 관광객들... 지구 어디에도 보기 힘든 이 풍경 속에 서 보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탁밧을 나가지 않았지만 그리 늦게 일어나지는 않있다. 치앙마이로 떠나기 전 어제 미처 보지 못한 사원을 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숙소 앞 야외식탁에서 어제와 마찬가지로 바게트빵과 달걀 프라이, 커피 등으로 가벼운 아침식사를 한다. 식사를 하고 잠시 넓은 정원에 있는 열대 과일나무들을 구경한다.

 

우리 숙소(사바이디 GH)는 정원이 넓어서 온갖 열대과수들이 많다. 바로 식탁 위에서는 키큰 나무에 달린 대추 비슷한  붉은 열매들이 플래스틱 지붕 위로 쾅쾅 요란한 소리를 내며 수시로 떨어져 사람을 놀래키고, 마당 한 구석에 높이 자란 나무는 무성한 잎사귀 속에 붉은 열매들을 감추어 두고 있다.

 

마당에는 단면이 별모양이라 스타 프룻(Star Fruit)이라고 하는 열대 과일 막 푸앙이 풍선처럼 달렸고, 감자 모양의 라뭇이란 열매도 가지가 휘도록 주렁주렁 달렸다. 라뭇은 영명으로 사포딜라. 삭힌 감맛이 나는 과일이라 지난밤 맥주 안주감으로 몇 개를 땄다가 아주 낭패를 당하기도 했다. 손바닥에 까맣게 쩍쩍 달라 붙는 타닌을 불사하고 깎았더니 독하게 떫어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것이다.

 

▼ 막 푸앙. 영명으로 스타프룻(Star Fruit)

 

 

▼ 라뭇. 영명으로는 사포딜라(Sapodilla).

끈적한 수액을 치클이라 하여 껌의 원료로 쓴다. 살라카와도 비슷하다.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산책을 하고 있을 때에 관리인이 마당 구석에 있는 큰 나무의 열매와 막푸앙(스타 프룻)을 따서 식탁 위에 올려 놓았다. 키큰나무의 이 열매가 혹시 막 지앙이라는 것일까. 영명으로 Malay Apple 아닐까 싶은데 Milk Fruit으로 불리는 것과 같은 것인지 유사한 것인지...

 

 

 

푸씨산의 남쪽에 있는 왓 위쑤나랏과 왓 아함을 먼저 돌아보기로 하고 숙소를 나섰다. 숙소 앞에는 왓 마노롬이 있고, 왓 마노롬을 돌아 서쪽으로 한 블록만 더 가면 왕실 유해를 모신 왕실사원 왓 탓루앙이 있지만 돌아볼 시간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 

 

▼ 숙소 부근에 핀 가지과의 꽃. 도깨비가지와 닮았지만 꽃색이 다르고 가시가 없다.

 

 

 

● 왓 위쑤나랏(Wat Visunalat),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오래된 고즈넉한 절

 

숙소에서 남쪽으로 한 블록을 내려가 큰길을 따라 동쪽으로 10여 분쯤 걸어가니 푸씨산을 배경으로 위쑤나랏 사원이 나타난다. 칸강이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푸씨산의 동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이 절은 왓 위쑨(Wat Visoun)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다. 

 

절 입구, 보리수(반얀나무) 아래에 명상에 잠긴 불상이 눈길을 끈다. 그 아래 머리카락을 앞으로 늘어뜨린 조각상은 석가의 전생인 선혜(?)를 표현한 것일까. 연등불이 찾아왔을 때 진 땅을 밟지 않도록 무릎을 꿇고 머리를 풀어 연등불이 밟고 지나도록 했다는 선혜. 

 

▼ 보리수에는 어제 메콩강에서 보았던 박쥐란이 자라고 있어 눈길을 끈다.

 

 

 

▼ 문에 새겨진 화려한 장식의 조각

 

 

  

1503년에 위쑤나랏(Visunarath) 왕이 자신의 이름을 따 사원을 짓게 했으며, 1513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지금 있는 본당은 1896년 중국 흑기군들이 루앙프라방으로 쳐들어와 약탈할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재건한 것이다. 본당 건물은 당초 목재와 벽돌과 흙으로로 지어진 건물이었으나 현재의 석조건물로 개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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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기군(黑旗軍)은 19세기 말 청나라의 무장세력으로 태평천국의 천지회(天地會) 잔당이 칠성흑기(七星黑旗)를 세우고 활동하여 얻은 이름이다. 처음에는 청의 통치에 저항하다가 청군의 공격을 피하여 베트남으로 이동했다. 완조(阮朝)에 협력하였고 베트남 지역으로 침략한 프랑스군과  싸워 많은 승리를 거뒀다. 이  흑기군이 루앙프라방으로 들어와 왓 씨앙통을 제외한 사원들을 거의 파괴하였다고 한다.

  

사원의 규모는 크지 않으나 널찍한 정원이 고즈넉하고 차분한 느낌이 든다. 루앙프라방의 여느 사원과는 달리 지붕의 처마가 비교적 높고, 벽과 기둥이 별다른 장식이 없이 하얗게 칠해져 있어 이색적으로 느껴진다.(왓 탓루앙도 비슷하긴 하다.) 사원이 아니라 박물관이 아닐까 싶은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본당(씸) 내부에는 비를 기원하는 불상 등 다양한 불상이 박물관처럼 전시되어 있다고 하는데, 시간에 쫓긴 우리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문 입구에서 일별하고 그냥 지나치고 만다.

 

 

 

뜰안 본당 맞은편에는 거대한 반구형 불탑이 세워져 있다. 불탑의 이름은 탓 파툼(That Pathoum)으로 그 뜻은 '위대한 연꽃탑'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유골 중 일부가 들어 있는 신성한 탑이어서 붙여진 명칭인 듯하다. 1415년, 1515년에 걸쳐 만들어진 이 탑은 동그란 모양 때문에 '수박  탑'이라는 뜻인 '탓 막모(That Mak Mo)'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고 한다.

 

이러한 형태의 불탑은 라오스는 물론 인도차이나 지역에서 유일한 것이라고 하는데, 리랑카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왓 아함(Wat Aham), 보리수 그늘에 잠긴 평화롭고 아담한 절

 

왓 위쑤나랏에서 계속 동쪽으로 이동하면 작은 문을 통하여 왓 아함과 연결되어 있다.

 

동쪽으로 도로를 하나 건너면 칸강이 이어지는 아함 사원은 본당이 작고 아담하며 앞마당에는 두 개의 탑이 지키고 서 있는 소박한 절이다. 다만 동쪽문 주변 담장 앞에 아름드리 보리수가 넓고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어 사원은 적요의 평화로움 속에 잠기는 듯하다.

  

 

▼ 본당 입구의 원색 벽화 

 

 

 

뜰의 한쪽에는 또 다른 작은 탑들이 서 있다. 

 

 

 

아함 사원 뒤를 돌아서 푸씨산을 끼고 큰길을 따라 왕궁박물관으로 향한다. 아직 시간이 좀 남아 있으니 왓 마이와 왕궁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다. 푸씨산이 끝나고 다시 북쪽으로 꺾어지는 모퉁이에 루앙프라방 전통시장인 탈랏 달라 (Talat Dala) 시장이 있다.  

 

 

● 왓 마이(Wat Mai), 독특한 본당 출입문 양식과 찬란한 금빛 부조와 기둥 문양

 

흘러내릴 듯한 5겹지붕이 먼저 눈에 띄는데, 특이한 점은 본당의 전면과 후면에 맞배지붕의 일자건물을 가로로 붙여 세워 출입구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출입문의 격을 높여 사원의 존엄을 표현한 형식이 아닌가 생각한다. 전통적인 루앙프라방 양식과 순수 라오스 디자인이 잘 나타나 있는 사원이라고 하는데, 본 것이 많지 않은 여행자는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독특한 건축 양식이다.

 

18세기 후반에서 시작하여 19세가 초반까지 70년이 걸려  완성하였으며, 1821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한 뒤 '새로운 절'이라는 뜻의 왓마이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라오스 최고승으로 추앙 받았던 큰스님 프라 쌍카라즈(Phra Sangkharaj)가 머물렀던 것으로 유명한사원이다.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황금불상 프라방(파방)이 1894년까지 이곳에 보관되었다가 지금은 가까이 있는 국립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특히 라오스 설에는 프라방을 이곳으로 옮겨서 향수와 꽃을 탄 물로 파방을 씻으면서 소원을 비는 행사를 벌인다고 한다. 

 

▼ 왓 마이 정문 입구쪽. 맞배지붕의 일자건물로 출입문의 격을 높인 듯하다.

 

 

▼ 안쪽 모서리에서 본 사원. 4겹의 지붕이 급하게 흘러내리다가 마지막지붕에서 넓고 완만해지게 처리한 지붕이인상적이다.

 

 

▼  사원의 뒷모습

 

 

 

나는 지붕을 특이하다면서 열심히 보았지만 사람들이 가장 눈여겨보는 것은 아마도 본당 입구의 화려한 기둥과 회랑 벽의 부조 벽화가 아닐까 싶다. 왓 씨앙통이 불당 외벽의 모자이크 장식으로 유명하다면 ,왓 마이는 본당 입구의 금빛 찬란한 기둥 문양과 벽화로 왓씨앙통과 쌍벽을 이룰 만하다. 

 

 

▼ 정면 출입구의 일자형 건물 기둥은 금빛 찬란한 사방연속무늬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지붕 처마 끝에는 나가상이 보인다.

 

 

본당 입구의 벽은 얕은돋을새김(바스릴리프)으로 루앙프라방의 일상생활이 조각되어 있는데, 금칠로 마감하여 화려함을 뽐내고 있다.

 

 

▼ 본당 입구 정면  

 

 

 

▼ 본존불, 눈을 감고 있는 왓 씨앙통의 불상과는 달리 눈을 뜨고 중생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오른쪽 아래에는 등신불이 있어 눈길을 끈다. 

 

 

 

왓 마이 사원 뒷뜰에는 좌불상과 입불상이 늘어서 있다. 이곳의 불상들은 광배가 없는 점이 우리와는 다른 특징이다. 대신 불상들 위로 양산이 받쳐 주고 있는데 맨 앞쪽의 불상는 나가상이 주형광배(舟形光背, 전신광배와 머리광배가 합쳐진 이중광배의 하나)처럼 불상을 수호하고 있다.

 

나가는 원래 대지의 보물을 지키는 힌두의 반신이지만 불교에서도 수용되어 경전을 수호하는 물의 신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용왕 중 하나인 무칠린다는 태풍이 부는 동안 똬리를 틀어 고타마를 에워싸고 목 부분을 넓게 펴서 명상에 든 붓다가 비를 맞지 않도록 보호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양식이 아닐까 싶다.

 

 

▼ 본당 앞마당 끝에 놓여 있는 불탑, 탑묘(?, 불당?). 얕은 담장 너머로 보이는 건물은 옛 왕궁인 왕궁박물관의 부속건물이다.

 

 

 

왓 마이에서 나와 왕궁박물관으로 가다가 다시 조기영씨를 만난다. 고민정씨가 박물관을 돌아보는 사이에 쉬고 있는 모양이다. 토종이라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이라고 웃는다.

 

어제 일몰을 보고 내려 올 때 숲에서 보았던 난초를 찍으러 푸씨산 중턱으로 오른다. 심심했던지 조기영씨도 따른다. 그런데 매표소에서 말레이 국적의 화교 네 자매를 또 만난다.

 

 

비스듬히 굽어진 나무 줄기 위에 뿌리를 붙이고 하얀 꽃을 피운 난초, 숲으로 비쳐드는 햇살을 받아 아름답다.

 

  

 

● 왕궁박물관(Haw Kham)과 라오스의 상징 황금불상

  

다시 내려와 왕궁박물관 정문으로 들어선다. 내부 구역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아서 씨사왕웡의 동상과 맞은 편에 아직도 짓고 있는 호 파방 건물 사진이나 찍고선 밖에서 빈둥거리며 쉰다.

 

다만 조기영씨가 이 절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황금불상인 파방(프라방)을 볼 수 있다고 하여 박물관 동쪽 테라스로 가서 실내에 모셔 놓은 불상을 창을 통하여 구경한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아쉽다. 이 황금불상을 모시기 위해 정문 부근에 몇 년째 짓고 있는 건물이 있다.

 

 왕궁 박물관은 원래 씨사왕웡 왕가의 왕궁으로 메콩강변에 건설된 것이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씨사왕웡 왕이 1904년에 짓기 시작해 20년 걸려 완공됐다. 유럽 양식에 라오 양식을 혼합하였는데 프랑스의 식민지 지배에 적합한 양식으로 건축된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십자형의 평면 배치는 크메르의 구조를 따르고 있다.

라오스의 마지막 왕 일가가 지내다가  1975년 사회주의 혁명 이후  왕과 그의 가족은 북부 라오스로 유배되었고, 왕궁은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전날 푸씨산을 오르며 내려다 본 왕궁박물관. 정문 앞으로 야시장이 들어서고 있다.

 

 

     
왕궁 박물관 내부는 왕의 접견실, 왕좌, 왕과 왕비의 침실, 도서관, 응접실, 왕실 음악 전시품, 왕실 초상화, 외교사절로부터 받은 기념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사방 바타나왕의 개인 소유물 중에는 마로로부터 받은 찻잔, 린든 존슨으로 부터 받은 메달, 아폴로 우주선에 실려 달까지 가져간 라오스 국기들이 있다.

 

개관시간이 오전 8시-11시 30분, 그리고 2시간의 점심시간은 쉬었다가 오후 13시 30분-16시이다. 3시 30분에 입장해야 하니 유의해야 한다. 그리고 화요일은 쉰다고 한다.

 

 

 

  

박물관 앞마당 서쪽에는 씨사왕웡 왕의 거대한 동상이 서 있다. 몸집이 대단히 비대한 모습이다. 왓 씨앙통의 홍 낍 미엔에 보관하고 있는 왕실 운구차로 장례를 치렀다고 하며, 유해는 지금 왓 탓루앙의 탑 안에 안치되어 있다.

 

 

 

정문을 들어서면 오른족에 황금불상인 파방을 모시기 위한 사원, 호 파방(Ho Phra Bang)을 지었으나 아직 박물관 내에 있는 옮겨 놓지 않았다. 이미 완성된 건물인 줄 알았는데 비계(나무 사다리)를 가득 설치해 놓았다.

 

45kg의 황금불상은 11세기 스리랑카에서 들어와 왓 마이에서 보관해 왔는데 태국 왕조인 시암에서 두 차례 약탈해 갔다가 1867년 다시 라오스로 돌아왔다. 그리고 1894년 이후 왕궁박물관에서 보관해 오고 있던 것인데,  앞으로 이 건물에 모시게 된다고 한다.

 

 

 

 

왕궁박물관을 나오는데 몽족시장 앞에서 민수 모자를 또 만난다. 오늘 사이공으로 떠날 것이라며 설날에 만나자 인사하고 손을 흔든다.

 

몽족 시장에서 남은 라오 화폐로 간단한 기념품을 산다. 모두 정성을 바쳐 수제로 만든 물건들, 예쁘고 값이 싸다. 물건을 만든 사람들의 모습이 느껴진다. 물건을 고르고 있는 관광객을 그저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는 상인들의 순박한 모습...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겨들고 미리 대기시켜 놓은 썽테우를 타고 공항으로 향한다. 네 사람에 7만낍이니 만원이 좀 안 되는 비용이다. 씨사왕웡교를 건너 10여 분만에 도착한다. 

 

 

비행기는 오후 1시 20분 경 치앙마이를 향해 이룩하였다.

 

▼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루앙프라방 시내 풍경. 넓은 메콩강과 칸강 사이에 아담한 푸씨산이 보인다.

 

 

▼ 위의 장면 바로 아래쪽으로 이어지는 메콩강 풍경 

 

 

 

▼ 들판이라고는 없고 높은 산줄기만 끝없이 이어진다. 그 사이로 메콩강은 흐른다.

 

 

 

이렇게 해서 루앙프라방에서의 일정, 아니 라오스에서의 여행은 모두 끝나게 되었다. 이제 또 다시 라오스를 찾게 될까. 만약에 다시 라오스를 찾게 된다면 관광객들이 득실대는 곳이 아니라 한적한 시골마을만 골라서 가고 싶다. 라오스의 원형을 그대로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