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라오스, 베트남

라오스 여행 (11) 왓 농, 왓 씨앙무안, 왓 춤콩, 푸씨산의 일몰

모산재 2010. 4. 9. 14:09

 

1월 17일 일요일 오후 

 

 

왓 씨앙통을 나온 우리는 부지런히 왓 마이를 향해 걷는다. 왕궁박물관은 관람 가능 시간이 오후 네시이니 이미 늦었다. 씨사왕웡길과 메콩강 사이, 길게 이어지는 길은 루앙프라방의 사원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는 '사원의 길'이나 다름없다. 

 

란쌍왕국의 왕도로 800년 영화를 누려온 루앙프라방은 라오스의 경주라 할 만한 도시이다. 인구 5만 남짓한 작은 도시이지만 한때 66개 사원이 있었고 지금도 32개의 사원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 중 많은 사원들이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을 따라 자리잡고 있다. 

   

서둘러 길을 재촉하다 보니 바로 왓 씨앙통 앞에 있다는 왓 쌘과 왓 쏩은 발견하지도 못하고 지나쳐 버렸다. 안내도에는 나와 있는 사원인데 왜 안 보였나 했는데 두 사원의 본당이 길가로부터 멀리 있었던 모양이다.

 

시간에 쫓겨 눈에 띄는 사원들을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얼른 둘러 보고 사진 한두 장 찍고 황급히 돌아나오자니 참 민망스럽다.

 

 

담장이 수레바퀴 모양의 법륜으로 장식되어 있는 사원이 나타나는데, 확인해 보니 왓 농(Wat Nong)이다. 스투파의 사방에 감실을 만들고 작은 부처를 모셔 놓았다. 본당 입구로 오르는 계단의 난간에 화려하게 장식해 놓은 금빛 나가상이 눈에 띄었지만 보이는 대로 사진만 찍고 그냥 지나쳐 간다.

 

 

 

 

왓 농을 지나서 너른 마당 한쪽에 커다란 입불상을 모신 불당이 나타난다. 왓 빠파이(Wat Pa Phai)인데 마음이 바빠 그냥 지나친다.

 

 

다음에 만난 사원은 아침에 빡우동굴 트레킹 출발하기 전에 왓 춤콩으로 들어와서 멀찍이서 바라보고 돌아섰던 절이다. 이름은 왓 씨앙무안(Wat Xieng Muan). 멀리서 보기에도 전면의 채색 유리(?) 장식이 아름답다. 

 

작은 사원이지만 사원 건축, 조각, 벽화 등을 교육하는 사원이라고 한다. 루앙프라방의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1879년에 완성된 사원이라 한다. 

 

 

 

왓 씨앙무안의 안쪽으로 들어서면  왓 춤콩(Wat Chum Khong)과 이어진다.(어떤 책에는 Chom Khong으로 되어 있다.) 

 

입구 양쪽에 서 있는 낯선 중국풍 인물상이 유난히 눈에 띈다. 아침에 사원 전경을 찍어 둔 것이 있어서 입구의 인물상만 담아 보았다. 이런 인물상은 라오스의 다른 사원에서는 보지 못한 독특한 것인데, 방콕의 사원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싶다.

 

 

 

 

푸씨산 앞쪽에 이르니 도로(씨사왕웡길)는 차단되고 야시장이 하나 둘씩 서기 시작한다. 상인들이 각자 자신들의 천막을 싣고 와서 정해진 자리에 설치한다.

 

이 길은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큰길이라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차단해도 문제가 없는 것일까.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루앙프라방에는 버스도 트럭도 다니지 않는다. 소형차 아니면 툭툭이들과 오토바이 종류의 탈 것들만 보일 뿐. 현대 도시들과는 많이 다른 이런 풍경 때문에 여행자들이 루앙프라방을 좋아하는 것은 아닌지...

 

 

 

일몰 시간이 가까워졌다. 왓 마이는 대충 보고, 이미 늦어버린 왕궁박물관은 바깥에서 대강 구경하고 지나친다. 일몰을 보기 위해 우리는 푸씨산으로 오르는 계단길로 바쁘게 발길을 옮긴다. 푸씨산은 왕궁박물관 바로 앞에 산이라기보다는 높은 언덕처럼 아담하게 솟아 있다.   

   

 

▼ 왓 마이  

 

 

 

▼ 푸씨산을 오르는 계단길에서 내려다본 왕궁박물관

 

 

   

푸씨산은 낮은 산이지만 메콩강과 칸강을 끼고 있는 분지 지형인 루앙프라방의 중심에 우뚝 솟아 있어 이곳 라오인들에게는 정신적인 중심이 되는 신성한 언덕이다. 루앙프라방의 수미산이라고 할 만한데, 그를 상징하듯이 정상에는 루앙프라방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황금색 탑이 우뚝 솟아 있다.

 

정상까지 오르는 내내 계단이 이어지는데 모두 328개라고 한다. 일몰을 보려고 계단을 오르는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다. 중턱에 오르면 입장료를 받는다. 1만낍이니 우리돈으로 천 사백원쯤 된다. 정상에서 여유롭게 머물고 싶다면 이곳에서 화장실을 미리 이용하는 것도 좋겠다.

 

 

그리 높지 않은 언덕이라 쉬엄쉬엄 걸어도 10분이면 오를 수 있다. 길 주변 숲속에는 이 나라 국화인 참파나무(플루메리아)가 흔히 보인다. 정상은 몰려든 관광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비고 있다.

 

 

'루앙프라방의 수미산'을 떠올리게 하는 푸씨산 정상의 이 불탑은 탓 촘시(That Chomsi)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1804년에 지어졌다고 하는데 높이가 24m인지 28m인지 자료마다 다르다. 이 불탑 뒤에는 작은 동굴에 불상을 모신 왓 탐 푸시(Wat Tham Phu Si) 가 있다. 사원이 영험하여 보름날 많은 순례객이 찾아온다고 한다.

  

 

 

4월 15일에 열리는 라오스 신년 행사인 '삐 마이 라오'의 행렬이 이곳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조망하기 가장 좋은 곳은 정상의 서쪽인데, 루앙프라방의 시내를 사방으로 볼 수 있고 메콩강은 물론 멀리 루앙프라방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도 그림처럼 펼쳐진다. 

 

사방을 돌아보며 느껴지는 루랑프라방의 인상은 평화로움이다. 높은 건물은 없고 아담한 낮은 건물들은 푸른 숲속에 포근히 안겨 있다. 곳곳에 사원이 깃들어 있고 욕심 없는 맑은 마음들이 머물고 있다.

 

황금 불상의 도시의 한가운데에 솟은 푸씨산도 라오인들의 불심으로 가득차 있는 듯하다. 부처님이 순례 중에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셨다고 하는 전설이 있고 푸씨산 너머에는 추처님 발자국 유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북서 방향. 야시장 입구 사거리의 큰길이 매콩강으로 이어지고 있다.  

 

 

  

▼ 남동 방향. 멀리 씨사왕웡교가 보인다. 공항을 가려면 건너는 다리이다.

 

   

 

 

▼ 남서 방향. 오른쪽 아래 달랏시장. 여기저기 연기가 피어나는 풍경조차 아릿하게 정겹다.

 

 

 

메콩강 너머로 일몰이 시작되었다.

 

왕위앙에서 보았던 일몰과는 또다른 일몰. 캄보디아 프농바껭의 일몰은 어떠했던가...

 

 

  

   

 

  

 

어느 여자분이 곁에 와서 아는 체한다. 사람 보는 눈썰미가 없어 누군지 떠올리지 못하고 뻘쭘해하는데, 알고보니 왕위앙에서 인사를 나누었던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돌아보니 일행 네 분이 다 있다. 말없이 헤어졌다가 이렇게 우연히 만난다.

 

그리고 또 말없이 헤어진다. 여행에서의 만남은 그런 것이다.

 

 

해는 서산 너머로 지고 하늘엔 황혼이 더욱 붉게 타오른다.

 

 

 

 

 

일몰이 끝나고 어둠이 내리는 푸씨산을 내려선다.

 

중턱에서 한 사람이 숲을 향하여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다. 보니 어느 나무에 붙어서 자란 난초가 하얀 꽃을 피웠다. 나도 지나치지 못하고 사진을 여러 컷 찍었는데 어둠 속 사진이 제대로 찍힐 리가 있을까.

 

이 사진은 다음날 다시 왕궁박물관을 찾았을 때 다시 이곳을 찾아 찍은 것이다.

 

 

 

 

저녁을 먹으러 우리는 다시 야시장으로 들어서다가 뜻밖에 고민정, 조기영 부부를 만난다. 반갑게 인사하고 저녁 먹을 곳을 물어서 엊저녁 우리가 먹었던 노천식당을 소개해 준다.

 

그리고 먹자골목을 들어서는데 그곳에서 국수를 먹고 있는 종제수와 민수 모자를 마주친다. 작은 도시이니 왔다갔다 하다보면 사람들을 다 마주치는 것이다. 그곳에서 식사를 할까 하다가 산만한 분위기가 걸려서 다시 어제 먹던 노천식당으로 와서 저녁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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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불상의 도시, 루앙프라방

 

메콩 강의 항구도시로, 라오스 수도인 위앙짠(비엔티안)에서 210㎞ 북북서쪽에 있다. 식민지를 경험한 동남아시아의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루앙프라방은 전통적인 도시구조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면서 왕실 및 사원 건축, 도시 및 농촌 건축, 전통 건축 양식과 프랑스 식민지시대의 건축물이 독특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점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도시 전체가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과거에 라오스 불교문화의 중심지이자 왕도로서 영화를 누려왔지만 루앙프라방은 현대 산업이 발달하지 못하고 인구 46,000 명(1975) 정도의 비교적 작은 마을로 남아 있다. 1975년 공산화되기 전까지 왕족의 보호 아래 칠기, 금·은세공품 등을 계속 만들었다. 상업은 거의 인도와 중국 소수 민족이 맡고 있다.  
 

도시 주변지역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메마른 지역에 속한다. 이 지역 주민의 절반 가량이 골짜기에 살면서 옥수수·쌀을 재배하고 가축을 기르는 라오족이다. 고지에는 라오텡(라오테웅:산악 몬크메르족)족에 속하는 크무족이 주로 살며, 가장 높은 지역에는 메오(먀오 또는 몽)족이 산다.

 

루앙프라방이 처음으로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300여 년 전인 698년으로 당시의 명칭은 무앙수아(Muang Sua)였다. 이후 씨앙통(Xieng Thong)이란 명칭으로 란쌍(백만 마리의 코끼리)왕국의 수도였으며,  1563년경 왕궁이 비엔티안으로 옮겨가고 1356년 스리랑카에서 이 도시로 옮겨 온 황금불상인 프라방을 기려 루앙프라방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17세기말부터 라오스의 국력은 급격히 약화되었고 1707년 란쌍이 루앙프라방, 위앙짠, 참파삭 등 세개의 나라로 분할될 때 루앙프라방은 태국의 영향력 아래 있었으며, 19세기 말에는 프랑스의 지배가 시작되었으며 1946~47년 라오스가 재편될 때 루앙프라방 왕국은 분단되었다. 루앙프라방은 라오스의 왕도 겸 종교 중심지로 남았지만 행정수도는 위앙짠(비엔티안)이 되었다.

    

'프라방'이라는 불상은 란쌍왕국을 수립한 파응움(Fa Ngum) 왕이 아내의 나라인 크메르로부터 가지고 온 키 86센티미터의 황금불상이다. 1316년 루앙프라방에서 태어난 파응움은 그의 아버지가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가족들과 함께 인도차이나의 최강국 크메르 제국으로 도망쳤다. 크메르 왕궁에서 자란 파응움은 이후 크메르의 공주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

 

크메르 군대의 지원을 받은 파굼은 1350년 경 메콩 강 중류에 있었던 라오족의 왕국들을 차례로 멸망시켰고, 1353년 란쌍 왕국을 세워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란쌍'은 '백만 마리의 코끼리' 라는 뜻이다. 무앙수아에 수도를 정하고 란쌍 왕국을 통치하던 파응움은 크메르 제국이 쇠약해지는 틈을 타서 자신의 왕국을 크메르로부터 독립시켰다. 이때부터 란쌍은 라오스 역사상 최초의 통일 왕국으로서 역사를 이어가게 되었다.

왕국의 수도인 무앙수아는 몇 년만에 이름이 루앙프라방으로 바뀌게 되는데, 그 배경에는 실론에서 만들어진 황금불상이 있었다. 황금불상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는데, 다만 1356년 실론에서 무앙수아로 옮겨졌고 이 때부터 프라방은 왕국의 수호불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와 함께 수도의 이름도 무앙수아에서 '위대한 황금불상'이라는 뜻을 지닌 '루앙프라방'으로 바뀌었다.

 

이 부처상은 마치 태국의 에메랄드 불상이 태국의 수호상(팔라디움)인 것처럼 금세기초에 이르기까지 라오스 왕실의 팔라디움으로 역할을 해왔으나, 그 진품을 라오스 정부가 구 소련 정부에 선물로 준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동으로 만든 모사품이 한때 왕궁이었던 국립박물관 한켠에 전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