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라오스, 베트남

라오스 여행 (10) 루앙프라방, 라오스 최고의 사원 왓 씨앙통

모산재 2010. 4. 8. 15:17

 

1월 17일 일요일, 오후 

 

 

빡우동굴을 다녀온 길로 외국인의 거리라고도 하는 씨사왕웡길로 들어선다. 점심 먹을 만한 식당을 찾아 푸씨산 서쪽 거리를 돌아보는데 어느 새 왔는지 파키스탄 청년이 한 식당에서 자리를 잡고 홀로 점심을 먹고 있다.

 

쌀국수를 먹자고 하여 길거리를 잠시 돌다가 결국 칸 강가로 나가기로 한다. 마침 강변 언덕 위에 야외식탁을 만들어 둔 식당이 있어 자리에 앉는다. 다행히 야채쌀국수 메뉴가 있다.

 

한낮의 태양이 내리쬐는 칸강은 메콩강과 달리 맑다. 티벳에서, 동히말라야 설산을 거쳐 오는 메콩은 탁하지만 라오스내의 메콩강 지류들은 빡우에서 보았던 우강이나 왕위앙에서 보았던 솜강처럼 맑은 것이다.

 

칸강에도 대나무 다리가 놓여 있다. 특유의 간결한 재질 때문에 대나무다리가 놓인 풍경은 산뜻하고 경쾌하다. 상류로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공항가는 도로가 있어 콘크리트 다리가 놓여 있긴 하지만, 그런 길이 아니면 모두 전통적인 대나무다리가 굳건히 지키고 있다는 것이 여행자에겐 썩 기분 좋은 일이다. 

 

 

 

 

아까 메콩에서 도장 이름 때문에 혼란을 겪은 이 선생님은 또 이곳에서 도장을 확인하고 있다. 야외식탁 담당 관리인은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도장을 건네받고서는 <서커하이>라고 읽는다. 글자가 이상하기는 하지만 그게 맞다고 한다. 무슨 뜻이야 했더니 'hope' 또는 'wish'를 의미한다고 한다.

 

우린 다시 한번 더 박장대소를 한다. <이무○>이란 이름이 <소소하이>로, 다시 <서커하이>로... 확인된 것은 왕위앙 도장가게 주인이 사람 이름을 판 게 아니라 그냥 부적 같은 글씨를 판 것이라는 것.

 

 

어쨌거나 야채국수를 맛나게 먹고난 다음 칸강 하구쪽을 돌아 사원 순례에 나섰다. 이미 시간이 세시 반이 가까워지고 있어 마음이 바빠진다. 내일은 치앙마이로 떠나야 하기 때문에 오늘 오후에 씨사왕웡길 주변의 주요 유적지는 돌아보아야 한다.

 

▼ 칸강이 매콩강과 만나는 하구. 하구는 바위들이 울처럼 둘러 서 있어 답답해 보인다. 

 

 

 

씨사왕웡길의 동쪽 끝부터 순례하기로 하고 먼저 우리가 찾은 곳은 왓 씨앙통(Wat XiengThong)이다. 메콩강 언덕으로 나 있는 넓은 계단에서 오르면 바로 왓 씨앙통 정문이 있다.

  

라오스  최고의 사원이라고 하는 왓 씨앙통은 바로 메콩강과 칸강이 합류하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메콩강과 지류인 칸강 사이로 나 있는 지형은 마치 엄지 모양의 반도를 이루고 있는데 그 끝부분에 씨앙통 사원이 있다.

 

메콩강으로 이어지는 언덕 위에 우뚝 솟아 있어 메콩강은 물론 칸강을 굽어보는 전망이 멋지고 오래된 목조 건물과 아름다운 불당이 어울린 고즈넉한 사원의 분위기가 편안하다.

 

▼ 본당 앞마당의 탑들

 

  

 

 

땅에 닿을 듯 급경사를 이루는 세 겹 지붕의 처마가 눈길을 끄는데, 비엔티엔의 사원이나 나중에 보게 되는 치앙마이의 사원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다. 불경스럽게도 나는 텐트의 플라이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넓은 지붕으로 벽이 낮아지니 채광성이 나빠져 본당 내부는 매우 어둡다.

 

비엔티엔의 사원들이 대개 그랬듯이 왓 씨앙통도 1559년 세타티랏왕에 의해 지어졌다고 한다. 그로부터왓 시엥통은 왕이 되기 전 수행하던 사찰로 기능하여 왔으며  1975년까지 왕실의 후원을 받으며 유지되어 왔다고 한다. 19세기말 루앙프라방에 중국 흑기군의 침략이 있었지만 이곳은 약탈을 면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승려가 많은 사원이기도 하다.

 

 

  

'씨앙통'은 란쌍왕국의 수도였던 루앙프라방의 옛 이름으로 '황금으로 된 도시'를 뜻한다고 한다. 왕실사원의 존엄을 상징하듯 사원 곳곳에서 금으로 장식된 모습이 눈에 많이 띈다.

 

 

 

용마루 가운데에 금빛 찬란한 불탑이 장식되어 있는데, 이를 독 소 파(Dok So Fa)라고 한다. 우주의 중심 수미산을 상징하는 이 탑은 씨앙통이 바로 존엄한 왕실사원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 본당 전면. 금빛 장식이 화려하다. 커다란 법륜이 여럿 표현되어 있다.

 

 

 

▼ 본당 입구 벽, 벽화 장식이 화려하다.

 

 

 

▼ 웅장하면서도 화려한 기둥, 그 안쪽에 본존불을 모시고 있어 더욱 위엄 있어 보인다.

 

 

 

▼ 눈을 살짝 감고 명상에 잠겨 있는 석가모니불의 얼굴에는 적멸의 평화로움이 깃들고 있다.  

 

 

   

본당(씸) 내부에는 금빛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인도의 고대 서사시 '라마야나'와 부처의 생애를 담은 자타카(Jataka, 본생경)를 소재로 삼은 것이라고 한다.

 

본당 외벽과 기둥, 문 등은 검정과 금색으로 색을 단순화하여 사원의 엄숙함을 더했다. 그러나 문양의 화려함과 정교함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 문과 문 양쪽에 새겨진 압사라상이 화려함의 극치이다. 문 위쪽의 장식 문양은 정교하기 이를 데 없다.

 

 

 

 

본당 뒤쪽의 벽에는 '생명의 나무'라는 벽화가 화려한 모자이크 장식으로 그려져 있어 사람들의 발길을 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모자이크로 장식한 두 개의 불당이 있다. 그 중 왼쪽에 있는 불당은 와불을 모시고 있다. 1957년 석가 탄생 2500년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라고 한다. 

 

▼ 맨 오른쪽 불당은 벽이 붉은 색을 띠고 있어 '붉은 불당'으로도 불린다. 화려한 모자이크 벽화로 사람들을 붙든다.

 

 

 

▼ 독특한 모습의 불당 내부. 안쪽 침대에 있는 와불상은 금빛이 아니라 어두운 색으로 되어 있어 주의해 보지 않으면 지나치게 된다. 

 

 

 

▼ 본당(씸) 뒤의 외벽에 모자이크로 장식된 '생명의 나무' 

 

 

 

▼ 붉은 불당의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모자이크 벽화. 라오인들의 일상생활 모습이 표현되었는데 소박하면서도 평화롭다.

 

 

 

▼ 지붕을 받치고 있는 금색 구조물은 나가상으로 장식되어 있다.

 

 

  

본당(씸)의 너른 마당을 건너 오른쪽 앞에는 황금색 건물이 눈에 띈다. 홍 껩  미엔으로 불리는 이 건물은 왕실의 영구차를 보관한 곳이다. 벽 면 금색의 조각이 아주 정교하다

 

 

 

금빛 찬란한 전면 외벽의 부조상들에도 라마야나의 흔적인 듯 원숭이 장군 하누만으로 보이는 조각상이 새겨져 있다.  

 

 

 

 

일곱 개의 머리를 가진 나가상이 기본 컨셉으로 된 영구차는 높이가 12m나 된다고 하는데 건물 내부의 천정에 닿아 있다. 이 장례용 마차로 씨사왕웡왕의 운구를 운반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건물은 사방이 벽으로 막혀 있고 문은 저리 작으니, 아마도 먼저 영구차를 영구보관용으로 두고서 건물을 지은 것일까.

 

 

 

 

 

건물 내부 벽은 다양한 형상의 모자이크 벽화로 장식해 놓았다.

 

 

 

 

불상들도 늘어서 있지만 생략한다.

 

 

그리고 건물 외벽을 장식하는 화려한 부조들. 일부는 라마야나와 관련 있는 내용이 아닐까 막연히 짐작되지만 내용을 알 수 없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원의 예술을 제대로 알 수 있는 자료를 접할 수 없는 게 현재 라오스의 현실이다.

 

다음은 건물 좌우 모두 8개의 부조상을 모두 담아 본 것이다.

 

 

 

 

 

 

 

 

 

 

 

  

더보기

힌두 대서사시, <라마야나>

 

라마야나(Ramayana)는 '라마의 여정'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로 마하바라타와 쌍벽을 이루는 인도의 대서사시이다. 지(智)·인(仁)·용(勇)을 갖춘 코살라 왕국의 왕자인 라마가 마왕 라바나에게 빼앗긴 부인 시타(Sita)를 도로 빼앗아 오는 모험무용담이다. 라마야나가 라마의 무용담을 그린 것이라 하지만 힌두 신화의 3대 신인 브라흐마, 시바, 비슈누 대 인간 라바나의 숙명적 대결을 그린 것이기도 하다.

 

라마야나에는 신과 인간, 악마, 원숭이 등 삼라만상의 모든 주체가 등장하고 라마의 일생과 행적 속에는 군신의 의, 부자 간의  도리, 형제 간의 우의, 부부 간의 애정과 정절, 선악 등이 이해되기 쉽게 고루고루 배치되어 있어 인간이 살아가는 의무이자 힌두교의 계명이라 할 다르마(Dharma)를 깨우치기에는 최고의 교과서이기 때문에 인도인들은 라마야나를 읽는 것만으로, 또는 라마야나에 관한 예술 공연(특히 북부 인도의 람릴라 축제)는 을 보는 것만으로 죄를 씻는 것으로 간주하여 단순 여흥이 아닌 종교적인 심오한 의미로 널리 전파되어 왔다.

 

힌두교 건축물에는 다르마의 구현이란 의미로 다투어 라마야나에 관련된 테마를 새겨 넣었으며, 특히 비슈누 신을 모신 앙코르와트의 서쪽 회랑 북쪽 벽에도 이 라마야나에 관련된 테마가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이 이야기는 또 여러 가지 형태로 동남아시아(캄보디아, 인도네시아, 타이 등) 전역에 퍼졌다.마하바라타에 나오는 판다바 형제들과 이 시의 주인공들은 전통적인 자바-발리의 연극, 무용, 그림자 연극의 주인공이 되었고, 인도네시아에서는 많은 사원 건축물에 라마야나에 나오는 사건들이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그런데 라마야나 이야기는 역사적 정치적 해석의 여지가 있는 모양이다. 오늘날 북인도가 남인도를 정치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믿고 그것에 반대하는 타밀족들은 영웅 라마의 이야기를 아리안족이 남부를 침략한 일례로 보며, 라바나에 동정을 표시하는 반면 라마에게는 적대감을 나타낸다고 한다.

  


  

 

스리랑카의 왕 라바나를 총애한 창조의 신 브라흐마는 그에게 갖가지 신통력과 신들조차도 죽이지 못하는 권능을 부여한다. 교만해진 라바나는 감히 시바 신의 권능까지 빼앗기 위해 시바 신이 거주하는 카일라사산을 뒤흔드는 등 신계를 위협한다. 시바와 브라흐마는 화신의 권능을 가진 비슈누에게 부탁하여 인간의 몸이 되어 라바나를 물리쳐주길 요청한다. 이에 비슈누는 마침 아들 점지를 기원하며 축수를 드리고 있는 아요디야 왕국의 다사라타왕의 장남 라마 왕자로 환생한다.

 

코살라의 왕 다사라타는 오랜 동안 자식이 없어서 후계자를 보기를 원했다. 그는 신이 그에게 자식으로 은총을 내리는 의식을 거행했다. 신은 그에게 신주 한 병을 선사했다. 그의 세 명의 왕비가 이를 함께 마셨고, 오래지 않아 라마, 락시마나, 그리고 쌍둥이 사트루기나와 바라타의 네 왕자를 낳았다.

 

장자였던 라마는 자연적으로 미래의 왕으로 키워졌다. 모든 형제들이 우애가 깊었는데, 특히 락시마나와 라마가 가장 절친했다. 그들은 함께 힌두신화의 전설적인 일곱 현자의 한 사람인 비시와미트라로부터 궁술을 배웠다. 마녀 타라카를 퇴치하기 위해 비시와미트라는 자나카왕이 통치하던 비데아왕국의 수도 미틸라에 라마와 락시마나를 데리고 갔다.

 

자나카의 딸 시타를 시집 보내기 위해 왕은 딸을 위한 최고의 왕자를 선택하는 궁술대회를 개최했다. 라마는 대회에 승리하고 새로운 신부와 함께 아요디야로 돌아왔다.

 

 

보위를 물려받을 라마의 대관식 날짜가 다가왔다. 다사라타의 셋째 아내 가장 젊은 카이케이는 그녀가 원하는 어떤 소원이라도 두 가지를 들어 주겠다던 오래 전 남편의 약속을 상기시켰다. 이것은 다사라타가 전차를 몰고 출정했을 때 카이케이가 고삐를 인계 받아 안전하게 마차를 몰아 그의 생명을 구했던 때의 약속이다.


카이케이는 그녀의 아들 바라타에게 보위를 물려줄 것을 요구했고 바라타의 통치에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라마를 14년 동안 숲으로 유배 보내도록 했다. 대관식 준비는 중지되었고 라마는 시타, 락시마나와 함께 숲으로 떠난다.


왕은 세 사람이 숲으로 떠나자 절망에 빠졌고 얼마 후 숨졌다. 이때까지 바라타와 사트루그나는 왕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들은 아버지의 임종 소식을 전해 들었고 그들이 궁에 도착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게 됐다.

 

바라타는 그의 어머니의 탐욕에 아연실색했고 왕좌를 차지하는 게 도저히 용납되지 않은 바라타는 숲 속으로 형을 찾아 가 왕위 계승을 권하지만 이 모든 것이 신의 섭리임을 인지한 라마는 거절하고 바라타로 하여금 즉위하여 훌륭한 왕이 되라고 한다.

 

이야기는 숲에서 일어난 세 가지 경험을 상세하게 기술하는데, 특히 군주들이 어떻게 관대한 생활에 익숙해지며 수많은 백성들이 자연 속에서 자족하며 검소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해 묘사하고 있다. 또한 그들 간의 상호교류와 라마의 신성을 깨닫게 해주는 숲에 살고 있는 수많은 수행자나 현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라마와 락시마나는 수행자들의 명상을 방해하는 숲 속의 악마들과 자주 전투를 한다. 라마 일행은 숲 속에서 슈르파나카를 만난다. 라마에게 첫눈에 반한 그녀는 노골적으로 애정 표현을 하며 청혼하지만 아름다운 아내 시타를 둔 라마는 단호히 거절한다. 화가 난  그녀는 라마의 아내가 '빼어난 미녀'라는 점을 강조하여 오빠인 라바나로 하여금 그녀를 탈취하도록 부추긴다.

 

라바나는 머리가 10개, 팔이 20개인 것으로 묘사되는 랑카왕국의 왕이다. 라바나는 라마를 유인하기 위하여 그의 동생을 사슴으로 둔갑시킨다. 시타는 애완용으로 사슴을 잡아오도록 라마를 보낸다. 사슴은 라마를 집에서 멀어지도록 유인했고 라마는 보통사슴이 아님을 깨닫고 그것을 죽였다. 죽어가던 악마는 라마 목소리로 시타와 락시마나의 이름을 외쳤고, 시타는 라마를 돕기 위해 락시마나를 보냈다. 그에게 다가오는 락시마나를 본 라마는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급히 집으로 돌아왔으나 집은 텅비어 있었다.

 

집이 무방비상태가 되자 라바나가 나타나 시타를 유혹한다. 시타가 거절하자 자존심이 상한 그는 시타를 납치해서 하늘을 나는 전차에 태워 랑카(지금의 스리랑카로 추정되는 곳)로 떠났다.


 

이야기의 나머지 부분은 라마와 락시마나가 어떻게 랑카에 들어가서 마왕을 죽이고 시타를 구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들은 남쪽으로 여정을 떠나면서 도중에 악마들을 죽이고 수행자들과 현자들을 도우며, 키시긴다에 이르러 원숭이 왕 수그리바와 친구가 된다. 왕위 찬탈을 위해 형을 죽이려 했다는 모함을 받아 숲 속에 숨어 사는 원숭이 왕국의 왕자 수그리바와 그의 부하 하누만. 라마가 수그리바에게 왕위를 되찾아주는 대신 수그리바는 시타를 찾는데 협조하는 동맹을 맺는다. 

 

슈그리바의 신하 하누만 장군이 포함된 부대가 남쪽을 정찰했다. 이들이 인도의 남쪽 끝에 이르자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해 당황했지만 하누만은 랑카로 가기 위해 바다를 뛰어넘기로 결정했고 그곳에서 정찰을 계속했다. 그는 시타가 수감된 곳을 알아냈고, 자신을 밝히며 그녀를 곧 도우러 올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그는 마왕의 군대와 작은 접전을 치렀고 라바나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정보를 알아냈다. 

 

오만스런 라바나는 남의 아내를 잡고 있음은 옳지 못하다는 동생 비비사나의 충언에 노하여 그를 추방한다. 시타를 포기하지 못하는 라바나는 라마와 원숭이 대군을 맞이할 대비를 갖추는데 쫒겨난 비비사나는 정의 수호를 위해 라마 편이 되어 형에게 대항한다.

 

 

여기에 신의 능력으로는 라바나를 죽이지 못하게 한 브라흐마의 약속을 피해 신들은 원숭이로 환생, 라마의 원숭이 군대에 편입하여 라바나를 공격한다. 그러나 전술에 능한 라바나와 그 아들 인드라지트의 협공도 만만찮아 상황은 엎지락 뒤치락, 전세는 누구도 예측불허한 상태로 반전을 거듭한다.


하누만이 랑카에서 돌아오자, 전체 원숭이부대와 라마 그리고 락시마나는 랑카로 진격했고, 하누만이 뛰어 건넜던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설했다. 라바나군과 18개월 격전을 치른 후 그의 왕국을 정복했다.

 

신들이 예고했던 전쟁은 이렇게 끝났다. 스리랑카의 악은 물러가고 정의를 수호하는 비비사나가 라바나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고 라바나의 궁에 잡혀 있던 시따도 사랑하는 남편의 품으로 돌아간다.

 

후대에 만들어진 판본에서는 시타가 몸을 더렵혔으리라는 의심을 벗기 위해 불의 시련을 받는다. 라마는 인간적인 회의를 품게 된다. 라바나에게 잡혀 있는 동안 정절을 잃지는 않았는지... 시타는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훨훨 타는 불 속으로 뛰어 들려고 하지만 매정하게도 라마는 말리지 않는다. 이에 놀란 신들이 하강하여 라마가 비슈누 신의 화신이며 시타는 락슈미 여신의 화신이라 일러줌으로서 라마와 시타는 다시 결합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아요디아에 돌아오니 백성들이 아직도 여왕의 순결을 의심하는 것을 보고 라마는 시타를 숲으로 추방한다. 거기서 그녀는 발미키 현인(라마야나의 저자)을 만나 그의 암자에서 라마의 두 아들을 낳는다. 아들들이 어느 정도 나이가 들자 가족이 재회하게 되지만 시타는 다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대지에게 받아줄 것을 청하여 결국 대지는 그녀를 삼켜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