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라오스, 베트남

라오스 여행 (8) 루앙프라방, 메콩강 따라 반 상하이 위스키 마을까지

모산재 2010. 4. 6. 22:43

  

1월 17일 일요일, 메콩강을 따라 반 상하이 위스키 마을까지

 

 

오늘 오전은 메콩강을 따라 빡우동굴까지 배를 타고 투어하기로 되어 있다. 8시에 폰트래블에 모여서 출발하기로 되어 있어서 서둘러 6시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7시 무렵에 개스트하우스 야외 식탁에서 빵과 커피, 쥬스 등으로 간단한 식사를 한다. 

  

폰트래블까지 어제 왔던 길로 되짚어서 간다. 큰길인 시사왕웡거리로 나가 푸씨산을 끼고 걸으면 20여 분 정도 걸린다.

 

 

큰길 나가는 모퉁이에서 보랏빛 꽃을 함초롬히 피운 콩과식물을 만난다. 드문드문 귀하게 피었으니 꽃이 기품 있어 보인다. 덩굴줄기를 보니 목질화되어 있으니 나무나 다름없어 보이는데 이후에도 라오스, 태국 북부 치앙마이 등에서 종종 만나게 된다. 찾아보니 꽃 모양에서 연상한 듯 클리토리아(Clitoria ternatea)라는 다소 민망한 이름인데, '나비완두'로 번역되는 영명을 가졌다.

 

 

 

폰트래블에 도착하니 아직 사람들이 다 오지 않았다. 기다리는 시간이 무료하여 이곳저곳 골목길을 들락거리며 구경하기로 한다.

 

 

아침 골목에 개들이 누워 있거나 서로 어르며 장난치고 있는 모습을 한참 쳐다보기도 하고... 

 

 

 

어느 절에 들어가 둘러보기도 한다. 

 

이 절은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문인석 비슷한 두 석상이 절 입구를 지키고 있다. 절과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풍경이라 생각했는데, 나중 방콕의 왓 마이 등에서도 흔하게 보이지 않은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궁금하다.

 

 

 

골목길에서 만난 꽃. 나도생강이라기엔 꽃이 훨씬 크다. 아마도 꽃생강(Ginger lily)인 듯하다.

 

 

 

한 바퀴 돌아와서 보니 여행사 가이드가 인원을 파악하고 있다. 그런데 몇 번이나 세어도 산수가 잘 안 되는지 한 사람 한 사람 배표와 일일이 맞추며 인원을 확인하고 있는 현지 여성 가이드,  라오스 사람들이 숫자에 약하다더니 과연 그런가 싶다.

 

예정 시간보다 30분이 더 지나서야  출발한다. 아까 보았던 사원을 돌아가면 바로 메콩강 강둑으로 올라서게 된다. 그 아래에 선착장엔 길다란 유람선들이 늘어서 있다. 강물을 보며 몇 년 전 운남 시솽반나의 징홍에서 보았던 란창강을 떠올린다. 그 강물이 바로 이곳으로 흘러내릴 것이다.

 

메콩강의 상류, 중국 운남 동히말라야의 험준한 설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란창강을 이루고, 란창강이 라오스 국경을 지나면서 '남콩'이란 이름으로 흐른다. 라오어로 '남'은 물을 가리키니 남콩은 '콩강'이라는 뜻인데, 여행자들은 대개 메콩강이라는 보편화된 이름으로 부른다. 

  

 

 

선착장 주변 언덕에 피어 있는 꿀풀과의 풀.

 

찾아보니 '사자귀' 또는 '크리스마스캔들'이라는 영명을 가지고 있다.

 

 

 

 

배를 타니 스쳐가는 메콩강 강바람이 서늘하고 맵다. 긴 자켓을 입고 오지 않았으면 몹시 힘들 뻔했다.

 

우리가 찾아가는 빡우동굴은 메콩강 상류 25 Km 지점 거대한 화강암 절벽에 있는 동굴로 동굴 속에는 수천 개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고 한다. 갈 때에는 메콩강을 거슬러 올라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1시간 40분), 돌아올 때에는 강물의 흐름을 탈 수 있어 시간이 많이 단축된다고 한다.(1시간 10분 정도).

 

동굴 구경은 한 시간 정도인데, 가는 중간에 위스키 마을이라고 하는 반 상하이에도 들렀다 가야 하니 투어 시간은 아무래도 5시간 이상이 될 듯하다.

  

 

펼쳐지는 메콩강 풍경은 평이하기만 하다. 감흥을 줄만한 특별한 경관은 없고 그저 아득하게 탁한 강물이 굽이쳐 흐를 뿐이다. 산악지역이어서 주변에 들판은 보이지 않고 그저 강물이 흐르고 강 안팎 여기저기 크고작은 바위들이 솟아 있고 가파른 강언덕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강가 언덕에는 초막과 같은 집들이 보이고 강을 삶터로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이 보인다. 루앙프라방에서 그리 멀어진 것 같지도 않은데 주거양식은 문명 이전 모습 그대로다.

 

 

 

우리가 탄 배는 유람선 규모로 비교적 큰 배이어선지 추월해 가는 배들이 많다. 단체 투어를 하지 않은 사람들, 부부 등 가족으로 온 사람들이나 배낭 여행객들 중에는 따로 작은 배들을 빌려 타고 가기도 한다. 다소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하겠지만...

 

 

 

우리와 함께 배를 탄 사람들 중에서 우리와 수인사라도 나눈 사람들은 심리학자라고 하는 체코 할머니, 말레이지아 화교인 네 자매, 캐나다와 호주 팀인 아가씨 셋, 그리고 스페인 국적의 파키스탄 청년 등 아홉 명 정도이다.  

 

컨퍼런스 참석차 왔다가 여행을 계속 이어가게 되었다는 심리학자인 체코 할머니는 우리의 관심을 많이 끌었다. 이분은 여행 중 어느 곳에서 불상을 바라보다 갑자기 걷잡을 수 없는 울음이 터져 나와 부디스트가 되었다고 한다. 

 

 

▼ 오른쪽 금발이 체코 할머니, 할머니 옆과 뒤쪽에 앉은 중년 여인들은 말레이지아 화교인 네 자매들,

그리고 맨 앞 오른쪽은 우리 일행인 김 선생님. 김 선생님을 통해 이분들과 관련된 정보들을 듣는다.

 

 

 

체코 할머니는 체코에서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섯 번이나 보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영화 속 노승이 고양이 꼬리로 달마를 그리는 장면에 인상 깊었는지 그것이 뭘 의미하는지 묻는다. 김 선생님이 나에게 질문을 돌리며 어떻게 답해야 할까 묻는다. 

 

인간 욕망의 문제를 몸서리치게 (허무주의적으로) 형상화하는 영화계의 이단아, 그냥 떠오르는 말은 "unordinary style!" 너무 맹한 답이지만 딱히 알맞은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생명을 죽이는 업을 지고 인생이 시작하고(봄), 사랑과 욕망에 눈 뜨고(여름) 그 욕망으로 살인하고(가을) 맷돌을 끌며 집착을 비워내고(겨울) 다시 그를 닮은 아이의 인생은 업을 지면서 시작하고(그리고 봄)...

 

또 하나 물었던 것이 절 마당에 한문으로 썼는데 그 글이 무얼 의미하는가, 였던가. 갑작스런 질문에 그런 장면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는데 나중에야 꽤 또렷이 떠오르는 것이다. 아내를 죽이고 돌아온 사내, 자살을 시도하다 모진 매를 맞고 노승은 바닥 가득 글을 쓴다. 그게 바로 반야심경이었던 것 같다. 그것을 새기며 마음을 다스리는 사내... 노승이 죽고 다비를 하고 맷돌을 끌고 산을 오르는 사내...

 

그때 그것이 기억났더라면 좋았을 것을... 좀 준비되어 있었더라면, 그리고 영어 울렁증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더라면 김기덕에 대해서도 이댜기해 볼 수 있었을 것을. 어쨌거나 체코 할머니는 불교와 동양문화에 꽤 심취하고 있음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말레이 화교 4자매는 모두 결혼 하지 않고 함께 여행을 다니기를 즐긴단다. 이미 우리 나라도 다녀온 터라 카메라 LCD창에 제주도와 남이섬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 주며 즐거워한다.

 

스웨덴 국적의 파키스탄 청년은 까무잡잡한 피부가 건강미를 더하는데,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용모도 시원스럽다. 호주 등 동남아를 혼자 4개월째 여행 중인데, 앞으로 2개월 더 여행을 계속할 것이라 한다. 말수가 별로 많지 않고  여행을 은근히 즐기는 티가 역력하다.

 

그리고 20대 초의 캐나다인 두 처녀로 얼굴이 새하얀 백인 아가씨와  걸음걸이가 불편해 보이는 동양계 아가씨, 그리고 호주인 아가씨. 셋이 함께 다니는데 방비엥에서 함께 왔는데 루앙프라방에서도 여러 번 마주친다.

  

 

 

 

가끔씩 저렇게 산발한 것처럼 뿌리를 드러낸 나무들이 보인다. 우기에 큰물이 나는 일이 먾으니 강언덕 토사들이 침식 당한 흔적이리라. 

 

 

 

강물 속으로 섬처럼 바위들이 솟아 있는 지형들이 군데군데 많은데, 그런 곳에는 반드시 탑 모양의 콘크리트 기둥이 서 있다.

 

저걸 왜 세웠을까.  처음에는 무심히 보아 넘겼는데 위의 뿌리가 드러난 나무를 보다가 '퍼뜩' 그 이유가 떠오른다. 메콩강이 불어나는 우기에 바위섬들이 물에 잠기게 되면 암초가 될 것이다. 우기에 배가 안전하게 다니기 위한 암초를 표시한 것...

 

어디까지나 나의 추리일 뿐이고 정답인지 아닌지 확인한 것은 아니다. 

 

 

▼ 강물 속 바위들이 섬을 이룬 곳에는 반드시 콘크리트 기둥이 서 있다.

 

 

 

강가 곳곳에서 사람들이 물 속에 들어서서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다. 물 속으로 상체를 구부리기도 하고 자맥질하기도 하면서 뭔가를 끄집어낸다. 물고기를 잡는 동작과는 어딘지 달라 보이는데... 어느 바위섬 근처를 지날 때에 한 남자가 우리 배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두 손을 흔들어댈 때,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 파란 물풀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 물풀은 민물 파래 '카이'라는 것인데, 이곳의 특산품이다. 그것을 말려 튀기고 참깨를 뿌려 만든 건제품을 카이 파엔이라고 하는데 이곳 사람들의 간식거리가 되는데 우리들에겐 훌륭한 맥주 안주가 되었다. 그러고보니 오늘 아침 우리 숙소 야외식탁으로 찾아 왔던 두 여인들이 사달라고 내민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관광객들이 머무는 숙소에는 이것을 팔러 다니는 여인들을 종종 졸 수 있다. (이날 저녁에 이것을 사서 안주로 먹었다.)

 

 

어느덧 배는 '위스키 마을' 반 상하이에 도착한다. 강물 가운데로 마중나온 대나무다리 앞에서 배가 섰다. 대나무다리 풍경, 라오스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모습이다.

 

 

 

왕위앙의 솜강에서도 강을 건너는 것은 모두 대나무다리였듯이 이곳에서 만나는 다리도 모두 대나무 다리다. (나중 루앙프라방의 칸강에도 사람들이 대나무다리를 건너다닌다.) 라오스의 상징과도 같은 대나무다리, 언제까지 사라지지 않고 이 모습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이 풍경이 사라진 라오스를 사람들은 찾고 싶어할까.   

 

비엔티엔에서 우리 나라 기업이 메콩강 백사장을 파헤치던 모습이 다시 떠오른다.  

 

 

 

 

강언덕을 올라서자마자 바로 마을이 펼쳐진다.

 

맨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드럼통으로 술을 빚는 광경. 우리의 전통 소주를 빚는 모습이나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왼쪽의 항아리에는 증류된 술이 관을 통하여 졸졸 흘러내리고 있다. 이 술이 바로 라오라오인데 우리 안동소주 비슷한 맛이다.

 

한쪽에는 이렇게 만들어진 술들을 담아 놓은 항아리병들이 가득 전시돼 있다. 독주를 좋아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와인 맛이 나는 부드러운 술도 갖추어 놓았고, 뱀술들도 팔고 있다. 

 

 

 

반 상하이는 '항아리 마을'이라는 뜻인데 이름 그대로 원래 항아리를 만들던 마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라오라오라는 전통 술을 만들어 파는 위스키 마을로 더 알려져 있다.

 

그러나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항아리 만드는 일은 서서히 사라지고 라오라오주와 목도리 등의 직물들을 파는 관광지로 변해 버렸다. 관광객들이 항아리를 사들고 여행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생계를 위해 발빠르게 대응한 사람들의 슬기로움을 탓할 순 없지만 그들의 본업이었던 항아리가 사라져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길을 따라 목도리 등을 파는 가게들이 늘어섰다. 

 

 

마을 한 가운데에는 사원(왓)이 자리하고 있다. 워낙 많은 사원을 본지라 그냥 눈요기로 스쳐지나고 만다.

 

 

 

▼ 사원 입구 벽에 그려진 벽화

 

 

 

 

그런데 사원 앞 마당에 낯선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마을사람들이 모여들어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합장을 하고 있다. 텅빈 마당에서 무슨 일일까, 뭘 하고 있는 것일까. 궁금하여 가까이서 살펴보아도 저들이 다함께 합장해야 할 이유가 도리 만한 것이 없지 않은가. 

 

 

 

한 바퀴를 빙둘러 아래에 보이는 이분들을 보고서야 내 눈길은 문이 열려진 봉고차 안으로 돌려진다. 봉고차 안에는 주황색 가사를 입은 젊은 승려들이 여럿 앉아 있지 않은가.

 

마을 사람들은 봉고차 안에 앉아 있는 이 승려들에 대해 경배드리고 있는 것이다. 깊은 신앙심으로 엄숙하게 합장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표정과는 달리, 승려들은 의자 등받이에 안락하게 기대어 무심한 표정으로 앉아 있을 뿐이다. 다소 건방지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우리 나라 승려들이라면 봉고차에서 내려 함께 합장을 하며 예를 표했을 것을... 라오스에선 승려들이 엄청난 존경을 받는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무슨 꽃일까. 이 마을에서 만난 꽃들을 담아 보았다.

 

1. 박과로 보이는 꽃

 

 

 

2. 자귀나무와 유사한 콩과의 꽃 

 

 

 

3. 왕위앙에서도 보았던 꽃. 땅을 기는 덩굴풀에 피는 흰 꽃은 콩알만하다.

 

 

 

반 상하이 마을을 나와 다시 배를 타고 빡우 동굴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