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

바람부는 우도에는 봄빛이 넘실거리네

모산재 2010. 4. 4. 09:59

 

자고 일어난 아침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아침에 엊저녁 해거름에 보아 두었던 눈개불알풀꽃 사진을 찍으리라 생각했는데 틀려버렸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렇게 비가 온다면 오늘의 일정 우도 트레킹은 어찌 되나... 걱정하고 있는데 얼마 뒤 비는 그친다.

 

아침은 이선생님이 추천하는 춘자네국수를 먹었다. 큰 길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 꺾어진 곳, 버스정류장 근처에 자리잡은 허름한 식당인데, 몹시 시장하여 3,000원 짜리 곱배기를 시켜 먹었는데 양은 냄비 가득 배가 터질 지경이다. 2,000원짜리 보통으로 먹어도 될 뻔했다. 멸치국물맛이 제대로 우러난 구수한 국수, 아침 식사로 꼭 추천하고 싶은 집이다.

 

 

하늘은 여전히 인상을 쓰고 우중충하지만 우도 트레킹을 위하여 차는 성산으로 달린다. 성산포항에 도착하니 한숨 돌릴 틈도 없이 떠나는 배가 기다리고 있다. 성산포항의 동북쪽에 빤히 건너다보이는 우도까지는 십리 안팎(3.8~4,1km)이다. 매 시간 배가 출발할 정도로 관광객이 붐빈다.

  

 

 

 배가 떠나니 새우깡을 던지는 사람들, 먹이를 얻기 위한 갈매기떼들의 군무를 구경하는 재미로 우도에 도착할 때까지 뱃길은 심심할 틈이 없다.

 

멀어지며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일출봉은 잔뜩 찌푸린 구름 속에 머리를 파묻었다. 날씨가 맑았으면 좀 좋았을까, 아쉬운 마음이다.

  

 

 

  

배는 우도 북서쪽에 있는 하우목동항으로 들어선다. 섬의 남쪽은 쇠머리오름(우도봉)이 있어 높은 언덕을 이루는데 비해, 섬의 북쪽은 수평선을 따라 길게 누운 모습이다.

 

우도에는 하우목동 외에도 남쪽 천진항이 더 있는데, 이곳이 성산포에서 좀더 가까운 항이다.

 

 

 

소가 드러누운 모습과 같다고 하여 이름지어졌다고 하는 섬, 우도는 남북으로 십 리가 좀 부족하고 동서로 오 리가 좀 넘는 작은 섬이다.(3.5km * 2.5km) 그렇지만 섬둘레는 사십 리가 넘는 17km 쯤으로 제주도에 딸린 섬 중에서는 가장 큰 섬이다. 

 

 

 

 

선착장 입구 관광안내지도에도 우도 팔경을 표시해 놓았다. 한편에는 우도에서 촬영된 영화와 드라마를 소개해 놓았다. 인어공주, 시월애, 연리지, 연풍연가, 러빙유, 여름향기, 내 인생의 콩깍지 등... 

  

 

 

 

전국의 경승지에는 팔경이 있듯이 우도에도 팔경이 있다. 주간명월(낮에 보는 달), 야항어범(밤항구의 고기잡이배), 천진관산(천진항에서 보는 한라산), 지두청사  , 전포망도, 후해석벽, 동안경굴, 서빈백사가 그것이다. 우도팔경이란 이름은 근래에 우도에 근무하던 중학교 교장께서 명명한  것인라 하는데, 차례대로 밤과 낮, 하늘과 땅, 앞과 뒤, 동과 서로 짝을 지어 붙인  이름이란다.  

 

이중 '달그리안'이라 불리는 '주간명월'을 으뜸으로 쳤는데, 섬 남쪽 광대코지 암벽 밑 해식동굴에 맑은 날 정오 무렵이면 스며든 햇빛이 굴 천장에 반사되어 마치 둥근달이 떠오른 듯한 장관이 펼쳐진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에 맞춰 배를 타고 가 보아야 하는데 쉽게 볼 수 있는 장관이 아니라고 한다. 지두청사는 우도봉에서 바라본 섬의 전경이다. 

 

그러고보니 우도팔경의 대부분은 우도봉이 있는 섬의 남쪽 해안에 집중되어 있다. 그야 어쨌든 몇 시간 산책으로 끝내야 하는 바쁜 일정에 이 중 몇이나 볼 수 있을까.

 

 

 ▼ 우도 안내도

 

 

 

선착장을 벗어난 우리는 금방 서쪽 해안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걷기 시작한다. 배에서 내린 승용차들이 줄을 지어 지나가고, 또 우리처럼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도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바쁜 걸음들을 옮긴다. 봄이라 해도 우중충한 날씨에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쌀쌀하게 느껴진다. 검은 화산암 돌담을 왼쪽으로 끼고 검푸른 바다를 오른쪽으로 두고 걷는 길은 날씨 탓인지 운치가 있다기보다는 을씨년스럽다.

 

 

그렇게 한 모퉁이를 돌아서 가니 갑자기 눈이 내린 듯 새하얀 백사장(?)이 나타난다. 검은 현무암으로 덮인 우도에서 이색적인 풍경인데 이곳이 우도팔경의 하나인 백사해빈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깨어진 산호 조각으로 이루어진 산호해빈으로 알려져 왔는데 최근에 산호 조각이 아니라 '홍조단괴'로 이루어진 해빈임이 밝혀졌다고 한다. 어려운 한자말로 된 이름이 거북한데, '홍조'는 '붉은말'이고 '단괴'는 '둥근알갱이'쯤 되는 것이니 '붉은말이 굳어 만들어진 돌알갱이'로 이해하면 되겠다.

 

 

우도 해안에 서식하는 석회조류 중 하나인 홍조류가 광합성을 통해 세포에 탄산칼슘을 침전시켜 단괴를 형성하였고, 이러한 홍조단괴가 조류()나 파도에 의해 구르고 뒤집히기를 반복하다가 퇴적된 것이 바로 홍조단괴해빈인 것이다. 홍조단괴는 지름 3~5㎝ 정도의 크기로 둥글고 울퉁불퉁한데, 길이 300m, 너비 15m의 규모로 해안선을 따라 발달하였다. 

 

해외에서는 미국플로리다 반도와 바하마를 비롯한 몇몇 지역에서 홍조단괴의 서식이 보고되었는데 주로 암초 주변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는 달리 우도의 홍조단괴는 해빈의 퇴적물을 이루는 독특한 사례로 학술적인 가치가 평가되어 2004년 천연기념물 제438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무단 반출이 금지되어, 3년 이하 징역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처벌을 받게 되니 수집벽 있는 분들은 조심할 일이다.  
 

 

 

다시 해안길 한 모퉁이를 더 돌아서니 더 넓은 백사장이 나타난다. 바로 천진해수욕장이다. 해수욕장에는 해녀상이 서 있고, 바람도 불고 쌀쌀한 날씨이지만 사람들로 붐빈다. 마을에서 숙박을 한 듯한 모습의 사람들로 많다.

 

저 멀리 천진항과 성산 일출봉이 나란히 붙어 서 있는 듯하다.

 

 

 

 

해녀상 옆에는 고려 목종 때인 1004년에 화산이 폭발하여 우도(소섬)가 만들어졌다는 '서산용출(瑞山湧出)'에 대한 기록을 표석에 새겨 놓았다. '1001년째'라고 하였으니 2005년에 세운 모양이다.

 

 

 

백사장에서 장난치고 노는 처자들의 모습이 보기 좋아서(그리고 뛰놀아도 좋은 젊음이 부럽기도 해서) '몰래카메라'로 담아 보았다. 이분들이 혹시 이 글을 보게 되더라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청춘은 아름다운 것이다.

 

 

  

 

 

현무암 검은 돌담, 그 너머 노란 유채꽃 피어 있는 들판, 퇴색한 풀로 덮인 등성이의 무덤, 그리고 흐릿한 하늘... 이즈음의 제주도가 아니면 만날 수 없는 풍경일 것이다.

 

  

 

 

마을 앞을 지나가고 있노라니 멀리서 요놈의 강아지가 낯선 여행객을 보고 막무가내로 달려와서 앞발을 들고 엉기며 재롱을 떨어댄다. 비위도 넉살도 참 좋은 녀석이다. 

 

가까스로 뜯어 말려서 귀여운 마음에 기념 사진 한방 찍어 주려 했더니 카메라를 덮쳐 든다. 그래 다시 짐짓 꾸지람 하고 "거기 서봐. 사진 찍어 줄 테니!" 하고 밀치고 세웠더니 이번에는 삐친 건지 저렇게 눈길을 다른 데로 돌리고 딴전이다.

 

 

 

 

요 귀여운 녀석과 이별하고도 해안길은 한동안 계속 이어진다. 해안길 돌담이 더 높아지고 있으니 마을이 가까워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아까보다는 날씨가 좀 환해졌다는 느낌이다.

 

우도를 소개하는 글에는 '해녀들의 마지막 고향'이라 할 만큼 우도에는 아직도 해녀가 많아 물질하는 해녀들을 만날 수 있고, 해녀들의 쉼터인 불턱과 제주의 원시 돌그물이었던 원담, 그리고 방사탑 등 제주 고유의 풍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고 하더만 그런 모습을 발견하지 못한다. 아니 발견하지 못한다기보다는 알지 못해서 못 보는 것이리라.

 

 

 

그리고 우도의 가장 높은 곳, 우도봉(132m)이 시야에 가득 들어온다.  

 

 

 

길가 공터에 흐드러지게 핀 유채꽃을 만나고서야 날씨로 우중충해졌던 마음이 환하게 갬을 느낀다. 꽃을 만나면 마음도 봄이 된다.

 

 

 

 

천진항을 앞에 두고 왼쪽으로 꺾어 들어 들길을 지나 마을로 들어선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은 조일리를 지나 검멀레 헤수욕장. 넘실대는 푸른 밀밭 너머로 천진항이 보인다.

 

 

 

천진리마을을 지나 들길은 계속 이어진다.

 

 

 

 

우도에도 바람 많은 날씨 탓인지 봄꽃이랄 게 별로 없다. 어쩌다가 갯쑥부쟁이이나 개구리발톱 꽃을 만나고 별꽃은 더러 피었지만... 그래도 개불알풀만큼은 지천으로 아주 흐드러지게 피었다.

 

 

 

우도봉을 오른쪽으로 두고 우도의 동쪽으로 넘어간다.

 

 

  

유채꽃밭을 지나고...

 

 

 

잠시 무덤 많은 산허릿길을 지나니...

 

 

 

 

동쪽 해안 구릉 위에 그림처럼 앉은 마을이 나타난다. 아마도 조일리이지 싶다. 조일리로 들러서기 전 산허리를 끼고 남쪽으로 10여 분 채 못 가서 검멀레해수욕장이 나타난다.

 

 

 

소섬 우도의 상징처럼 실한 소 한 마리, 풀 뜯는 것도 잊고 휴식을 취하며 부처님처럼 명상에 잠겼다.

 

 

 

 

마을 너머 저 멀리 바다를 향해 아스라히 이어진 긴 땅이 우도에 딸린 또 하나의 섬 비양도인지...

 

어쨌거나 쪽파, 맥주보리 등의 작물이 자라는 푸른 들판과 원색의 마을 지붕이 어울린 풍경은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 푸른 들판엔 봄빛 가득 넘실 거린다. 그러고보니 우도에는 유난히 쪽파를 많이 심었고, 맥주보리밭도 많다.

 

 

 

 

산허릿길을 느릿느릿 10여 분쯤 돌아가자 드디어 검멀레에 도착한다. 맞은편 언덕 우도봉 아래 등대가 보인다. '검멀레'라는 낯선 이름이 뭘 뜻하는지 아리송했는데, 해안을 보고서야 번개처럼 그 의미가 들어온다. 

 

 

 

  

U자로 우묵하게 들어간 절벽 지형 아래, 이곳이 검멀레 해수욕장이다. '검멀레'는 아마도 '검은 모래'라는 뜻의 제주말이리라. 서쪽 해안 새하얀 서빈백사와는 너무나 대조되는 까만 모래 해수욕장, 까마득한 수직절벽 아래 넘실대는 검푸른 바다를 맞이하는 까만 모래 해수욕장은 기이한 풍경을 이룬다. 

 

이곳의 검은모래는 찜질효과가 좋다고 알려져 여름이면 해수욕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검멀레해수욕장 끝에 '콧구멍동굴'이라 불리는 굴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우도팔경의 하나인 동안경굴(東岸鯨窟)이다. '동쪽 해안의 고래동굴'이라는 뜻인데 썰물 때에만 굴 안으로 걸어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동굴 안은 이중동굴로 이루어져 있는데, 좁은 입구를 지나면 만나는 안쪽의 두번째 동굴은 별세계를 이루는 비경이라고 한다. 동굴의 크기도 대단하고 굴 안은 온통 이끼가 덮여져 있어 딴 세상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우도의 동안경굴을 보면서 나는 어린시절 재미있게 읽었던 <악마의 섬>이라는 추리소설을 어렴풋이 떠올린다. 그 소설에서 묘사하고 있었던 섬은 소를 닮은 섬이었고 이렇게 절벽과 동굴로 얽힌 해안이었는데, 아마도 이 우도가 배경이었던 것 같다. 잃어버린 불상과 살인 사건과 서커스단 소년, 그리고 소를 닮은 섬의 절벽 속 동굴 등 이야기의 단편만 떠오르는데, 누구의 작품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혹시나 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봐도 이 작품에 관한 건 찾을 길 없다. 혹시 읽어본 분이 있으면 기억을 되살려 주시기 바란다.

 

 

검멀레해수욕장 동쪽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해녀상

 

 

 

 

우도봉을 올라서 천진 쪽으로 넘어갔으면 좋으련만 시간이 부족하단다. 왔던 길을 되돌아갈 바엔 걸음을 빨리해서라도 그리 가고 싶은 맘이 굴뚝이지만 자신이 없다. 몇 년 전이었으니 무조건 뛰어 올라갔을 텐데...

 

 

천진항으로 돌아가는 길, 우도봉 방향으로 펼쳐진 풍경 

 

 

 

 

 

천진항 등대 너머로 여전히 뿌연 일출봉이 흐릿하게 보인다.

 

 

 

  

혹시 이것이 제주의 원시 돌그물이었다고 하는 원담이 맞을까. 

 

 

  

쪽파밭을 매고 있는 할머니

 

 

  

청진항에 도착하니 5분 뒤에 배가 출발한단다.

 

해녀항일운동기념비가 있었건만 그냥 지나쳤다. 1932년에 '세화 잠녀투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우도해녀의 항일운동을 기념하여 세운 비라고 한다. '아들을 낳으면 엉덩이를 때리고 딸을 낳으면 돼지를 잡는다'는 말이 있다는 제주도 잠녀들의 억척스런 생활력이 항일운동의 에너지로까지 승화되었다.

 

 

천진항 주변 풍경

 

 

 

  

 

다시 성산을 향해 배는 출발한다. 아까 우도로 들어올 때처럼 성산까지 갈매기는 배를 따라 떼를 지어 좇는다. 새우깡에 길들여진 갈매기는 이제 여행객들의 애완동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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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소섬)

 

면적 5.9㎢, 인구 1,752명(2000)이다. 해안선길이 17㎞, 최고점 132m이다. 제주시 우도면을 이루는 섬으로 제주도의 부속도서 중에서 가장 면적이 넓다. 성산포에서 북동쪽으로 3.8㎞, 구좌읍 종달리()에서 동쪽으로 2.8㎞ 해상에 위치하며, 부근에 비양도()와 난도()가 있다.

 

1697년(숙종 23) 국유목장이 설치되면서 국마()를 관리·사육하기 위하여 사람들의 거주가 허락되었으며 1844년(헌종 10) 김석린 진사 일행이 입도하여 정착하였다. 원래는 구좌읍 연평리에 속하였으나 1986년 4월 1일 우도면으로 승격하였다. 섬의 형태가 소가 드러누웠거나 머리를 내민 모습과 같다고 하여 우도라고 이름지었다.  

 

남쪽 해안과 북동쪽 탁진포()를 제외한 모든 해안에는 해식애가 발달하였고, 한라산의 기생화산인 쇠머리오름이 있을 뿐 섬 전체가 하나의 용암대지이며, 고도 30m 이내의 넓고 비옥한 평지이다. 주요농산물은 고구마·보리·마늘 등이며, 가축 사육도 활발하다. 부근 해역에서는 고등어·갈치·전복 등이 많이 잡힌다.

 

부서진 산호로 이루어진 백사장 등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우도 8경이 유명하며, 인골분 이야기를 비롯한 몇 가지 설화와 잠수소리·해녀가 등의 민요가 전해진다. 남서쪽의 동천진동 포구에는 일제강점기인 1932년 일본인 상인들의 착취에 대항한 우도 해녀들의 항일항쟁을 기념하여 세운 해녀노래비가 있으며, 남동쪽 끝의 쇠머리오름에는 우도 등대가 있다. 성산포에서 1시간 간격으로 정기여객선이 운항된다. <두산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