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

용처럼 누워 일출봉 바라보는 용눈이오름

모산재 2010. 3. 1. 19:54

 

 

▼ 다랑쉬오름에서 바라본 용눈이오름

 

 

 

 

 

제주 사람은 오름에서 태어나 오름으로 돌아간다고 할 만큼 오름은 제주 사람들의 삶이요 혼이다. 그러나 오름은 제주 사람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근대사의 비극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해방 후 남한단독정부가 수립되는 과정에서 수만 명의 양민이 빨갱이로 몰려 무참히 학살당한 곳, '잠들지 않는 남도' 제주도 곳곳에서 만나는 오름들은 학살당한 수만 원혼들의 절규인 듯하다.

 

빨갱이로 몰린 청년들이 군경에 쫓겨 숨어들고 은신처를 없애기 위해 마을은 불태워진다. 갑자기 들이닥친 외지인에 의해 영문도 모르는 아녀자 노인 들이 떼로 죽임을 당한다. 바로 그 곳이 중산간 오름 아니던가.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아부오름의 동쪽에 자리잡은 용눈이오름으로 가는 길에도 수없이 많은 오름들이 스친다. 오른편으로 나무 한 그루도 보이지 않는 용눈이오름이 시야에 들어서고, 멀리 북쪽으로 우뚝 솟은 다랑쉬오름과 아끈다랑쉬오름이 나타난다. 저 다랑쉬오름 기슭에는 불타 사라져버린 마을이 있고 수십 명의 주민들이 군경이 지른 불에 갇혀 질식사한 다랑쉬동굴이 있다.

 

 

 

 

용눈이오름 입구에서 아는 얼굴들을 만난다. 해직 시절 함께 했던 유, 이 선생님과 일행들... 홍안흑발이었던 얼굴들이 희끗희끗한 머리칼의 중년으로 깊어진 모습들을 보며 열정에 불탔던 시간들을 떠올린다. 모든 것이 역주행하는 시대에 한 갑자 전 능욕당하던 통곡의 섬에서 옛 동지들을 우연히 마주치니 얼마나 반가운가. 

 

 

▼ 용눈이오름 입구

 

 

 

 

 

 

입구에서부터 완만하게 오르는 비탈길이 이어진다. 곡선을 이룬 언덕은 나무가 보이지 않는 초원이다. 길은 토사의 유출을 막기 위해 야자나무 섬유로 엮은 바닥재를 깔아 놓았다.

 

 

 

 

 

 

분화구의 서쪽 능선을 따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 북쪽 정상으로 오른다. 칼바람이 매서우면서도 시원하다.

 

 

 

 

 

 

오름 입구 너머 북쪽으로 다랑쉬오름이 보인다. 저 기슭에는 수십 명의 민간인이 학살 당한 다랑쉬동굴이 있고 불타 사라진 마을이 있다. 그리고 더 멀리 왼쪽으로 보이는 것이 아끈다랑쉬오름 아닐까 짐작해 본다.

 

오른쪽 아래가 용눈이오름의 화구인데, 북서쪽 두 사람이 서 있는 지점이 낮다. 화구가 별로 깊지 않아 아부오름과는 아주 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

 

 

 

 

 

용눈이오름 분화구 능선은 높낮이가 있어 걷는 재미가 각별하기도 하지만, 사방으로 보이는 경관을 조망하는 즐거움도 좋다. 다양한 오름은 말할 것도 없고 멀리 바다도 보이고 우도도 보이고 일출봉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름의 서쪽, 도로 건너편에는 손지오름(손자봉)이 아닐까 싶은 작은 오름이 웅크리고 있다. 마치 바리캉으로 머리를 깎은 듯이 오름의 발치와 꼭대기에만 어린 소나무숲을 남기고 초지가 언덕을 띠처럼 두르고 있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오름들이 차례로 동거문오름(동검은이오름, 동거미오름)과 문석이오름이지 싶다.

 

 

 

 

 

용눈이오름은 용처럼 누워 멀리 성산 일출봉을 바라보고 있다. 구부러진 오름의 형세가 마치 용이 누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화구가 크게 패어 있는 모습이 용이 누웠던 자리 같다고도 하고, 화구의 모습이 용의 눈처럼 보인다고도 하여 용눈이오름이라 불렀단다. 용눈이오름을 용유악(龍遊岳) 또는 용안악(龍眼岳) 용와악(龍臥岳)등으로 부르는데, 이들 이름에서 '눈'의 의미가 '논(遊)', '눈(眼)', '누운(臥)' 등 다양하게 해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왼쪽 아래로 풀빛이 푸르게 나타난 부분이 화구의 가장 낮은 바닥이다. 화구의 가장 높은 언덕인 북동 사면으로 오르는 길은 아주 가파르다.

 

 

 

 

 

멀리 동쪽으로 성산일출봉이 모습을 드러냈다. 날씨가 맑지 않아서 우도는 잘 보이지 않는다.

 

 

 

 

 

용눈이오름의 높이는 247.8m, 비고 88m, 둘레는 2,685m, 면적은 404,264㎡, 폭은 773m이며, 모양은 복합형으로 되어 있다. 용눈이오름은 용암 형설류의 언덕이 흩어져 있는 복합형 화산체로, 정상에 원형 분화구 3개가 연이어 있고 그 안에는 동서 쪽으로 조금 트인 타원형의 분화구가 있다.

 

 

 

전체적으로 산체가 동사면 쪽으로 얕게 벌어진 말굽형 화구를 이룬다. 오름 기슭은 화산체가 형성된 뒤 용암류의 유출로 산정의 화구륜 일부가 파괴되면서 용암류와 함께 흘러내린 토사가 이동하여 퇴적된 용암 암설류의 언덕이 흩어져 있다.

 

 

▼북쪽 능선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 오른쪽이 화구이다. 멀리 풍력발전단지가 보인다.

 

 

 

 

 

오름의 기슭 언덕 비탈은 나무 한 그루 없이 잔디와 풀밭으로 덮여 있는데, 이곳에는 미나리아재비·할미꽃·꽃향유 등이 자생하고 있다고 한다. 입춘 지나 우수로 접어드는 춘절기에 제주도의 할미꽃, 오돌또기 정도는 피어 있으면 좀 좋으랴 싶은데, 시베리아 칼바람만 잔뜩 맞으니, 제주도의 봄은 그리 믿을 게 못 되는 것 같다.

 

 

아쉬운 마음에 화산암 돌담으로 둘러친 무덤가에서 겨우 줄사철 씨방 하나랑 큰개불알풀 꽃 한 송이 발견해내고 스스로 위로해야 할 지경...

 

 

 

 

 

 

시간이 허락된다면 다랑쉬오름과 다랑쉬동굴을 찾았으면 좋으련만, 오름이 높아 시간이 많이 걸린단다. 3월에 또 제주도를 찾아 이 선생님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으니 그 때나 한번 들를 수 있으려나...

 

 

 

오름을 다시 내려오니 이미 점심 시간을 넘긴 지 오래다. 한 선생님이 작년 여름 올레길을 왔다 맛본 감동을 잊지 못한 것인지 '해물뚝배기' 타령이다. 구좌읍에서는 식당을 찾지 못하고 성산읍으로 간다. 그곳의 한 작은 식당에서 난생 처음 해물뚝배기를 먹는다. 기대에 많이 못 미치는 맛.

 

 

 

다시 애월 구엄포구로 돌아가서 낚시하는 신 선생님을 픽업하고 나니 비행기 뜰 시간이 두 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공항 활주로 너머에 있는 바닷가의 오름, 도두봉 근처 해녀식당에서 해물 맛을 즐기다 공항으로 향한다.

 

 

 

 

 

 

※ 아부오름, 용눈이오름과 주변의 오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