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

제주도 애월 해안 산책로, 납읍 난대림과 포제청, 구엄포구 돌아보기

모산재 2010. 3. 1. 17:05

 

바다와 함께 걷는 정겨운 굽잇길, 애월 해안산책로

 

이 선생님이 제주도로 발령 받은 것을 핑계로, 설 연휴 며칠 뒤 우리는 제주도로 2박 3일의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저가 항공으로 도착한 제주공항에서 미리 예약한 11인승 봉고차를 타고 곽지해수욕장이 바라보이는 곳에 자리잡은 애월 어느 바닷가 언덕의 제주 돼지고기 전문 식당으로 향한다. 신 선생님의 사촌형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가마 속에 넣어 복사열로 구운 꼬챙이 고기는 타지 않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점심식사 후 식당 바로 앞에 있는 해안산책로를 따라 산책을 나섰다. 처음인 이길이 그리 유명한 줄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한담마을 산책로라는 거다. 2001년 한담마을에서부터 곽지해수욕장까지 1.200m 구간에 해안선을 따라 개설되었다 한다. 실제로 걸어보니 해안 경관이 수려한데 해지는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한다. 달빛이 해안 물가에 비친다는 애월(涯月)이니 보름달이라도 맞이한다면 더욱 멋지지 않을까...

 

우리는 식당 앞마당의 언덕을 내려서서 애월 토비스콘도까지 걸었다. 바다를 끼고 걷는,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소롯한 산책길은 뜻하지 않은 즐거움을 준다. 자동차가 보이지 않는 해안길은 평화롭다. 바다를 향해 나기도 하고 해안을 파고들어 숨기도 하며, 언덕을 끼고 하늘을 향하다가 다시 바다를 향해 내려서기도 하는 굽이굽이 해안길은 단조로움이 없다. 누군가 '걷는 이들이 풍경이 되는 길'이라고 했다더니, 그 말이 딱이다 싶게 풍경 속에 잠겨서 걷는 사람에게 자꾸 눈길이 가는 정겹고 포근한 길이다. 

 

 

 

▼ 산책로 주변 마른 풀섶에서 봄의 새싹들이 싹뜨고 있다.

 

 

  


▼ 여기는 용천수를 일컫는 '용드렁 물'이 나는 곳일까. 아니면 밀물 썰물을 이용해 물고기를 가두어 잡는 곳일까.

 

 

 


구빗길을 돌아서자 멀리 한담마을이 나타난다. 해안길을 걷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연두빛 감도는 푸른 바다이다. 열대 바다가 아닐까 싶게 모래와 자갈 바닥이 훤히 비치는 투명한 바다다. 수평선으로 멀어지면서 물빛은 옥색으로, 그리고 짙은 남빛으로 바뀐다.

 

 

 


편안함이 느껴지는 길, 봄바람은 살랑거리며 얼굴을 스치고 잔물결은 출렁이며 갯바위를 쓰다듬는다. 저기 보이는 한담마을은 물이 유난히 맑고 동풍이 불면 잔잔한 파도가 아름다워 얻은 이름이라 한다.


  

 

  

 

▼ 까마귀쪽나무 열매. 10월에 꽃이 피어 이듬해 5~6월에 익는다.

 

 

 

▼ 화심이 오그오글한 제주도 자생 수선화도 꽃을 피웠다.

 

  

  

 

▼ 갯쑥부쟁이까지 이 계절에 피고 있을 줄이야.

 

  

 



제주곶자왈 납읍 난대림(금산공원), 마을제를 위한 포제청

 

그리고 오후에 우리가 찾은 곳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납읍 난대림이다. 제주도 특유의 돌담길(이걸 올레라고 한다지...)로 이어진 마을을 지나니 납읍초등학교가 나타나고, 바로 그 곁에 짙은 녹음 울찬한 난대림 숲이 산을 이루고 있다. 평지에 남아있는 보기 드문 상록수림이라는 이 숲은 나무의 종류는 단순하지만 학술적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 제375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공원이기도 해서 금산공원이란 이름이 붙었다.

 

초등학교에 차를 세우고 숲길로 들어선다. 난대림이래서 혹시나 꽃들도 만나지 않을까 기대도 하였지만 동백꽃 몇 송이와 꽃이랄 게 없는 산쪽풀의 희미한 꽃을 본 게 전부다. 온난한 기후대에서 자생하는 식물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는데, 후박나무, 생달나무, 식나무, 종가시나무, 후추등나무, 마삭줄 등이 지천이고 콩짜개덩굴들이 바위와 나무 줄기를 온통 덮고 있다.

  

 

▼ 납읍초등학교 옆 난대림 입구. 입구에 줄이 쳐져 있는데 이것은 마을제를 앞두고 출입을 막는 금줄이다.

 

 

 


이 난대림은 해발 고도 833.8m에서 시작해 90m까지 총 9㎞에 걸쳐 분포하는 애월 곶자왈지대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곶자왈은 나무·덩굴식물·암석 등이 뒤섞여 수풀처럼 어수선하게 된 곳을 일컫는 제주도 방언인데,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지형이란다. 세계적인 생태계의 보고이지만 최근 골프장 건설, 쓰레기 매립장 등 각종 개발사업 추진으로 파괴되며 몸살을 앓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바위와 나무 줄기에는 콩짜개덩굴이 지천으로 타고 오른다

 

 

 

 


공원의 숲길 언덕을 오르면 5분 남짓 오르니 기와집 한옥 건물이 나타난다. 울울창창한 난대림 숲속에 사방으로 돌담을 쌓고 그 넓은 마당 한쪽에 서 있는 음기 가득한 건물, 이곳은 마을제를 지내는 포제청이다.

 

제주도에는 아직도 마을 곳곳에서 마을제를 지내고 있는데, 마을제는 남성들이 주관하는 유교식 포제(酺祭)와 여성들이 주관하는 무속식 당제가 병존하고 있다고 한다. 본래는 남녀 모두 무속의 당에 모여 굿을 하였지만 조선시대 중기 이후 유교 제법이 보급됨에 따라 남성들이 무속의 당에서 떨어져 나와 포제(酺祭)를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마을제는 원래 일년에 두 번 지냈는데, 정월달의 춘제는 마을의 본향당에서 무속식의 굿을 하고 7월 첫 정일(丁日)의 추제는 유교식 포제를 지내기도 한다. 납읍은 유교적인 전통이 많이 남아 있는 유림촌으로 마을의 민간 신앙이 유교적 색채가 강하다고 한다.



 

 


매년 춘제는 음력 초정일(初丁日)에, 추제는 음력 칠월 초정일(初丁日)에 치르다가 30여 년 전 마을회의의 결의로 추제는 폐지되었다 한다. 공원 안에 있는 포제청에서 마을제인 포제를 지낸다. 제단인 포제단에는 포신지위(神之位)와 토신지위(土神之位) 및 서신지위(西神之位) 등 세 신위를 모신다. 포신은 인물 재해, 토신은 마을의 수호신, 서신은 홍역이나 마마신을 의미하는 신위이다.

 


 

※ 제주의 포제

 

포제는 마을에 따라 이사제(里社祭), 향제(鄕祭), 치성제(致誠祭)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제신은 일반적으로 포신지위(神之位)이지만 마을에 따라서 토지지신위(土地之神位)와 포신지위(神之位) 양위를 모시는 데가 있고, 여기에다 무사귀신지위(無祀鬼神之位)라는 원혼을 모시는 곳도 있다. 이사지신위(里社之神位)라는 지방을 써 붙여 모시는 마을이 있는가 하면 거기에 덧붙여 염질지신위(染疾之神位), 목동지신위(牧童之神位)를 모시는 마을도 있다. 이사지신위(里社之神位)나 토지지신위(土地之神位)는 마을을 지켜주는 신이고, 포신지위(神之位)는 풍농신(豊農神)이며, 나머지는 질병, 원혼, 목축의 신이다.

 

본제(本祭)를 지내기 전, 혹은 후에 마을의 본향당에서 참배를 한다. 정월달에는 마을의 본향당에서 무속식의 굿을 하고, 7월의 첫 정일(丁日)에는 유교식 포제를 지내는 마을도 있다. 지금도 무속의 본향당을 무시할 수 없어 유교식 제의임에도 남성들이 본향당 참배를 하는 것은 남녀 공동의 신앙에서 남성들이 분리해 온 잔영이라고 할 수 있다.                         

              -<제주향토문화대전>에서 인용

 

 

▼ 밤일엽 

 

 


▼ 후추등

 

 

 


난대림이라고 하여 마냥 따스한 기운이 서려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숲은 춥다. "예로부터 양반들이 시를 짓거나 담소를 나누던 곳으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듯해 지친 발걸음을 멈추고 쉬어가기에 좋다."라는 말만 믿고 햇빛이라곤 들지 않은 숲에서 오들오들 떨며 돌아나온 우리는 "난대림이 아니라 완전 한대림"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아무리 그래도 겨울 아닌가.

 

숲을 나와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서는데 어느 할아버지 한 분이 난대림 입구를 가리키며 다소 흥분해서 뭐라고 말씀하신다. 제주도 방언이 강해서 정확하게 알아듣기는 어려웠지만, 포제를 지내는 초정일을 앞두고는 출입을 해서는 안 되며 그래서 금줄을 쳐두었건만 사람들이 어기며 출입한다는 것이다. 풍속을 알지 못한 우리는 미안할 따름인데, 할아버지와의 짧은 대화를 통해 마을제가 제주민에게 적잖은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난대림으로 난 길이 작년말 새로 개통된 제주 올레길의 일부(15코스)로 포함되었다고 한다. 부디 납읍리 마을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숲이 털끝만큼이라도 오염 훼손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천연 돌염전이 있는 구엄포구

 

우리가 숙소로 정한 동양콘도는 애월읍 구엄포구에 자리잡고 있다. 제주시에서 서쪽으로 30리(16km) 떨어진 곳이다. 바다와 함께 달리는 제주 애월간 해안도로를 끼고 있는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포구 바로 옆 해안에는 500여 평의 평평한 천연 돌염전(빌레)이 자리잡고 있는데, 사전 지식이 없어 별것일까 싶어 사진으로 담을 생각을 못했다 .  

 

구엄마을의 포구 이름은 속명이 '철무지개'라 하고, 옛 지도들에는 '염장포'라 표기되어 있다고 하는데, '염장'은 '염젱이'라는 옛마을 이름을 이두식으로 표기한 것으로 본다. 포구는 왼쪽으로 동풍을 막아주는 '상코지',  오른쪽으로 서풍을 막아주는 '쉐빌레코지'를 의지하여 만들었다. 


포구 주위에는 담수가 솟는 곳이 세 군데 있다고 한다. '족은주물'과 '손닥잇물'은 직접적으로 포구 안으로 흘러들지는 않으나 '조물통' 물은 흘러든다고 한다.

 

 

▼ 방파제에서 본 구엄포구

 

 


▼ 바닷물 속에서 자라는 이 해조류는 무엇일까

 

 

 

포구의 동쪽 상코지 바위 언덕 위에는 곳곳에서 봄소식을 알리는 갯풀들이  새싹을 내밀고 있다. 

 

 

▼ 위에서 차례대로 새싹이 돋는 갯까치수영, 갯개미자리, 땅채송화

 

 

  

 

 

 

저녁에는 한때 전교조 활동을 함께 하다 십 수년 전 제주도로 내려와 정착한 김 선생님의 안내로 '우리집'이란 횟집에서 제주도의 회를 배부르게 먹는다. 소주 한 잔에 거나해진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서도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게 이야기하고 노래도 부르며 회포를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