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목계나루와 신경림의 '목계장터'

모산재 2009. 12. 6. 23:03

 

대지국사비를 돌아보고 나오는 길, 우리는 목계나루 부근의 어느 식당에서 늦은 아침을 먹기로 한다. 일행들이 방 안에 들어간 사이 잠시 강언덕에 올라 서는데, 겨울인가 싶게 남한강을 거슬러 밀려드는 강바람이 파르르 얼굴을 쓰다듬고 지나간다.

 

나루가 있었던 자리에는 커다란 교량이 위 아래로 둘이나 가로지르는데, 시간을 퍼 나르는 저 단호하고 살풍경한 직선의 풍경을 지우며 시간을 거슬러 황포돛대나 나룻배가 한가로이 흘러가는 풍경을 상상해본다.

 

 

 

 

↓ 목계교

 

 

 

 

 

소백산맥에 깃든 뭇생명들의 뿌리를 적시고 계곡의 바위를 돌아 흘러내린 강물은 달뿌리풀과 갈대와 모래톱으로 숨쉬며 시리도록 맑고 환한 얼굴이다. 교량의 살풍경을 빼고나면 아직도 목계강(남한강)은 바람과 햇살과 풀꽃들과 여울들을 넉넉히 거느리고 제 깊이를 재며 고요히 흐르고 있다.

 

그러나, 이제 당장 내년이면 저 강의 고요를 다 파헤치는 '4대강 살리기' 포크레인질이 시작될 것이다. 바람과 햇살과 풀꽃들과 여울들도 다 사라지고 저 교량의 살풍경처럼 규격화한 수로가 영혼을 잃고 흐르게 되겠지….

 

 

↓ 목계대교

 

 

 

 

 

목계는 옛 이름이 '전국에서 다섯째 안에 드는 포구'라는 뜻의 오목계(五牧溪)일 정도로 큰 포구 장시(場市)가 섰던 곳으로 한때는 충주에 버금갈 정도로 붐볐다고 한다. 소백산맥에서 급하게 흘러내리던 물길이 깊어지고 넓어지는 목계는 포구로 발달하기에 알맞았고, 가까운 곳에 세곡미(稅米)를 운반하던 가흥창이 있어서 충청도는 물론 소백산맥 너머의 경상도 북부 지방의 세곡까지 날라오는 길목이 되어 상가가 형성되고 흥성했던 것이다.

 

 

신경림(73) 시인은 목계나루에 얽힌 추억을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한겨레신문, 최재봉 기자의 글 인용)

 

 

제 어릴 때는 열 척에서 스무 척에 이르는 뗏목이 강을 따라 내려가는 광경이 정말 장관이었어요. 뗏목꾼들이 주거니 받거니 부르는 노래도 일품이었고요. 서울에서 배로 사흘 거리인 목계나루는 남한강의 물산이 집결되는 곳이었기 때문에 장이 서면 길게는 닷새까지 흥정이 계속되고, 그동안 씨름이며 줄다리기 같은 놀이가 진행되고 술 파는 집에서는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해요.

 

 

그리고 "운하가 건설되고 댐이 생기면 그런 삶의 흔적이 다 물에 잠기지 않겠습니까?"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그 해, 경부대운하 건설에 반대하는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단을 이끌고 도법스님 수경스님 문정현 신부님 같은 분들이 전국을 삼보일배하며 이곳 목계나루터에 도착했을 때 이들을 맞이한 자리에서 한 말이다.

 

식당 입구 공터엔 '목계나루터'라는 거대한 돌비석이 서 있는데, 그 안쪽에 신경림의 시 '목계장터'를 새긴 시비가 서 있어 눈길을 끈다.

 

 

 

 

 

 

그가 '목계장터'라는 시를 쓴 해는 1975년인데. 그 전 해에 터진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된 김지하 시인을 면회하고 돌아오는 길에 목계나루를 찾았다가 쓴 것이라고 한다.

 

 

1975년 평론가 염무웅과 함께 원주 감옥에 있던 김지하 시인을 면회하고 돌아오던 길에 목계나루를 찾았지요. 당시의 암담한 정치 상황을 이곳의 풍광에 투사했던 것 같아요. 세상에서 버림받고, 희망은 없이 절망뿐인가 하면, 허무한 가운데서도 떠돌이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를 향한 그리움 같은 걸 복합적으로 시에 담았습니다.

 

 

 

 

 

'목계장터'는 떠돌이 장사꾼, 장돌뱅이들로 대표되는 민중들의 애환어린 삶을 목계장터를 배경으로 생명력이 깃든 자연 소재의 언어를 통해 독백조로 아름답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모두 16줄로 된 자유시이지만 4음보로 된 가락은 가사나 민요의 전통 율조라 흥겹고, 가난한 민중의 아픔과 서러움은 구름, 바람, 들꽃, 잔돌 등 자연이 가진 생명력으로 승화되어 편안하다.

 

그러나 다소 운명론적이어서 가시지 않는 서러움은….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하네."에서 묵묵한 의지의 돌이 되는 것일까. '잔돌'이 '짱돌'되어 '바람'처럼 그 누군가를 향해 날아갈 때….

 

 

판화에서 느낄 수 있는 깔밋한 칼끝 맵시가 낯익은 글씨는 판화가 이철수의 솜씨이다.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친 다음 우리는 소태면 산골짜기에 숨어 있는 폐사지 청룡사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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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림의 시 '목계장터'와 나옹선사의 '靑山兮要'라는 시

 

 

신경림의 시 '목계장터'는 고려말 나옹선사 혜근(懶翁禪師 惠勤,1320~1376)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다음의 시와 발상이 상당히 닮았다. '무욕의 초탈'이랄까, '청산과' '하늘'이 요구하는 나의 모습은 '물'과 '바람'이 아닌가.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어찌보면 신경림이 나옹선사의 이 시에 영감을 받아 '목계장터'를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할 수 있겠다 싶다. 그런데 위의 글은 다음의 한시 원문을 번역한 것으로, 오히려 신경림의 '목계장터'와 같은 4음보의 가락을 잘 살려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靑山兮要我以無語
蒼空兮要我以無垢
聊無愛而無惜兮
如水如風而終我

 

 

게다가 원문에도 없는 다음과 같은 구절도 위의 글에 보태어져 널리 퍼져 있으니, 가히 구비문학 수준의 적층성을 확보해 가고 있다고 하겠다.

 

세월은 나를보고 덧없다 하지않고
우주는 나를보고 곳없다 하지않네
번뇌도 벗어놓고 욕심도 벗어놓고
강같이 구름같이 말없이 가라하네

 

 

☞ 그런데 이 한시의 작자가 나옹선사라는 근거를 확인할 수 없는데, 작자가 중국 당나라의 한산(寒山)스님이라는 설도 있고, 작자미상이라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