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안개구름 피어오르는 늦가을 소양호 풍경

모산재 2009. 12. 2. 21:46

 

새벽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일기예보가 맞아서 오히려 당황스럽기까지 하다니. 얼마만에 찾았는데 이를 어째야 하나. 에라 모르겠다 하고 택시를 집어 타고 소양강댐으로 향한다. 댐으로 오르는 산길도 선착장 풍경도 처음인 듯 왜 이리 낯설기만 한 것인지….

 

비가 추적추적 내리건만 사람들은 북적인다. 관광버스도 몇 대 와 섰고 승용차도 가득하다. 길가에 늘어선 천막 점포에선 음식을 만들고 밤을 구우며 생업에 바쁜 아주머니, 할머니들….

 

 

검푸른 소양호에는 비가 내리고 호수를 둘러선 산은 짙은 안개구름이 피어오르고 있다. 옷을 벗어버린 신갈나무 숲들은 겨울처럼 앙상한데 떨어져 푹신하게 쌓인 잎들은 비에 젖고 있다. 군데군데 노란 단풍을 자랑하는 낙엽송 숲들이 자리잡고 있어 아직도 가을이 붙들려 있는 듯 싶다.

 

 

 

 

 

 

 

 

쓸쓸한 계절, 가을비와 호수와 선착장과 안개구름이 어울린 풍경 속에 선 여행객은 알 수 없는 아득한 감동에 젖어든다. '그리움'과 '외로움'을 잊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도 하지만, 여행은 역설적이게도 일상 속에 잊고 있었던 '그리움'과 '외로움'이 주는 달콤한 감정을 되살려 주기도 한다.

 

 

불교적 명상 음악으로 만만찮은 매니아를 두고 있는 가수 홍순지의 '청평사 가는 길'이라는 노랫말이 떠오른다. "내가 살던 세상은 호수 저편에 / 아직도 눈에 밟히는 그리운 사람 두고 / 나는 아득함에 끌려 당신께 가네." "다시 돌아서야 하는 사람들은 떠나고 / 얼만큼 더 걸어 올라야 외로움에 길들까."

 

 

저 깊은 푸르름 반짝이는 햇살
내가 살던 세상은 호수 저편에
아직도 눈에 밟히는 그리운 사람 두고
나는 아득함에 끌려 당신께 가네.
붉은 얼굴 아름답던 열 여섯 시절에
바람처럼 자유롭고픈 내 꿈들은
저 얼음 아래로 흐르고 있는
제길 따라 갈 뿐인 시냇물 되어
눈 내리는 호숫가 언덕길 오르며
버려둔 일 버리는 일 당신께 가네.
다시 돌아서야 하는 사람들은 떠나고
얼만큼 더 걸어 올라야 외로움에 길들까.
저 혼자 고요한 나무며 바위들
태어남에 살아갈 뿐인 산새들처럼
제길 따라 갈 뿐인 시냇물 되어

 

 

 

 

 

 

유람객을 가득 태우고 청평사를 향해 배는 출발한다. 싸늘한 날씨에 사람들은 선실로 들어서는데, 나도 선실에 들어섰다가 가끔씩 뱃전으로 나가 풍경을 담는다.

 

 

 

 

 

 

 

 

 

 

 

뱃전에서 렌즈로 향해 달려드는 빗방울 피해 가며 풍경 몇 장을 담다보니 배는 벌써 선착장에 다가서고 있다. 청평사를 거쳐 오봉산을 올랐으면 하는데 비는 그치질 않는다.

 

멀리 안개구름에 잠긴 오봉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저 봉우리 아래 구름 속에 청평사는 고요히 앉아 있으리라.

 

 

'퇴고(推敲)'라는 말을 낳게 한 당나라의 세련된 서정시인 가도(賈島)의 '숨어 사는 이를 찾았으나 만나지 못했네(尋隱者不遇)'라는 시가 절로 떠오르는 풍경이다.

 

 

 

 

 

 

흔히 '송하문동자(松下問童子)'라는 시로 읽혀지는 다음의 시.

 

 

松下問童子(송하문동자)    소나무 밑에서 동자에게 물으니

言師採藥去(언사채약거)    스승은 약을 캐러 갔다고 답하네.

只在此山中(지재차산중)    다만 이 산 속에 있지만

雲深不知處(운심부지처)    구름 깊어 어딘 줄 모르겠다고….

 

 

잠깐이면 도착하는 청평사, '구름 깊은 산' 그 경이의 세계 앞에서 발길을 들여 놓지 못하고 여운을 남기는 가도의 시를 가만히 떠올려보다가, 문답의 주체가 바뀌긴 하였지만 발상이 비슷한 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도 덩달아 떠오른다.

 

 

問余何意棲碧山(문여하의서벽산)    무슨 뜻으로 푸른 산에 사느냐고 묻길래

笑而不答心自閒(소이부답심자한)    웃으며 답 않으니 마음 절로 한가롭네.

桃花流水杳然去(도화유수묘연거)    복사꽃 물결 따라 아득히 흘러가니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또 다른 천지가 인간세상 아니로세.

 

 

그냥 첫 두 구절로 끝내었으면 좋았을 걸, 마지막 두 구절은 유행가처럼 진부하다고 나는 생각한다.(오히려 이것이 더 유명한 구절로 회자되지만…. 가도(779-843)는 이백(701-762)보다 후대의 사람, 어쩌면 언어에 꽤 까다로웠던 가도는 이백의 시를 읽다가 나와 같은 생각으로 이 시를 썼는지도 모른다.) 오늘 같은 풍경에 이백의 시보다는 말을 아끼며 여백을 둔 가도의 시가 참 잘 어울린다 생각하는데 어느새 배는 청평사 선착장에 들어서고 있다.

 

무엇을 찾아 안개구름 속에 잠긴 산사를 향하는 것인지….

 

 

 

 

청평사를 돌아보고 나올 때에는 비가 그치고 안개가 개면서 세수한 얼굴처럼 말끔한 풍경을 드러내었다

 

 

↓ 선착장 주변 풍경

 

 

 

 

 

 

↓ 선착장에서 바라본 청평사 입구 오봉산 산자락 풍경

 

 

 

 

 

 

 

↓ 청평사로부터 멀어져 나오며 돌아본 풍경

 

 

 

 

 

 

 

 

↓ 다시 도착한 소양댐 선착장에서. 댐 부근 잔물결 이는 호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