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기차 타고 간 춘천, 명동 골목 닭갈비에 소주잔 기울이다

모산재 2009. 12. 2. 21:41

 

 

조금은 지쳐있었나 봐 쫓기는 듯한 내 생활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몸을 부대어 보며
힘들게 올라탄 기차는 어딘고 하니 춘천행
지난 일이 생각나 차라리 혼자도 좋겠네

춘천 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오월의 내 사랑이 숨쉬는 곳
지금은 눈이 내린 끝없는 철길 위에 
초라한 내 모습만 이 길을 따라가네
그리운 사람

차창가득 뽀얗게 서린 입김을 닦아내 보니
흘러가는 한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고
그 곳에 도착하게 되면 술 한잔 마시고 싶어
저녁 때 돌아오는 내 취한 모습도 좋겠네

춘천 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오월의 내 사랑이 숨쉬는 곳
지금은 눈이 내린 끝없는 철길 위에 
초라한 내 모습만 이 길을 따라가네
그리운 사람 그리운 모습

우~~ 우우우우~~ 

 

 

김현철이라는 가수가 부른 '춘천 가는 기차'라는 노래를 아는가.

 

꼭 20년 전에 발표된 보사노바(Bossa nova) 풍의 감미로운 멜로디에는 옛 사랑의 희미한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노랫말처럼, 일상에 시달리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시시함에 허우적거리는 '초라한 내 모습'이 싫어질 때면 경춘선을 타고 싶어지겠지,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

 

 

 

그래 토요일 경춘선을 탔다.

 

참으로 얼마만인가. 종종 아이들을 인솔하고 강촌이나 대성리를 찾기는 했지만, 그런 여행 속에서 "오월의 내 사랑이 숨쉬"는 추억에 젖을 수도 "저녁 때 돌아오는 내 취한 모습도 좋겠네." 노래할 수도 없잖은가.

 

차창 밖 흘러가는 북한강 물은 여물대로 여물어 무겁게 흐르고, 높고낮은 산들의 나무들은 반쯤은 옷을 벗고 시린 몸으로 어깨동무하고 섰다. 이 가을 별 거둘 것도 없는 삶 좀 쓸쓸해도 괜찮아, 그렇게 위안이 되어 주는 풍경이다. 청량리역에서 출발해 북한강을 끼고 달리는 철길에서부터 남춘천역에 도착할 때까지 차창 밖 풍경에 시선을 매단 채 그냥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여행….

 

 

 

남춘천역에서 내린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김유정 문학촌도 둘러 보고 청평사에 들렀다가 오봉산도 올라보고 싶지만 먼저 날씨가 협조해 줄 것인지가 더 걱정이다. 일기예보는 비가 올 것이라고 했으니.

 

추억의 닭갈비 골목을 찾기로 하고 시청 방향으로 무작정 걷는다. 도중 공지천을 건너는 김에 깨끗하게 단장된 둔치로 내려서 걸어본다. 물이 하수처럼 더러워 실망스럽다.

 

 

어둠이 깃드는 시간, 중간에 마주친 정겨운 재래시장 남부시장 한 바퀴 돌며 사람사는 냄새를 맡아 본다. 저렇게 점점이 켜지는 불빛에 가슴이 따스해진다.

 

 

 

 

 

 

20년만에 찾은 명동은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시청 맞은 편 상가를 형성하고 있는 거리는 어수룩한 데가 없이 깔끔하게 단장되어 서울의 강남 거리보다 더 멋져 보인다. 2002년에 방영되었던 인기 드라마 '겨울연가'의 주인공 배용준과 최지우가 풋풋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개 그림이 늘어선 거리는 사람들을 설레게 하고 낭만에 잠기게 하는 듯 보인다.

 

허름하고 비좁던 닭갈비 골목은 넓지는 않아도 아담하고 '엣지' 있는 세련된 먹거리 거리로 탈바꿈하였다.

 

 

 

 

 

이곳 명동 닭갈비 골목은 '겨울 연가'의 탤런트 배용준이 찾으면서 더욱 유명해지고 남이섬을 찾았던 일본 여성팬들이 반드시 거쳐가는 관광코스로도 이름을 날렸던 곳이다. 올해 들어서 춘천시가 나서서 간판을 정비하고 조형물을 설치하는 등 대대적으로 공을 들인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닭갈비 골목이 그리 길지는 않아도 예전에 비해서는 업소가 많이 늘어나 있어 어느 집으로 들어가야 할까 망설이게 된다. 떠나기 전 미리 인터넷을 검색하다 'ㅈ일보'(손가락질 받는 신문인데도 맛집까지 엉터리 기사를 쓸까 싶어)에서 맛집이라고 소개한 곳을 찾았더니 손님이 거의 없어 돌아서 버렸다.

 

골목으로 들어서며 바로 마주치는 이 집은 아주 장사진을 치고 있다. 주변의 다른 집들도 줄을 서지는 않았지만 이미 많은 식객들로 북적이는데, 뭔 영화를 보자고 저렇게 줄까지 서서 앞선 손님들 나오기를 학의 목이 되어 기다릴까 보냐.

 

 

 

 

 

 

해서 거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을 기웃거리다가 오른쪽 이 집으로 들어선다.

 

소문으로는 '우미닭갈비집'이 닭갈비집으로는 원래 유명한 곳이었다는데, 상호 등록을 잘 모르던 시절 같은 이름을 사용하던 다른 사람이 현재 이 가게를 운영하고 원조 우미닭갈비집의 아들이 '구우미닭갈비'라는 이름으로 가게를 운영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들어선 이 집은 원조 우미닭갈비집이 아니다. 아무려면 어떠리. 20여 년 전에 한번 찾았던 집도, 그 집의 닭갈비 맛이 어떠했는지도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그저 푸짐한 닭갈비 안주에 소주 한잔 기울이며 따스해지는 가슴 느낄 수 있으면 족하지 않겠는가.

 

 

 

 

 

서울에서 먹는 닭갈비와는 사뭇 다른 음식 차림새에 다소 의아스러워하게 된다. 닭갈비 외에는 상추와 마늘 몇 조각, 그리고 동치미국 한 그릇이 모두다. 곁들여 나오는 음식은 전혀 없다.

 

나중에 알고보니 춘천 닭갈비집은 어느 집이건 단일한 메뉴로 밑반찬은 없고 동치미 국물에 상추와 마늘 양파 고추장이 전부라는 것이다. 

 

 

 

 

 

 

 

여러 가지 조미로 단 맛에 익숙한 서울의 닭갈비와는 달리 맛은 담백 그 자체다. 닭고기도 야채도 신선하고 각각의 재료 맛이 그대로 입 안에서 느껴지는 것이 처음에는 낯설기만 한데, 먹을수록 편한 느낌이 절로 든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밥 한 공기를 비벼서 먹으니 서울과 다를 것이 없다. (밥이 부담스러운 사람은 막국수를 시켜 먹으면 된다.) 닭갈비를 굽는 철판이 크고 두꺼운데 대패날처럼 생긴 도구로 눌어 붙은 음식물을 쓱쓱 밀어내니 신기하게도 한 점 티끌 없이 깔끔하게 밀린다. 그렇게 볶은 밥이 청결해서 좋다. 저 철판을 비롯해 조리 기구 한 세트를 갖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뭔가.

 

 

 

 

 

 

닭갈비 안주에 소주 몇 잔을 기울이는 동안, 반도 차지 않았던 테이블이 사람들로 다 채워졌다. 아직은 이른 시간, 시장 골목으로 산보를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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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 닭갈비의 유래

 

신라시대에도 있었다는 설이 있지만 닭갈비는 원래 홍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춘천이 행정 중심지로 성장하고 공무원, 대학생들이 주 고객층으로 등장하면서 춘천의 명물로 굳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50년대 숯불 위에 석쇠를 얹어 요리했던 숯불 닭갈비로부터 춘천닭갈비가 시작되었다고도 한다.

그리고 60~70년대 춘천댐과 소양강댐 등이 건설되던 때,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노동자들이 고추장으로 양념한 돼지고기를 즐겨먹었는데 돼지고기 파동으로 닭고기를 먹게되었다는 설도 있다. 닭고기만으로 양을 채울 수 없어 고추장 양념에 여러가지 채소를 섞어 볶아먹다가 발전한 것이 닭갈비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70년대에 접어 들며 닭갈비판이 등장하고 춘천 명동에서 4개 업소가 본격적으로 닭갈비 요리를 시작하면서 명동 닭갈비 골목이 형성되었다. 춘천 지역에 닭을 많이 길렀고 도계장이 많았던 것도 닭갈비가 번성하는 데 역할을 하였다. 지금도 그런 편이지만 70년대에는 값이 대단히 싸서 (닭갈비 1대 값이 100원) '대학생 갈비''서민 갈비'라고 불렸다고….

춘천 닭갈비와 유사한 것으로 '태백 닭갈비'는 냄비에 육수를 넣어 국물이 있는 점이 다르고, '강릉 닭사리'는 닭고기에 국수(사리)를 넣어 매콤하게 조리한 점이 특징이다. 맛이야 다르겠지만 어느 음식이든 술안주로는 최고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