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았지 싶은 이른 봄, 마당끝 언 땅을 조심스레 비집고 파란잎들을 내미는 상사화. 온기를 더해가는 봄햇살을 듬뿍 받으며 이들이들 무성해진 푸른 잎들은 여름 햇살이 다가서면서 기운을 잃고 시들어간다. 잎이 사라진 자리에서 통통한 꽃대가 쏘옥 올라와 연한 자주색의 화려한 꽃을 피운다.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할 뿐더러, 꽃이 피어도 열매조차 맺지 못하는 운명의 이 수선화과 알뿌리 화초에 상사화라는 이름이 붙었다. 꽃말조차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는데….
높이 50∼70cm, 백과사전에 적고 있는 상사화의 꽃대 높이이다. 그런데 지난 8월 하회마을 고택 양진당을 둘러보다가 뜰 구석 나무그늘에는 땅 위로 겨우 고개만 내민 상사화가 꽃대도 없이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덤불이 우산처럼 가려 빗방울이 닿지 못한 탓이지 싶으면서도, 꽃대도 올리지 못하고 꽃을 피우는 목마른 그리움이 짠하고 아릿하게 느껴진다.
사찰이나 민가의 정원에 관상용으로 심는 상사화는 도입종이 아닐까 생각하기 쉬운데, 상사화의 원산지는 우리나라다.
이른봄 땅속 알뿌리에서 파릇파릇 싱싱하고 윤택한 잎이 모여 자라나다 햇살 따가워지는 6∼7월이 되면 시들며 흔적을 지운다. 아침 저녁 선들선들 가을 기운이 드는 9월, 잎이 사라진 자리에서 통통한 꽃대가 올라와 연한 자주색 꽃을 피운다.
꽃은 꽃줄기 끝에 산형꽃차례를 이루며 4∼8개가 달린다. 수술은 6개이고 암술은 1개, 그 아래쪽에 3실의 씨방이 자리잡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열매는 맺지 못한다.
지방에 따라서 '개난초'라고 부르기도 한다. 학명은 Lycoris squamigera인데, 영명은 Magic Lily, Resurrection Lily이니 잎 진 자리에 꽃이 피어나는 모습이 '소생'의 '마력'을 연상시켜서일까….
한방에서 알뿌리(비늘줄기)를 약재로 쓰는데, 소아마비에 진통 효과가 있다고 한다. 알뿌리에는 다종의 알칼로이드(alkaloid)가 함유되어 있으며 또 식물의 생장을 억제하며 항암작용이 있는 2종의 lycoricidiol, lycoricidine이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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