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일기

백령도 (1) 금방망이, 자주개자리, 유럽장대, 호밀풀, 참골무꽃, 큰조롱

모산재 2009. 8. 3. 11:18

 

2009. 07. 22. 수요일

 

아주 오래 전 청년 시절부터 그렇게 가고 싶었던 백령도를 드디어 찾기로 하였다. 다소 막막한 느낌으로 무턱대고 가보자고 나섰다. 배편 예매를 좀 늦게 한 탓에 연안항에서 아침 8시에 출발하는 배편에 대느라 새벽 5시에 일어나 서둘러야 했다.

 

오랜 장마로 유달리 비가 많은 날씨에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날씨 협조가 잘 되어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하지 않은가. 배를 타고 가는 동안 부족한 잠으로 조느라 그 동안 일식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배가 소청도에 다가설 무렵에야 눈을 떴다. 출항한 지 벌서 4시간이 더 지나고 있었는데, 백령도까지 4시간 걸리는 것으로 되어 있는 시간표는 '뻥'이었나 보다.(다시 인천으로 돌아갈 때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소청도 선착장

 

 

 

멀어지는 소청도

 

 

 

갑판에서 바라보는 대청도

 

 

 

대청도 선착장

 

 

 

 

차례로 나타나는 소청도와 대청도, 그리고 백령도는 빤히 건너다 보이는 섬이다.

 

 

멀리 바라보이는 백령도, 왼쪽으로 짧게 콩돌해안, 오른쪽으로  길게 사곶해안이 아스라하다. 두 해안이 모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사곶해안

 

 

 

 

천연비행장 사곶해안의 오른쪽 끝 선착장을 향해 배는 달린다.

 

 

 

 

백령도 관문인 용기포선착장, 배에서 내리면 오른족으로 나타나는 백령도의 첫 해안 절벽

 

 

 

 

배에서 내리고 보니 점심 때가 살짝 지나고 있는 느낌이었지만 선착장 주변의 식당들이 그다지 맘을 끌지 않아, 일단 백령면의 소재지인 진촌으로 가기로 한다. 어차피 이곳을 찾을 때에는 웬만하면 걷는다는 각오로 왔으니 무턱대고 걷기 시작한다. 30분쯤 걸린다는데 경치란 풀꽃나무들이랑 기웃거리며 가다 보면 얼나나 걸릴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기린초가 퍽 낯설었는데, 가지가 유난히 많이 벌어 있어서였다. 혹시나 이것이 가지기린초일까 의심을 해 보기도 했지만 잎의 모양이 그냥 기린초와 다름없어 헷갈리기만 한다.

 

 

 

산발치에 흐드러지게 핀 기린초를 쳐다보며 걷다가 웬 낯익은 커다란 풀이 보인다. 

 

살펴보니 금방망이 아닌가.

 

 

 

줄기 끝에는 벌서 꽃맹아리가 움직거리는데, 에구 조금만 늦게 왔으면 꽃을 만날 수 있었을 걸, 하고 아쉬워하는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꽃을 환하게 피운 녀석이 빙그레 미소짓고 있지 않은가.

 

어째서 요 한 녀석만 요렇게 빨리 이성에 눈을 떴다냐, 얼씨구나 신나게 몇 컷을 후다닥 담는다. 

 

 

해안으로 난 길은 배가 도착한 탓인지 차들이 씽씽 달리며 스쳐 가는데 기분이 좀 별로이다. 게다가 걷는 사람은 눈을 씻고 봐도 따로 없지 않으냐...

 

 

왼쪽으로 웅기원산이 보이는 해안길을 지난다.

 

 

 

그리고 도로변에서 만나는 낯익은 풀 하나.

 

말이야 '낯익은' 풀이지만, 한번도 만난 적은 없고 내가 자주 찾는 모 사이트의 '무슨 꽃이에요'에서 두 번인가 올라와 이미지로만 안면이 있는 녀석인데 이곳에서 딱 걸렸다.

 

 

 

그런데 울산 지역에서 올라왔던 것으로 기억되는 그 녀석은 가지가 많이 번 모습인데 이 녀석은 아주 홀쪽하니 궁상스럽다. 이름은 '털갓냉이'라고도 부르는 유럽장대이다. 울릉도와 백령도 등 분포가 극히 제한된 귀화식물이다. 

 

혹시나 싶어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가지를 치고 생육이 발달한 녀석은 따로 눈에 띄지 않는다.

 

 

알팔파라는 이름의 남미 목초로 잘 알려진 자주개자리 꽃이 흔하게 보인다.

 

 

 

금불초도 흔하게 피었다.

 

 

 

마, 꼭두서니, 환삼덩굴이 함께 얽힌 도로변 덤불에 환하게 핀 메꽃을 하늘 버전으로 잡아보았다.

 

 

 

큰까치수영이지 싶은 녀석은 잎자루에 붉은 무늬가 왜 없을까.

 

 

 

 

진촌의 한 식당에서 점심으로 된장찌개를 먹고서 심청각으로 향한다. 북쪽방향으로 진촌 마을을 통과하면 작은 산봉우리가 나타나고 그 위에 심청각 지붕이 살짝 고개를 내민 모습이 보인다. 

 

 

심청각 오르는 산길 가엔 가는보리풀이라고도 하는 호밀풀이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도로가 절개지에 참골무꽃이 피었다. 햇빛이 워낙 강렬해 사진찍기가 쉽지 않다. 엘시디도 잘 보이지 않고...

 

 

 

 

장산곶 앞바다 인당수에서 몸을 던졌다는 심청을 기념해 세운 심청각.

 

건물의 오른쪽에는 심뱃전에서 몸을 던지기 직전 얼굴을 가리기 위해 치마를 둘러쓰려고 하는 심청상이 세워져 있다. 

 

 

 

이 섬이 심청전의 무대라고 하는데, 심청이 몸을 던진 인당수가 장산곶 앞바다였고 심청을 태운 연꽃이 해류를 타고 흐르다가 콩돌해안 서쪽 연화바위로 불리는 섬에 떠올랐다고 한다.

 

그런데 심청각을 짓게 되었을 때 우상숭배라 하여 반대시위가 몹시 격렬하였고 한다. 목사들이 앞장섰으니 대부분이 기독교인인 섬사람들이 나서게 되었던 모양이다.

 

 

바로 눈 앞에 보이는 저 땅이 몽금포타령의 무대이자 장자못 전설이 있는 용연 땅이 자리잡고 있는 장산곶이다.

 

 

 

 

바로 눈 앞에 펼쳐진 북녘땅을 바라보는 마음이 야릇해진다. 통일의 날이 가까워졌구나 싶었는데 저 바다 건너 땅이 다시 멀어진 듯 아득한 느낌이다. 중국을 통하지 않고 백두산을 가게 되었다고 설레었는데, 남북관계를 어디까지 퇴행시킬 것인지...

 

 

심청각 2층 긴의자에 앉아 북녁땅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열려진 창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들어온다. 찾는 사람들도 별로 없으니 그냥 한잠 늘어지게 잠이나 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그럴 수야 있겟는가. 

 

 

심청각 뜰에는 개미자리들이 군락을 이루고 좁쌀처럼 작은 꽃들을 흐드러지게 피웠다. 

 

 

 

 

다시 터덜터덜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온다. 진촌 마을에는 큰조롱이 집 울타리를 타고 있기도 하고 밭에서 재배하기도 한다.

 

여행 하는 동안 백령도 곳곳에서 큰조롱은 흔하게 만날 수 있었다. 

 

 

 

 

심청각을 내려와서는 바로 두무진으로 갈까 하다가 따가운 햇살이 부담되는 데다가 걸어야 할 거리도 만만찮은 듯해 그냥 가까운 고봉포구와 사자바위를 다녀오는 것으로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