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일기

고향 산골의 풀꽃나무들/ 산초나무, 가래, 사위질빵, 금불초, 큰조롱, 자귀나무

모산재 2009. 7. 30. 11:14

 

고향 산골의 풀꽃나무들/ 산초나무, 가래, 사위질빵, 금불초, 큰조롱, 자귀나무

2009. 07. 19. 일요일

 

 

 

 

주말, 두 달만에 찾은 고향,

 

장마 기간이라 비가 많이 왔겠거니 했는데 비가 자주 오긴 해도 개울물이 날 만큼은 오지 않았단다. 바람없는 후텁지근한 날씨, 선풍기를 틀어놓고 늙으신 어머니가 차린 늦은 저녁밥을 먹는다. 식사를 잘 하시고 건강도 나쁘지 않게 보여서 마음이 놓인다. 

 

잠결에 빗소리가 시끄럽다 했더니 자고 일어난 아침에도 비가 좍좍 내리고 있다. 집앞 개울로 나가보니 우거졌던 달뿌리풀과 고마리 등 물풀이 불어난 개울물에 잠겨서 쓸리고 있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오지 않았던 큰비가 마침 내가 찾은 날 하늘이 뚫린 듯 시원스럽게 내린 것이다.

 

 

오전 10시쯤에야 빗줄기가 가늘어진다. 숫돌에 낫을 간 다음 괭이를 메고  집을 나선다. 아버지 산소에 가서 잡초를 뽑고 벌초도 하고 그리고 주변 묵은 들도 정리한다. 오랜 장마에 엄청나게 세력을 불린 우거진 잡초들과의 사움에 땀 뻘뻘 흘리며 일하다가 손과 팔이 풀잎에 쓸려 쓰리고 부주의로 손가락도 베이고...

 

 

 

오후에  일을 나서면서 카매라를 들고 나섰다. 풀꽃나무 탐사도 겸사겸사로...

 

개울물은 그 새 많이 빠졌다. 흐드러지게 꽃망울을 단 누리장나무가 비 때문에 잠시 개화를 멈칫한 듯한 모습이다.  

 

 

 

 

네발나비 한 마리가 한삼덩굴 넓은 잎사귀 위에 앉아서 젖은 날개를 말리고 있는 모양이다.

 

 

 

 

노박덩굴을 타고 오른 댕댕이덩굴이 연노랑 꽃을 피웠다. 자세히 보니 수술만 잔뜩, 수꽃이다.

 

 

 

 

노박덩굴의 열매는 한참 익어가는 중...

 

 

 

 

요 녀석은 냄새가 강한 염주괴불주머니, 밭두렁이라 낫질을 할 때마다 새로 자라난 줄기에서 꽃이 늘 새로이 피는 게 아닌가 싶다.

 

 

 

 

강렬한 주황색 참나리 꽃들이 곳곳엔 피어 푸른 빛만 가득한 개울의 단조로움을 깨뜨리고 있다.

 

 

 

 

산초나무 꽃들이 활짝 피고 있다. 이 녀석도 전부 수술만 보이니 열매를 맺지 못하는 수나무이다.

 

 

 

 

지난해 군락을 이루며 흐드러지게 꽃을 피웠던 바늘꽃이 생각나 살펴보니 어찌된 일인지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개울가 덤불에는 하늘타리(이곳 사람들은 하늘수박이라고 하는데...) 덩굴이 가득 덮고 있는데, 술 같은 아름다운 꽃잎이 비에 젖어 이지러져 버렸다.

 

 

 

웅덩이에는 가래가 꽃이삭을 수면 위로 밀어올리고 있다.

 

 

 

 

야생의 쥐똥나무를 타고 사위질빵도 꽃망울을 터뜨리고...

 

 

 

 

무덤이 있는 풀밭에는 금불초가 환하게 꽃을 피웠다.

 

 

 

 

산초나무보다는 개화가 훨씬 빠른 초피나무(고향에서는 제피나무라고 부른다.)는 이미 열매가 굵었다.

 

 

 

 

풀섶에서 가늘고 길게 자란 이 풀은 무엇일까.

 

 

 

 

마는 이제야 꽃을 피우고 있다.

 

 

 

 

박주가리가 아닌 큰조롱이 커다란 열매를 달고 있는 걸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어릴 때 이곳에서 보았던 기억이 생생했던 큰조롱을 요 몇 년간 관찰하지 못해 안타까웠는데, 지난 겨울 큰조롱으로 여겨지는 열매를 확인했는데 요 한 녀석이 제대로 자라난 것인가 싶다.

 

  

 

 

 

개도둑놈의갈고리는 아직 꽃을 피우려는 생각이 없나 보다.

 

 

 

 

개도둑놈의갈고리 잎에 창나방 한 마리가 눈에 띄게 앉아 있어 얼른 카메라를 들이댄다.

 

 

 

 

자귀나무 꽃이  한창... 여름 냄새가 물씬 풍기는 풍경을 만들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풀뽑기를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시원한 음료수를 준비하고 오셨다. 그리고 함께 풀뽑기를 한다.

 

 

 

 

어머니가 일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가족이 함께 일하며 쳐다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하나의 풍경을 만들었던 시절을 떠올려 본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들. 그래도 지금 내가 어머니와 하나의 풍경을 만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