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산골의 상사화, 실새삼, 며느리배꼽, 좀가지풀, 긴꼬리명주나비, 제이줄나비, 보풀, 수염가래
2009. 07. 20. 월요일
자고 일어난 아침은 언제 그랬나 싶게 화창하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에 마음도 활짝 갠 듯 상쾌하다. 오늘은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날, 아침 일찍 서둘듯 떠나면 어머니가 서운해 하실 것 같기도 해서 좀 천천히 가기로 한다.
우물가엔 상사화가 환하게 피었다.
오전 반나절 산책 삼아 가까운 산과 들을 돌아보기로 하고 다시 집을 나선다.
비가 계속 내린 탓인지 옥수수 수꽃이 우산처럼 기를 펼치지 못하고 저렇게 수꽃 이삭을 커튼처럼 드리우고 있다. 옥수수 수염이 암꽃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보니 옥수수 열매와이삭과 수염이 수꽃 아래에서 가루받이를 하기에 꼭 알맞은 곳에 자리잡고 있지 않은가….
윗동네를 향해 길모퉁이를 도는 도롯가 집 담장에 능소화가 화려하게 피었다.
내 키만큼 높이 자란 망초를 타고 오른 둥근잎나팔꽃이 한 송이 꽃을 피우고 있다. 아득한 그리움이여….
새콩 덩굴이 기고 있는 젖은 풀섶 아래에 달팽이 한 마리 슬로비디오로 기고 있다. 널널한 시간의 흐름이여….
콩과식물이든 아니든 가리지 않고 빌붙으며 여기저기 무더기로 덩굴을 뻗으며 자란 외래종 기생식물 미국실새삼도 꽃을 피웠다.
며느리밑씻개, 좁쌀만큼 작은 꽃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요렇게 화사하고 아름답다.
며느리밑씻개와 구별이 쉽지 않은 며느리배꼽도 꽃이 피었는데, 아 이렇게 꽃잎을 연 것을 보는 것은 아마도 처음이지 싶다. (많이 닮은 두 풀이지만 잎자루가 달린 위치, 턱잎모양, 꽃의 색깔 등을 비교해 보면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달개비라고 불렀던, 흔하디흔한 닭의장풀도 담아본다. 파란 꽃잎도 시원스럽지만 저 놈의 암술과 수술이 좀 매력적인 것이 아니다.
산을 향해 오르는 야산 잡풀들이 많이 자라는 언덕길에는 바위솔이 자라고 있다. 추석 무렵이면 쓴풀처럼 멋진 하얀 꽃들을 피우겠지.
이렇게 둥근 열매가 달리는 대추라면 묏대추나무가 아닐까 싶다.
배롱나무 꽃이 환하게 피었다.
배롱나무 꽃을 담고 돌아서는데 발밑에 보이는 노란 꽃, 집을 나서고 나서 논밭 언덕에서 그토록 찾으려고 애를 섰던 좀가지풀을 이렇게 우연한 곳에서 만난다. 그것도 들이 끝나고 산으로 접어드는 곳에서….
노란 꽃잎과 다섯 개의 술이 저렇게 예뻤나, 새삼 느끼면서 자꾸만 들여다 본다.
바로 옆산 발치엔 경운기가 버려져 있고 그 위를 환삼덩굴이 덮었다. 버려진 농촌현실을 보는 것 같아 잠시 우울이 내 심장을 찌르르 지나간다.
산길로 접어들자 장마에 돋아난 이런 저런 버섯들이 눈에 띈다. (눈에 띄는 대로 사진에 담았지만 이름을 모르는 것들이라 따로 정리하기로 한다.)
풀꽃나무들은 별다른 것이 없어 꽃이 지고 난 노루발풀, 매화노루발풀 등 몇 가지만 담고 산을 벗어나기로 한다. 이곳에 이렇게 지천으로 많은 노루발풀을 꽃 피는 시기에 한번도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노루발풀
매화노루발풀
꽃이 지고난 애기풀
.
이 어린싹은 삽주로 보면 될까…?
띠밭골로 오르는 개울가엔 석잠풀이 더러 보인다.
오래종인 주홍서나물이 어째서 이 깊은 골짜기에까지 번성하게 됐을까. 벌써 꽃이 지고 있는 모습까지 보인다.
뜻밖에 만난 나비는 처음 보는 것이다. 날개의 검은 무늬와 아주 긴 두 꼬리, 그리고 붉은 점 들이 아주 인상적인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꼬리명주나비이다. 잠시도 가만 있지 않고 날아다니는데 내 신발에 잠시 앉았을 때 순간 포착에 성공한다. 나는 모습이 특이해 마치 물을 거슬러오르는 물고기 같은 모습이다. 연을 보다 높이 상승시키기 위해 연줄을 잡아챌 때에 끄떡끄떡 솟아 오르는 연의 모습 같기도 하다.
이 녀석은 수컷인데 암컷은 날개 색깔이 거의 검정에 가까워 암수가 아주 대조적이다. 그리고 애벌레가 쥐방울덩굴을 먹이로 한다는데 이곳에는 쥐방울덩굴이 자생하는 걸 본 적이 없어서 이 녀석의 출현이 의아스럽기만 하다.
가죽나무 그늘에 쉬고 있는 제이줄나비를 만난다. 제일줄나비는 흔해도 제이줄나비를 만나기가 어렵다고 하던데 어찌된 일인지 제일줄나비는 만나지 못하고 제이줄나비만 여러번 만난다.
워낙 닮은 모양이라 제일줄나비와 제이줄나비를 구별하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닌데, 윗날개의 중간 세 흰 점 중 가운데것이 길면 제이줄나비 세번째 것이 길면 제일줄나비라고 한다. 또 뒷날개의 흰무늬 아래에 검은 점이 또렷한 것이 제이줄나비라고 하는 설명도 있다.
가중나무 열매의 날개가 이렇게 화려한 색깔인 것은 처음으로 본다.
논두렁 곳곳엔 수염가래가 꽃을 피우고 있다.
황새냉이인지.
따가운 늦은 오전의 햇살 아래 논에서는 잎이 좁고 긴 것이 아마도 보풀이지 싶은(벗풀이 아니라) 녀석들이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이렇게 한 바퀴 산과 들을 돌아보고서 집에 들어오니 벌써 11시가 넘었다. 서둘러 씻고 시외버스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선다. 뭐든 한 가지라도 더 챙겨 주려는 어머니의 맘을 아주 뿌리치지 못하고 풋고추 한 꾸러미만 배낭에 챙겨 넣고서…. 점심은 먹고 가지, 하는 어머니의 말은 별로 식욕을 느끼지 못해 그냥 못 들은 척한다.
기어이 도로에까지 나와서 배웅하는 어머니를 뒤로 하고서 차는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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