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아늑한 우포늪과 양파 심는 사람들

모산재 2009. 1. 7. 00:39

 

아늑한 우포늪과 양파 심는 사람들

 

2008. 10. 31. 금

 

 

 

 

해가 반쯤은 기운 시간이 되어서야 낙동강을 건너고 먼지 자욱하게 일어나는 비포장길을 얼마간 달려서 우포늪에 도착한다.

 

늪의 물이 제방 사이로 흐르는 긴 물길을 따라 이어지는 곳, 나중에 확인해 보니 '쪽지벌' 방향인 듯하다. 처음으로 찾아 제방 위에서 바라보는 우포늪은 국내 최대의 자연늪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전망이 시원스럽고 아늑하다.

 

 

 

 

 

바로 앞 一자로 벋은 물길이 오른쪽으로 흘러들며 토평천을 이루고 낙동강으로 빠져나간다.

 

 

 

 

그냥 하나의 커다란 늪인 줄 알았던 우포늪은 한가운데 넓다랗게 자리잡은 우포를 중심으로 바로 눈앞에 보이는 규모가 가장 작은 '쪽지벌'과 물이 맑고 수심이 깊어 보이는 기다란 '목포', 작은 습지로 보이는 '사지포' 등 크게 네 개의 늪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현재도 거대한 습지이지만 예전의 우포늪은 주변에 크고 작은 늪들이 더 많았던 모양이다.

 

 

 

▼ 우포늪, 토평천, 낙동강

 

 

 

 

 

물길이 흘러나가는 토평천 제방 끝없이 펼쳐지는 흙길을 따라 걸으며 대자연이 선사하는 편안하고 아늑한 즐거움을 만끽한다. 우포늪을 찾는 사람들이 대개 전망대가 있는 쪽으로 몰려가는데 풍광이나 전망이 정말 아름다운 곳은 이 쪽이라고 사촌은 설명한다.

 

 

 

 

도깨비바늘에 노란 혀꽃(설상화)이 보이지 않아 혹시 울산도깨바바늘이 이곳에도 자생하는게 아닌가 싶다.

 

 

 

 

 

창녕군 4개면에 걸쳐 형성된 7.5㎞ 둘레에 70여 만 평의 넓이를 가진 자연습지 우포늪은 1997년 생태계 특별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고 이듬해 봄 람사협약 보존 습지로 지정되었다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런 거대한 늪지가 생겼을까? 공룡들이 이 땅에 득실거리던 1억 4천만 년 전, 빙하가 녹아 낙동강의 물이 범람하면서 실려 온 모래와 흙이 토평천 입구를 막고, 빠져나가지 못한 물이 갇히면서 커다란 자연습지, 지금의 우포늪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포장되지 않은 둑길은 억새 군락으로 터널을 이루는데 높지 않은 크고 작은 산들에 포근히 안긴 늪지의 풍경이 정겹다.

 

 

 

 

 

때로는 흐르고 때로는 고이는 물들이 얕고 깊은 땅을 만나 이룬 자연 습지는 숱한 생명들의 서식처가 된다.

 

소, 소택, 소택림 등 호수에서 육지로 되는 과정의 여러 단계가 나타나는 우포늪은 종 다양성의 보고로 우리나라 전체 식물의 약 10%에 해당되는, 습지식물 110종류를 포함 총 435종류의 식물이 살고 있다고 한다.

 

식물 외에도 참몰개 각시붕어 칼납자루 등 6종의 고유종을 비롯하여 28여종의 물고기가 살고 있고, 텃새 20종, 여름 철새 17종, 겨울 철새 25종 등 다양한 새들이 날아드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을숙도를 찾던 철새들이 주남저수지로, 그리고 최근에는 주남저수지로 몰려들던 철새들이 이곳 우포로 옮기고 있다고 한다.

 

 

 

 

 

둑방 너머쪽 넓은 들판으로 고개를 돌리니

농사꾼들이 쪼그려 앉아 멀칭을 한 이랑에 양파를 심고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그러고 보니 창녕 땅으로 들어설 무렵부터 양파밭이 유난히 많다 싶었다. 

 

 

 

 

 

 

 

이곳 사람들은 양파와 마늘 농사를 많이 짓고 산다는데,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 성씨고가와 인연을 맺고 있다고 한다.

 

1850년대에 이 곳에 터를 잡은 성부자집은 흉년에 쌀을 나눠 주기도 하고 강습소를 세워 근대적 교육에도 힘쓰는 등 지역 신망이 두터운 명문가였는데, 성낙안, 성재경 부자가 양파를 도입 연구하고 보급에 힘써 한국전쟁 뒤에는 창녕의 특산물로 대중화시켰다는 것이다.

 

사촌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처 성혜림이 아버지를 따라 월북하기 전에 살았던 곳이라고 귀띔해 주는데, 문득 근대사의 질곡이 그곳은 제대로 비켜 나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씨 집안 사람들은 <태백산맥>의 '김범우' 같은 인물들이었을까...

 

 

 

 

 

 

쪽지벌에서 한참 멀어진 곳에서 바라본 토평천은 주변 곳곳이 갈대와 억새, 버들로 군락을 이루며 늪지와 다름없는 아름다운 자연 생태 환경을 이루고 있다.

 

지도를 통하여 살펴보니 토평천은 창녕군 열왕산에서 발원하여 서쪽을 향해 흐르다가 우포로 흘러 들어와서 다시 쪽지벌에서 빠져나가 낙동강과 만나는 개울로 낙동강과 우포늪을 연결하는 거대한 통로를 이루고 있다.

 

 

 

 

 

 

되돌아온 쪽지천 뚝방에서 서서, 양파를 심는 사람들의 모습을 한동안 바라본다.

 

품앗이인지 아니면 삯일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저렇게 함께 하는 노동이라면 신명까지는 아닐지라도 외롭지는 않으리라. 어머니나 큰어머니, 그리고 고향 동네 노인들의 외로운 노동을 떠올리며 저 풍경에서 평화로움을 느꼈다고 그리 죄스러워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안도감이 든다

 

 

 

 

 

쪽지벌과 토평천 둑길에서의 산책을 마치고 늪지를 돌아서 맞은 편에 있다는 사촌동생의 산으로 이동하기로 한다.

 

5분도 채 못 가서 남북으로 길게 걸쳐 있는 '목포'라는 늪을 만나는데 쪽지벌과는 달리 하늘을 그대로 비추고 있는 호수의 모습을 지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 왕버들 수림지역이 그렇게 보고 싶은 가시연꽃 군락지라고 한다. 잎이 2m가 넘는 것도 있는 우리 나라 식물 중 잎이 가장 큰 가시연꽃은 현재 전국 44곳에만 생존하고 있는 멸종위기종이다.

 

'목포'를 지나 '사지포'를 돌아보는 것으로 오늘의 우포늪 여행은 끝내기로 한다.

 

 

 

 

 

우포늪을 돌아나오면서 자꾸만 머리속에 떠오르는 합천의 정양늪...

 

 

황강과 넘나들며 온갖 풀과 나무, 곤충, 물고기, 새 그리고 인간을 품에 안던 아름다웠던 자연늪 정양늪은 무분별한 매립으로 흉측한 쓰레기장으로 변해버리지 않았던가.

 

마침 람사회의가 개최 중이라 우포늪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길은 교통 통제를 하고 있어, 샛길을 통하여 사촌동생의 산으로 찾아가야 했다.

 

그 도중 아름답고 기품 있는 고가를 지나치게 되었는데, 사촌동생은 바로 성혜림이 자라난 성씨고가라고 일러 준다. 시간이 된다면 둘러 보았으면 좋으련만...

 

 

 

 

 

※ 우포늪 안내도(창녕군청 자료 편집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