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궁유의 멋드러진 암벽 절경 봉황대, 그리고 일붕사
2008. 10. 31
자굴산을 내려와 궁유로 향하는 국도를 달리는데 멀리 도로 오른쪽으로 병풍처럼 펼쳐지는 멋드러진 바위 절벽이 나타난다. 처음 보는 풍경에 감탄하고 있는데 사촌동생이 그 앞에서 차를 세운다.
궁유 마을을 사이에 두고 자굴산 찰비계곡이 흘러내린 넓은 개울가에 선 바위, 이 바위를 봉황대(鳳凰臺)라 부르는 모양이고, 그 곁에는 특이한 인상의 절집들이 들어서 있다.
봉황대의 수려한 풍경
봉황산이 타고 내려와 하천을 만나는 곳에 절벽을 이루며 만들어진 봉황대에는 불법의 터전이 이룩된 신라시대에 신선들이 하늘에서 봉황을 타고 내려와 약수를 마셨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병풍처럼 둘러선 봉황대 아래에 자리잡은 일붕사
절 앞에 늘어선 비석을 보고 이 절이 일붕 서경보 스님이 세운 본찰임을 처음으로 알게 된다. 세운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절에 웬 비석이 그리도 많이 놓여 있는지, 즐비하듯 쌓아 세운 돌탑들과 함께 수양도량 절집답지 않은 번잡한 느낌을 준다. 그냥 공원으로 산책하며 즐긴다면 괜찮은 공간이란 생각은 들지만...
절집은 대웅전, 무량수전, 조사전, 약사전, 나한전, 산신각, 종각 등을 두루 갖추고 있는데 최근 창시된 색다른 불교 종파이어선지 전통적인 가람배치와 다르고 절집의 모양이나 경내의 분위기 등등이 많이 낯선 모습이어서 다소 거북스럽다.
수려한 봉황대의 절경과 조화를 이룬 아늑한 느낌보다는 억지로 꾸민듯한 인위적인 공간 배치가 불협화음처럼 불편하게 다가온다.
잘 아는 바가 없어 찾아보니, 일붕(一鵬)은 조계종 불국사 주지를 지내고 동국대 불교대학에 있던 서경보 스님으로 20년 전인 1988년 대한 불교 일붕선교종을 새로 열어 75세의 나이로 초대 종정으로 추대된 바 있고 79세의 나이에 세계불교 법왕청을 만들어 초대법왕이 되었다가 1996년 입적한 분이다.
고속도로 휴게소 곳곳에 세운 '남북통일기원탑'을 본 사람들은 많을 것이니 거기 비문을 새긴 분이 바로 일붕 서경보 스님이다.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일에 물심을 아끼지 않은 스님의 공적은 높이 기릴 만하다.
"세계 최대 동굴법당으로 영국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고 하는 동굴 법당은 이름 그대로 봉황대 절벽 아래 부분을 넓게 파내어 부처를 모셨다. 모셔진 불상은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광명의 법신불 비로자나불이다.
지권인(智拳印) : 양손을 가슴앞에 올리고 비로자나불(대일여래)만이 취하는 수인이다. 좌우 엄지를 속에 넣고 다른 네 손가락으로 주먹을 쥔다. 다음에 왼손을 가슴까지 올려 들고 검지를 풀어서 세우며 오른손 주먹 중의 소지로써 왼손 검지의 첫째마디를 잡는다. 그리고 오른손 주먹 속에는 오른손 검지 끝과 왼손 검지 끝을 서로댄다. 이(理)와 지(智), 중생과 부처, 미혹함과 깨달음이 원래는 하나라는 뜻인 수인.
<일붕사 소개>
이 곳은 727년 신라 혜초스님이 창건한 성덕암 자리로, 약 1330년 전에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할 때 최고의 격전지였으며 당시 왕군이 봉황대 영역 안에 이 지역의 수많은 영령을 위로하기 위하여 사찰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태종 무열왕의 삼왕자가 계셨던 궁소 봉황대의 사찰에서 비로자나불을 안치시켜 호국 일념으로 성덕왕의 덕을 기렸고 성덕대왕이 봉황대의 산세가 빼어남과 선당의 얼이 베인 곳을 천추만대에 기념하자는 뜻에서 자신의 왕호를 내려 성덕사라는 귀족적 사찰을 지었다. 그러나 조선 성종25년 국령으로 불사 33개소를 회합함으로서 그 영향을 받아 승려를 학대하고 사찰을 파괴함으로서 봉황대 성덕사는 어쩔 수 없이 사찰을 궁류면 운계리 팔사곡 자사산으로 옮겨 정수암으로 그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1934년 8월 26일 당시의 면장이 산주와 더불어 봉황대의 덕경을 도우기 위하여 벚꽃나무를 심고 관세음보살상과 여래불상을 모셨으나 소실되어 다시 이야용 스님이 법당을 짓고 성덕사라 하였다.
1984년 10월 24일 누전으로 인하여 또다시 성덕사 법당이 완전 소실되었으나 1986년 서경보 스님이 혜운 주지스님을 부임케 하여 이 산 이름이 봉황산이라 산의 기가 너무 세어 사찰이 부지 못하니 기를 줄이기 위해 굴을 파야 한다고 하시므로 주지스님이 불사를 이룩, 사찰명을 일붕사로 명명하여 현재는 동양 최대의 동굴법당 138평과 90평 규모의 동굴 무량수전이 완공되어 불자들의 소원성취를 위한 기도 도량으로 하루 평균 2백여명의 불자들이 오고 있다. (일붕사 홈페이지에서 발췌)
절마당에서도 버릇처럼 풀꽃들에 눈길을 건네는데
어라, 이 녀석은 꽃잎에 털이 있는 특이한 쥐꼬리망초가 아닌가!
'털쥐꼬리망초'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 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돌아나오면서 보는 암벽에는 아이비인지 담장덩굴 송악인지 알 수 없는 덩굴이 보기 좋게 덮혔다.
절 바로 오른쪽에는 일붕실버랜드라는 양옥 건물이 바짝 붙어 서 있는데 노인들을 위한 시설을 둔 것이 아름다운 배려임에도 풍광과 절집에 어울리지 않아 안타깝다.
절을 나와 예전 이곳에서 근무했던 동생이 자주 찾았다는 궁유양조장에서 막걸리 한 잔을 마시며 잠시 여유를 찾는다.
그리고 우포늪을 향해 창녕을 향해 달리다가 점심 식사를 위하여 남지읍 고곡의 한 식당을 찾는다. 허름한 시골 뒷마당 곁에 숨은 듯이 자리잡은 '산수식당'.
백반정식을 시켰는데 된장찌게와 나물 등의 음식은 놀랍게 구수하고 맛깔스러웠다.
그리고 오후의 절반이 넘어가는 시간에야 우포늪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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