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마곡사(2) 대광보전과 대웅보전, 5층석탑

모산재 2008. 11. 21. 00:35

 

천왕문을 지나자 태화천이라는 내가 나타나고, 극락교라는 다리를 건너서 비로소 본당으로 들어서게 된다.

 

해탈문과 천왕문을 지나면서 금강역사와 사천왕의 검열을 받고 이제 부처님을 뵈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셈이 된다. 그러니까 태화천을 건너기 전까지는 세속의 먼지를 털고 마음을 가다듬는 공간이 될 것이고 극락교를 건넌다는 것은 바로 부처님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남녀 노소 수많은 사람들이 극락교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다리 입구 오른쪽에는 특이한 나무가 보여 눈길을 끈다. 아름드리 나무 줄기는 썩어 사라져 버리고 보존 처리된 남은 밑둥치에서 자라난 가지만 남아 있는 모습이다. 줄기와 잎의 모양을 보아 물푸레나무 종류로 보이는데, 원 줄기가 살아 있을 때는 위엄이 대단하지 않았을까 싶다.

 

 

 

 

 

락교 건너 오른쪽으로는 종고루가 있다. 팔작지붕이 겹으로 이어진 건물의 형태가 이채롭다.

 

 

 

 

 

그리고 시원스레 넓은 절마당을 거느린 마곡사의 본당 대광보전이 나타난다. 마당 정면에는 특이한 양식의 오층석탑, 뒤편 언덕에는 대웅보전 2층 지붕이 일직선을 이루며 배치되었다. 정면 오른쪽 건물은 요사채인 심검당

 

 

 

 

 

대광보전은 조선 후기(1788년)에 지은 것으로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이다.(보물 제802호). 너른 절마당에 높지 않게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이 참 편안하게 보인다. 그 위에 앞면 5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이 앉은 모습은 또 얼마나 아담한가. '大光寶殿'이란 현판의 글씨는 조선 후기의 빼어난 서화가 표암 강세황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광보전의 특이한 점은 내부의 불단을 서쪽에 설치하고 그 위에 비로자나불을 동쪽을 향해 앉혔는데 드물게 부석사 무량수전이나 불갑사 대웅전에서도 본 적이 있는 양식이다. 사바 세계에서 서쪽으로 10만 억 불국토를 지나면 이상적인 정토인 극락세계가 있다고 하는데, 그러한 극락세계에 대한 기원이 반영된 양식이 아닐까 한다.

 

 

 

 

 

동쪽에 열려진 문을 통해 멀리 서쪽 불단에 앉은 부처님을 만난다.

 

 

 

 

 

왼손 검지를 곧추 세운 위에 오른손 검지 위에 맞댄 지권인(智拳印)을 결하고 있는 모습이 바로 비로자나불의 상징이다. 지권인은 일체의 번뇌를 없애고 부처님의 지혜를 얻는다고 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속설에는 오직 하나인 진리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형식을 띄게 되었다고도 한다. 비로자나불은 이 세상에 나타난 모든 부처의 원래 모습인 진리 자체를 상징하는 법신으로 태양이 모든 만물에 평등하게 빛을 비추듯 광명의 부처인 것이다.

 

 

다시 대광보전 서쪽의 열린 문을 통하여 내부를 들여다보는데, 거기에 거대한 백의관음도 벽화가 그려져 있지 않은가. 바로 비로자나불이 앉은 벽의 뒤편에 말이다.

 

 

 

 

 

그런데 이 벽화에 대해서는 어디에서도 제대로 설명해 놓은 자료가 보이지 않아 의아스럽기 짝이 없다. 문화재청 문화재정보센터에도 문화재 자료로 등록되어 있지 않은 정도이니... 대광보전 외벽의 포벽에도 백의관음도가 그려져 있다는데 시간에 쫓겨 미처 살피지 못하고 지나치고 만다.

 

그리고 또 하나 지나치지 못하고 발길이 오래도록 머문 것은 역시 대광보전 서편의 벽화들 앞이다.

 

 

 

 

 

서쪽 문지방 위에 그려진 벽화는 전혀 불교적이지 않은 장면인데 무엇을 그린 것인지 내 능력으로는 알 길이 없다.

 

 

 

 

 

가운데 벽면에 그려진 네 명의 신장상은 또 무엇일까. 인왕(금강역사)상과도 좀 달라 보이는데...

 

 

 

 

 

대광보전 앞마당에 놓인 오층석탑(보물 제799호. 높이 840cm). 다른 석탑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 눈에 띈다. 우선 탑이 전체적으로 체감률이 적어 안정감이 부족해 보이고 상륜부의 모양이 일반 석탑 양식과 다른 데다 청동제라는 점이다. 이는 원나라의 라마식 보탑과 비슷한 모습인데 이는 고려 후기에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탑 2층의 4면에 모두 불상을 새긴 점과 옥개석의 반전이 심한 점도 눈에 띈다.

 

 

 

 

 

위의 장면 왼쪽, 멀리 보이는 향나무가 김구 선생이 심은 나무. 한때 이곳 백련암에 은거한 적이 있던 김구 선생이 해방 이후 이곳을 다시 찾았다가 대광보전 주련에 <却來觀世間 猶如夢中事(각래관세각 유여몽중사)>라고 씌어 있는 구절에 은거 시절의 회상에 잠기며 심었다고 한다.

 

 

2층 탑신 벽면에 새겨진 불상

 

 

 

 

 

절마당 서쪽 끝에 선 참죽나무

 

 

 

 

 

대광보전 뒤편 높은 언덕 위에는 2층으로 된 대웅보전(보물 제801호)이 자리잡고 마곡사 전체 경역을 굽어 보고 있다. '大雄寶殿'이라는 현판의 글씨는 김생(金生)이 직접 쓴 것이라고 전해진다는데, 글쎄 그 많은 전란과 화재 속에서 현판만 무사히 남을 수 있었을는지...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봉안한 전각인데 '대웅'은 인도의 옛말 '마하비라'를 한역한 것이라고 한다. 석가모니를 위대한 영웅, 즉 대웅이라 일컫는 데서 유래한다. 주존불인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와 보현 두 보살을 봉안하는데 격을 높여 '대웅보전'이라 할 때는 석가모니불의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모시며, 각 여래상의 좌우에 제각기 협시보살을 봉안하기도 한다.

 

마곡사의 대웅보전은 그리 흔하지 않은 중층건물을 배치함으로써 공간적으로 향천적(向天的)인 위계감을 표현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무량사 극락전과 유사한데 규모만 약간 작다.

 

 

 

 

 

대웅보전 내부 싸리나무라고 알려진 기둥은 절을 찾는 사람들마다 잡고 돌아 손때가 많이 묻어 있다. 이는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마곡사 기둥을 몇 번이나 돌았느냐?"고 묻는다는 전설 때문이라고 한다. 전설은 전설일뿐 기둥 나무가 관목인 싸리나무일 순 없을 것이다.(사실은 느티나무라고 한다.) 기둥이나 부재들이 싸리나무라는 전설이 있는 절이 또 얼마나 많은가...

 

 

대웅보존의 내부 삼존불

 

 

 

 

대웅보전 앞 언덕에 자라는 개오동나무(향오동나무)

 

 

 

 

 

 

다른 전각들과 부속암자들도 돌아보고 싶은데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다. 앞서 간 일행들은 시야에서 멀어진 지 오래인데 더 이상 머물 수 없어 아쉬움 남긴 채 바쁜 걸음으로 산사를 벗어난다.

 

 

 

 

 

※  마곡사 석가모니 괘불탱(보물 1260호) -문화재정보센터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6대보살, 10대제자, 제석천과 범천, 사천왕, 천자, 아수라, 용왕 등이 좌우 대칭으로 화면 가득히 그려진 모습이다. 석가모니불은 용화수가지를 양 손에 받쳐 들고 있는 모습으로 손이 다른 신체 부분에 비해 크게 그려져 있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光背)는 둥근 머리광배와 배(舟) 모양의 몸광배로 구분되는데 머리광배에는 작은 부처 여러 구를 그려 넣었다.

석가모니불을 좌우에서 협시하고 있는 제화갈라보살을 비롯한 6대보살은 관음·대세지·문수·보현보살로 구성되었으며 10대 제자상과 보향·명월천자가 상단 좌우 끝에 그리고 아수라 가루라 용왕들이 배치되어 있다. 남아 있는 글로 보아 시주자를 비롯한 여러 승려와 일반인들이 제작에 참여하였으며 석가탄신일 외에도 수륙재와 49재에 쓰였던 그림임을 알 수 있다.

대형화면에 나타난 중후한 형태·화려한 색채 등 17세기 전반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작품으로 본존불을 중앙에 크게 묘사하고 다른 무리들을 주위에 작게 배치하여 석가모니가 일반 대중들을 압도하는 듯한 인상을 전달하고 있다.

삼신불 가운데 석가불을 노사나불과 동일하게 보살형으로 형상화한 독특한 형태의 그림이며 ‘천백억화신석가모니불’이란 석가의 존명과 함께 각 상들의 명칭도 기록되어 있어 불화 연구에 더욱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