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꽃과 단풍이 어우러진 늦가을 자굴산
2008. 10. 31
사촌 동생의 권유로 낮 시간 동안 창녕 주변 지역을 함께 돌아보기로 한다.
나무를 가꾸겠다고 사들인 산이 우포늪 가까운 곳에 있는데 돌아볼 겸
자굴산, 우포늪 등을 두루 구경이나 하자 한다.
삼가, 쌍백으로 이어지는 구불구불 여유롭게 달리는 길이 운치를 더하는데
불타는 은행나무 단풍이 터널을 이루어 절로 가을의 감흥에 젖어들게 한다.
쌍백을 지나 자굴산과 이어지는 가파른 고갯길이 한동안 이어지고
고개를 넘어서자 바로 의령 땅의 북쪽 외진 궁유면의 산골마을 대현 마을이 나타난다.
그리고 고개를 내려선 궁유 마을,
단풍보다 아름다운 선홍빛 감들을 주렁주렁 단 감나무 풍경이 인상적인데,
사촌동생이 들려주기를 5공시절 사귀던 여자의 부모들이 결혼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불켜진 집들마다 마구 총을 쏘아 수많은 사상자를 냈던 비극의 우순경 사건이 있었던 마을이라 한다.
작은 마을이지만 이 때의 상처를 달래주기 위해 면소재지에는 있을 보건소가 세워져 있다.
오른쪽 골짜기로 꺾어서 자굴산 쪽 골짜기로 향하다
사촌동생이 관리하였다는 벽계저수지를 잠시 들른다.
저수량이 상당해 보이는 풍광 아름다운 저수지 상류는 벽계계곡(찰비계곡)으로 이어져 야영장과 민속촌, 숙박시설 등이 들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모양이다. 봄한철 저수지를 따라 길가에 늘어선 벚나무 꽃이 만발할 때면 호수와 어울려 제법 장관을 이룰 듯하다.
저수지 둑을 따라 바람을 쐬다가 사위질빵 열매를 담아본다.
꽃이 희미한 털진득찰에게도 눈길을 한번 주고...
다시 차를 타고 오르는 계곡길은 좁고 구불구불 길기만한데,
바위 사이로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의 풍광은 시간 여유만 있다면 걸으며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무더운 여름날에도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흘러내린다 해서 찰비계곡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 정상을 이루는 산 이름이 한우산(寒雨山)이다.
지그재그 비포장 임도를 따라 오른 길에는 여러 종류의 쑥부쟁이와 들국화 등 많은 꽃들이 싱싱하게 피었는데,
혼자라면 시간을 잊고 즐기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음이 얼만 아쉬운지...
차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 정상 아래에 이르니,
탁트인 시야에 철늦어 다소 퇴색하긴 하였지만 단풍산이 아름답게 다가선다.
10여 년 전 아름다운 영상과 뛰어난 작품성으로 화제가 되었던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촬영 장소가 이 곳이라고 들은 적이 있는데
과연 길게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펼쳐지는 풍광이 '아름다운 시절'의 아련한 그리움 속에 젖어들게 하기에 충분하다.
단풍든 풍광도 풍광이려니와 내 눈길을 더 사로잡은 것은
임도를 따라 마치 봄날을 맞은 듯 샛노란 꽃들을 활짝 피우고 늘어선 개나리들이다.
정상 가까운 800고지 서늘한 늦가을 바람 속에 피어난 봄꽃 개나리!
"오기 쉽지 않을텐데 자굴산 정상을 올라보지 않겠느냐?"는 사촌동생의 말에
지리산의 최고봉 천황봉이 손에 잡힐 듯하다는 정상의 시원한 조망도 포기하고
우포늪을 가야하는 길이 바쁠 것 같은 마음에 그냥 가자며 서둘러 산을 내려가기로 한다.
신선이 놀고 갔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강선암도,
깎아지른 듯한 절 벽 밑 동굴과 천연수가 고여 있는 금지샘도 둘러 보지 못하고...
이 곳 봄철쭉도 유명하다는데
내년 봄 황매산 야생화 탐사 왔다 한번 들러 볼까 막연히 생각하면서
고향의 산에서 늘 바라보기만 했던, 합천 삼가와 의령 사이의 해발 897.1m의 높은 산,
어린 시절 자수정이 많이 난다는 소문에 병풍처럼 펼쳐진 정상부 바위 암벽에 자수정이 알알이 박혀 있는 장면을 꿈꾸기도 했던 자굴산을 조용히 내려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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