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찾은 고향 들녘의 늦가을 풀꽃들
2008. 10. 31
고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전갈을 받는다.
올해는 무슨 일인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달 지나 당숙 어른의 부음을 듣고
그로부터 또 두 달도 못 되어 고모님의 부음을 듣는다.
늘 정정했던 모습이었는데
심장병을 앓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야 듣는다.
친척들과 함께 밤늦도록 영안실을 지키다가
고향집에 홀로 계실 어머니를 찾는 게 좋을 듯하여
자정을 넘긴 시간에 사촌 동생과 함께 고향집으로 향한다.
자고 일어난 아침 작숫대(바지랑대) 위로 올려다본 하늘이 어찌나 높고 투명한지...
어머니는 자식에게 차려줄 아침상을 위해 남새밭을 찾는다.
어머니가 아침 준비를 할 시간
잡초가 많이 자랐을 것 같아 아버지 산소를 찾는다.
가을걷이로 들판의 벼들은 그루터기만 남고 넉넉한 대지를 드러내었다.
타작을 끝내고 볏짚 무더기 위에 던져 놓은 당그래를 바라보면서
잠시 내게 멀어져가 버린 따스한 시간들의 추억에 잠긴다.
논언덕 돌틈에는 겨울에도 푸름을 자랑하는 봉의꼬리가 지천으로 자라고 있다.
아버지 산소 가까운 언덕에는
찬이슬 머금고 산뜻한 산국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내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는 왜 저 산국이 없는 것인지...
추석 때 꽃으로 만났던 참느릅나무는
그 사이에 단풍이 들었을까 싶은 아름다운 원반형의 열매를 달았다.
벌초를 피할 수 없는 묏등 언덕의 개쑥부쟁이는
어디서나 이렇게 키 낮은 꽃들을 피우게 된다.
한 달이 좀 지나 찾은 아버지 산소에는
가뭄이 심해 잔디는 제대로 번지지 못하고
강아지풀, 지칭개, 개망초, 비노리, 석류풀 등 잡초만 지천으로 자라고 있다.
엄청난 씨앗들을 달고 시들고 있는 석류풀
(오른쪽 위에는 새팥이, 앞쪽에는 땅빈대가 보인다.)
두 시간 정도 앉아서 풀을 뽑다보니 오른손 검지와 중지는 온통 검푸른 풀물로 물들여진다.
아침 햇살에 꿈꾸는 듯 핀 소박한 지칭개꽃
논언덕에 기대어 아침 해바라기하는 주홍서나물꽃
어머니가 차려주는 아침을 맛있게 먹은 뒤 다시 들판을 산책하기로 한다.
마당 끝 담장 아래엔 까마중이 꽃과 열매를 함께 달았다.
산국 흐드러지게 핀 참샘이를 지나 띠밭골 쪽으로 이동한다.
열매를 단 새모래덩굴을 보기는 왜 그리 어려운 것일까...
개울언덕 논가에 가득 자라던 이 풀에서 쑥부쟁이 꽃이 피는 걸 보고 놀란다.
줄기와 잎의 모양이 이전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특이한 모습인데,
벋음씀바귀나 쑥대마냥 땅속줄기가 엉키며 벋어 개체번식하는 느낌이고
다소 구불구불하게 자라난 줄기는 가지를 벌지 않고,
줄기 끝에는 한 송이 꽃만 피운...
이것을 무슨 숙부쟁이라 불러야 할까...
개울가에 선 이 풀은 새로 보면 될까.
그리고 이삭이 구부정한 이 풀은 기름새로 보면 되겠지.
추석때 꽃을 보지 못하여 찾은 바위솔 군락지,
아무리 둘러 보아도 말라버린 바위솔만 보일 뿐...
허탈한 마음에 돌아서려다
다시 한번 돌아본 곳에서 순백색 꽃송이가 보이지 않느냐!
한순간
흰자주쓴풀인가 하고 후다닥 다가서 쪼그리고 앉아 살펴보니
그냥 바위솔이었다.
아마도 벌초 때 꽃이삭이 꺾여 버린 곳에서 피어난 꽃인 모양인데
꽃송이가 보통의 바위솔보다 크고 꽃잎이 시원스레 열려서 꼭 자주쓴풀을 보는 느낌이다.
그리고 아버지 산소가 있는 옆 논바닥에서
왜떡쑥이지 싶은 녀석을 만난다.
띠풀 속에 숨어 해맑게 피어난 개쑥부쟁이
따스한 온기를 호흡하며 겨울나기 준비하는 작은멋쟁이나비
이렇게 들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니
사촌 동생이 어렵게 내려온 길 우포늪이나 구경시켜 줄 테니 같이 가자고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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