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글에서 계속>
단풍산의 풀꽃들 / 담배풀, 조개나물, 그령, 개쑥부쟁이, 꽃향유, 자주쓴풀, 할미꽃, 미역취
2008. 10. 26. 일
남문을 지나 밝은 햇살을 받으며 오르는 고갯길,
올 봄만 하여도 콧노래라도 부르며 걸었으련만 고개가 왜 이리 높아만 보이는지...
고개 위 언덕에서 아름다운 단풍나무 숲이 펼쳐져 있어 한동안 시간을 보낸다.
바로 옆에 피어 있는 산국 꽃도 좀 아름다우냐!
도감에 올렸으면 딱 좋을 담배풀을 만나 증명사진을 여러 장 찍는다.
가을 산에서 만나는 열매들 중에서 팥배나무만큼 정감 가는 게 그리 많지 않으리라.
그리 아름다운 색깔은 아니어도 층층나무 열매도 함께 어울렸다.
암문을 지난 곳에서 꺾여진 줄기에서 꽃을 피운 엉겅퀴도 기억해 주기로 한다.
환한 햇살을 받으며 그령 한 포기가 전신상을 잘 보여 주어서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갑자기 구름 속에 해가 숨어들면서 초점을 잃어 버린다.
아무리 기다려도 해는 나지 않고
전초는 포기하고 이삭 부분만 담고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그령 전초를 담는 게 웬만해서 쉽지 않은데...
한번 사라진 햇살은 다시는 비치지 않는데
이제 묏등이 펼쳐지는 곳으로 이동한다.
사람의 간섭이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죽은자들의 땅 음택이
오히려 햇살 가득한 양택이 되는 역설 속에서
묏등 언덕은 햇살을 좋아하는 풀꽃들, 생명들의 천국이 된다.
꿩의밥이 하얀 솜털을 조금식 나부끼는 걸 보면 겨울이 멀지 않았다는 증거...
햇살 좋은 풀밭 언덕에서는
겨울을 맞이하기 전 봄꽃들이 다시 한번 꽃을 피우는 모습을 만나게 된다.
양지꽃이 봄철만큼은 아니지만 몇 송이 따스한 불꽃을 피워 올렸다.
조개나물이라고 그냥 있을소냐...
여기 저기 금창초마냥 꽃대 없는 꽃들을 몇 송이씩 로젯형으로 피웠다.
벌초로 잘려나간 그루터기에서
다시 키 낮은 꽃대를 올려 피운 개쑥부쟁이의 청초함은 어디에 비할까...
잘려나간 그루터기에서 다시 자란 딱총나무 새 줄기를 모델로 세워 본다.
곱게 자란 미국쑥부쟁이는 저렇게 앉은뱅이로 피지 않을 터!
낫질 당한 상처 위에서 키 작은 가지들을 내어 저렇게 고운 꽃들을 피워냈다.
꽃향유도 바쁘게 여러 가지들을 내어서 저토록 아름다운 꽃들을 뽐내고 있지 않은가.
해는 구름 속에 숨은 지 오래,
시간은 이미 저녁이 되어 가는 시간,
흐드러지게 핀 화사한 개쑥부쟁이 꽃들에도 우울함이 깃드는가 싶은 느낌이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자주쓴풀을 만난다.
주변을 다 둘러 보아도 딱 한 그루만 보이니 이게 웬 조화람...
씨앗을 많이 맺어
내년 이 언덕에 많은 꽃들을 피워 주었으면 좋으련만!
따스한 풀섶에 의지해서 가을 햇살을 다 모은 할미꽃도 이름다운 꽃을 피워냈다.
어둠에 잠기는 개쑥부쟁이가 애처로워 사진 한 장 더 찍고
어둠을 밝히듯 따스하게 핀 미역취를 차~ㄹ~칵
느린 셔터 스피드로 담는데 겨우 성공한다.
가을 단풍, 가을에 피는 봄꽃 구경 잘 한 하루...
나도 고운 단풍 들고
몇 송이 꽃을 피워내야 할 그런 나이가 멀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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