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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나무 일기

제초제에 신음하는 묏등언덕의 가을 풀꽃들

by 모산재 2009. 1. 3.

 

풀꽃나무 공부의 산 교실이 되어왔던 대모산,

그곳에는 많은 무덤들이 따스한 볕바라기하며 옹기종기 모여 앉은 포근한 언덕이 있다.

 

사람의 간섭에 의해 햇살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이 땅에

양지를 좋아하는 온갖 종류의 풀씨들이 날아들어 뿌리를 내리고

4계절 내내 저마다의 빛깔과 향기를 뽐내며 얼마나 많은 꽃들이 피어났던가!

 

죽은 자들의 땅에 환하게 피어나는 생명의 빛깔과 숨결!

 

이 넓은 묘지를 관리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일까만

작년까지만 해도 극히 일부 무덤에만 제초제가 뿌려졌는데

가을꽃들이 한창 흐드러지게 피어나야 할 이 계절에

무덤 언덕은 제초제 세례로 잔디조차 다 말라죽은 완벽한 죽음의 땅이 되었다.

 

이 때쯤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쑥부쟁이, 개쑥부쟁이 꽃들은 흔적도 없고

샛노란 조밥나물 미역취 꽃들도, 보랏빛 잔대 과남풀(칼잎용담) 꽃들도 보이지 않는다. 

 

너무 치명적이어서

어쩌면 내년 봄부터는

더 이상 생명들이 만드는 환희의 세상을 만날 수 없을지 모르리라.

 

 

 

 

 

 

제초제로부터 살짝 비켜선 언덕에 핀 큰벼룩아재비. 

이 계절에 무더기로 피어나던 꽃인데 제초제 때문인지 이 가을에는 드문드문 보일 뿐이다.

 

 

 

가을이면 다시 피어나던 씀바귀,

제초제에 뿌리까지 죽어버린 묏봉오리 위에서 장하게 꽃을 피웠다.

 

 

 

역시 가을볕을 받아 몇 송이 꽃을 피우던 이 곳의 제비꽃,

씨앗을 다는 데 성공한 이 녀석을 발견하고 마음이 따스해짐을 느낀다. 

 

 

 

패랭이 한 포기도 잘 살아남아 주었다.

 

 

 

개솔새 이삭 위에 앉은 두 마리의 부전나비,

부디 새 봄에 피어나는 풀꽃들을 찾아 입맞춤해 주기를...

 

 

 

작은 나방이 포르르 날아 풀잎 밑에 숨는데, 안면이 있는 흰띠명나방이다.

 

 

 

제비꿀이 꽃을 피웠다.

엄연히 땅에 뿌리를 내린 이 녀석을 기생식물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성이 너머 쪽에는 다행히 제초제가 뿌려지지 않았다.

 

쑥부쟁이꽃들이 환하게 피었다.

 

 

 

지지난해 딱 한 개체 보았던 낯선 외풀을 혹시 또 만날 수 있을까 찾은 곳에는

반뼘도 되지 않은 낮은 키로 작은 꽃들을 다닥다닥 피운 쥐꼬리망초만 자리하고 있을 뿐...

 

 

 

풀밭언덕 곳곳엔 무릇 마른 씨앗들이 달린 이삭 줄기들이 서 있다.

 

 

 

숲가까운 묏봉오리에 환하게 핀 고들빼기꽃에는

부전나비 두 마리 정답게 앉았다. 

 

 

 

산해박 잎새가 단풍든 걸 보면 가을이 깊었다.

 

 

 

묏등 언덕 너머 들판이 펼쳐지는 서쪽 골짜기로 향한다.

 

저녁 햇살을 받고 선 꽃향유꽃들이 아름답다.

 

 

 

물이 나는 밭이랑은 온통 미국외풀로 덮였다.

 

 

 

그리고 서늘해진 날씨에 좀고추나물이 잔뜩 웅크린 모습으로 바닥을 기고 있다.

 

 

 

여뀌바늘은 씨방까지 단풍든 모습...

 

 

 

처음 보는 십자화과의 이 채소는 무엇일까?

 

 

 

개기장은 줄기와 잎은 말라 버렸고 씨앗을 허공에 말리고 섰다.

 

 

 

어느 밭에는 고려엉겅퀴 꽃이 피고 있는데

아마도 밭주인이 곤드레나물을 무척 좋아하는가 싶다.

 

 

 

그 옆 밭에는 야콘이 가득하다.

 

 

 

길가에 마디풀꽃이 핀 모습이 보여 담아본다.

 

 

 

해는 지고 어두워 오는데

되넘어오는 언덕에서 미역취 꽃을 만난다.

 

 

 

해마다 그렇게 흐드러지게 피었던 미역취꽃을

이제 만나기조차 힘들게 되었으니 안타까운 마음 그지 없다.

 

 

풀꽃들의 천국이었던 묏등언덕이

제초제 세례 속에 풀꽃들의 지옥으로 바뀌고 있는 현실...

 

불빛 환하게 빛나는 거리로 들어서는 마음이 우울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