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일기

잡초 살피러 공터 찾았다가 불암초를 만났네

모산재 2008. 12. 13. 12:50

 

잡초 살피러 공터 찾았다가 불암초를 만났네

 

 

학교를 태릉 쪽으로 오게 된 첫 해에는 며칠이 멀다 하고 봉화산과 주변 배밭을 산책나가곤 했는데

작년과 올해에는 바깥 출입이라곤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몸이 게을러진 탓도 있겠지만 뭐 별다른 감흥을 느끼게 할 만한 요소가 없는 풍경 탓이기도 하다.

 

그런데 갑자기 바로 담장 너머에 있는 공터를 찾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게 아닌가.

오랜 동안 내버려진 공터에는 온갖 잡초가 무성히 자라고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요놈들 관찰하는 재미에 빠져들 수 있다.

 

큰땅빈대를 처음 만난 곳도 이곳인데 사데풀, 가시상추, 어저귀, 낭아초, 둥근잎유홍초,

닭의덩굴, 매듭풀, 비짜루국화, 새콩, 자귀풀 등등 웬만한 풀들과 꽃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첫날 찾은 공터는 기대와 달리 별 볼 것이 없지 않은가.

공터 입구에는 해병대전우회 컨테이너박스가 차지하고 앉았고 그 마당은 콘크리트로 덮였는데

그 안쪽의 너른 잡초들의 천국은 외부에서 실려온 온갖 토사들이 짓누르고 있는 어지러운 모습이다.

 

게다가 그나마 온전한 땅들의 풀들도 짧아진 일조량에 생기를 잃고 있는 모습이다.

 

 

비짜루국화와 개여뀌 등이 꽃 핀 모습이 보일 뿐 별스런 풀꽃들은 눈에 띄지 않는데

서울방동사니인지 나도방동사니인지 하는 녀석이 좀 독특해서 한 컷 담아주고

일단 공터를 한 바퀴 돌아서 살펴보기로 한다.   

 

 

 

절로 자란 방울토마토가 빨갛게 잘 익어서 주머니가 볼록하게 따 넣고서

시간이 다 되어 그냥 돌아가야 하나보다 생각하고 발길을 돌리는데

못 보던 낯선 풀 하나가 보이는 게 아닌가!

 

주변엔 풀이라곤 없는 메마른 맨 땅 위에 잔 가지를 수없이 거느리고

가지 끝마다 털이 숭숭한 작은 씨앗 열매들을 달고 있는 저 풀이 도대체 무엇일까.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내 머리속에 번쩍 떠오르는 것이 바로 불암초!

 

혹시나 싶어 씨앗만 잔뜩 달고 있는 풀들을 촘촘히 탐색하다가  

꽃으로 보이는 작은 알갱이를 발견하고 렌즈를 들이댄다.

 

 

 

역시 꽃이다. 지름 3mm가 될까 말까한 좁살만한 꽃을 접사했는데, 과연 불암초의 꽃이 아닌가.

이름만 듣고 그 실체 이미지를 도감에서도 인터넷에서도 만날 수 없었던 불암초를

운 좋게도 이 공터에서 만난 것이다.

 

 

 

하필이면 꽃철을 한참 지나서 만나게 되이 이렇게 뭉쳐서 잔뜩 달린 열매만 보게 된 것이 아쉬운데

왜 진작 이곳을 찾지 않았을까 후회가 된다.

 

열매를 봐서는 꽃이 한창일 때는 아주 장관이었을 텐데...

 

 

 

주변에 또 다른 불암초가 있을까 싶어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신기하게도 더 이상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저렇게 엄청난 씨앗을 매달 정도라면 번식력이 대단할 텐데,

어째서 저 한 녀석만 자라나게 되었는지...

 

더욱 의문인 것은 많은 풀꽃들이 인터넷을 도배하지만

불암초에 대해서는 아주 전무할 정도라는 사실이다.

 

재작년 이맘때쯤 탄천에서 미성년 불암초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땐 그 풀의 이름을 몰라 미동정으로 남겨두고 있었다.)

꽃이 피었을까 하여 얼마 뒤 다시 찾았을 때는 흔적도 없었다.

 

그때 만난 불암초의 얼굴은 이랬다.

  

 

 

어쨌든 그 때 못 봐 아쉬웠던 불암초 꽃을

오늘 늦게나마 다른 장소에서 만나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 풀은 뭘까. 포아풀 같기도 하고 비노리 같기도 하고...

 

 

 

 

 

다음날 불암초를 처음 만난 흥분감에 다시 한번 공터를 찾기로 한다.

 

어쩌면 줄기 아랫부분에 뭉쳐 있던 열매 부분에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가 숨어 있다 피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나가는 길,

화단에 백목련 열매가 떨어져 있길래 담아본다.

백목련 씨앗이 저렇게 빨간 구형인 것을 처음으로 확인한다.

 

 

 

그리고 종자를 떨어뜨린 임자의 몸뚱아리를 증거로 담아 둔다.

 

 

 

회화나무 열매는 염주괴불주머니의 열매와 모양이 아주 닮았다.

 

 

 

장하여라!

급수대 옆 콘크리트 계단에 어떻게 뿌리를 박았을까,

주름잎이 최고로 아름다운 꽃을 당당하게 피워냈다.

 

 

 

공터에 들어서면서 미국가막사리꽃을 담아본다.

 

평소 그냥 무심히 보면서 넘겼던 꽃인데,

관상화가 길게 고개를 내닐고 피어 있는 모습이 특이하고

또 잎 같은 총포 안에 녹황색의 내포편이 보이고 그 안에  보이는 노란 꽃잎(설상화)이 보였기 때문이다.

 

 

 

 

비짜루국화, 꽃이 아주 작지만 아름답다.

 

 

 

 

유홍초, 이 공터의 주인공이라 할 정도로 흐드러지게 피던 꽃들이 거의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이 풀은 참새그령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다시 어제 만났던 불암초를 찾기로 한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기대했던 대로 새로운 꽃이 핀 것이 보인다.

접사를 하여 이만한 크기로 보일 뿐,

실제 눈으로 보는 꽃은 좁쌀보다도 작아서 꽃으로 인식하기도 쉽지 않을 정도이다.

 

 

 

 

어쨌거나 전날 본 꽃보다는 훨씬 형태가 잘 잡힌 꽃을 만났으니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돌아나오는 길,

갑자기 햇살  환하게 쏟아져 내리고

다 져버린 꽃 자리에 벌집 같은 씨방을 달고 선 어저귀 전초를 담아본다.